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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⑫] 남해, 열두 달의 기록, 제13코스 바다노을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 ⑫] 남해, 열두 달의 기록, 제13코스 바다노을길
  • 황소영 여행작가
  • 승인 2021.11.12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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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예쁜 예계마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예쁜 예계마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계절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지난달보다 어두웠다. 풍요로웠던 들녘은 푸석한 흙으로 변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고 건조했다. 바래길을 걷는 동안 네 번의 계절을 만났다. 길은 다시 겨울로 돌아왔다.

이번 구간은 서상항(남해스포츠파크)~예계마을~상남마을~남상마을~염해마을~유포마을~노구마을~중현하나로마트(보건소)까지 이어진 12.6km의 길로 휴식 포함 4시간 30분쯤 걸린다. 중간중간 숲과 언덕을 지나지만 전체적으로 해변을 따라 걷는 무난한 코스다. 원래는 14코스 ‘망운산노을길’이었던 것이 코스를 조금 늘리고 길을 변경해 13코스 ‘바다노을길’이 되었다. 이 길은 남파랑길 제45코스이기도 하다.

지난달 길을 끝낸 곳에서 이번 구간이 시작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지난달 길을 끝낸 곳에서 이번 구간이 시작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기지개를 켜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서상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기지개를 켜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서상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서상항에서 예계마을로
길은 지난달 걸음을 멈춘 서상항 빨간 구름다리 앞에서 시작된다. 바람이 제법 선선했다. 배낭에 넣어온 장갑을 꺼내 낀다. 매번 같은 시간에 남해행 버스에 몸을 싣는데 이제는 차창 밖 산 너머로 붉은 아침 여명이 보였다. 해는 여느 때보다 늦었고, 차갑고, 빨리 사라졌다. 해가 짧은 계절엔 걸음을 더 서둘러야 한다. 을씨년스런 여객선터미널과는 달리 항구는 복작복작 무언가를 싣고 나르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서상항을 등 뒤에 두고 2차선 도로를 건너 마을 윗길로 올라선다. 방금 지나온 항구와는 달리 낮은 집들은 여전히 그림자에 갇혀 진회색으로 덧칠해져 있었다. 오르막을 올랐다고 그새 땀이 솟는다. 장갑과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땀을 많이 흘리면 옷이 젖고, 젖은 옷 때문에 체온을 빼앗긴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덧입어 적당히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속옷은 젖어도 잘 마르는 속건성 소재가 좋다. 자칫 오들오들 떨다가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

도로를 건너 바다로 내려선다. 입구엔 ‘예계마을’이라 적힌 커다란 입석이 섰지만 펜션 몇 채만 보일 뿐 정작 마을은 없었다. 집을 나온 작은 개 한 마리가 한참을 따라온다. 개는 더 갈 것인지, 여기서 돌아갈 것인지 망설였다. 낑낑대는 개의 울음이 축축하게 젖어 울렸다. 전남 여수와 마주한 바다엔 거대한 화물선이 지나고 있었다. 덩치가 커서인지 소리도 없이 배는 미끄러지듯 바다 위를 떠돌았다.

나뭇잎은 붉거나 아예 땅으로 떨어져 앙상한데 흙 위엔 아직도 초록 풀들이 무성했다. 진작 지고 없을 것이라 여겼던 물봉선도 길가에 무더기로 피었다. 남해의 꽃과 풀에선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난다. 바람은 저 커다란 LNG 선박을 타고 넘어 이국의 소식처럼 낯설게 날아왔다.

바다에는 예쁜 조개껍데기와 돌멩이들이 가득하다. 돌은 주워가면 안 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에는 예쁜 조개껍데기와 돌멩이들이 가득하다. 돌은 주워가면 안 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번 구간은 남파랑길 제45코스와 길이 겹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번 구간은 남파랑길 제45코스와 길이 겹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래길앱 잊지 마세요!
바위에 빨간 화살표가 붙었다. 바래길과 남파랑길을 알리는 표식이다. 만조 시엔 바다 옆 바래길에 물이 찬다. 지금은 위쪽으로 우회로가 생겼다. 바다 옆에 바짝 붙어 걷는 게 더 재밌지만 물이 찼다면 절대 무리해선 안 된다. 파도는 때때로 무섭게 변한다. 사람을 삽시간에 휘감아 데려가기도 한다. 등산화가 젖는 건 다반사다. 

자칫 물기 있는 바위에 미끄러질 수도 있다. 다행히 물은 없었다. 몽돌에 발목이 삐끗하지만 어여쁜 조개껍데기나 재미난 돌멩이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낸다. “봐봐, 뭐처럼 생겼어?” “웃는 사람 얼굴?” “이건 영화 속 빌런 베놈 닮았네!” 보기만 할 뿐 돌을 주워가선 안 된다. 돌멩이조차도 바다의 것이다.

예계마을의 바다. 위쪽에 길이 있으므로 물이 찼다면 바다로 내려가지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예계마을의 바다. 위쪽에 길이 있으므로 물이 찼다면 바다로 내려가지 않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를 보며 쉬어가기 좋은 작장마을 암반.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다를 보며 쉬어가기 좋은 작장마을 암반.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13코스는 남파랑길 45코스와 길이 겹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13코스는 남파랑길 45코스와 길이 겹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예부터 물이 풍부해 뒤새미, 말새미, 참새미 등으로 불렸던 작장마을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보온병에 넣어온 따뜻한 커피가 더더욱 반가운 날씨다. “근데 이상하네. 바래길 앱을 깔면 중간중간 알림이 들리는데 왜 오늘은 소리가 없지?” 휴대폰을 꺼내 보니, 이런! 앱은 실행했는데 빨간색 녹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눌렀을 경우 GPS로 기록이 되고, 혹여 길을 잘못 들었을 땐 경고음을 날려 제 길로 돌아오게 한다. 구간이 완료돼 마침 버튼을 누르면 완보인증이 된다. 바래길사무국에서 해당 구간의 배지를 구입할 수 있고, 모든 구간을 완주했을 땐 나름 ‘명예의 전당’에 이름도 올린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서상항에서 예계마을과 상남~작장~남상마을에 이르기까지 방파제 낚시꾼도 곧잘 만날 수 있다. 솜씨 좋은 이들은 감성돔, 도다리, 볼락, 문어, 갑오징어 등을 잡아 올린다. 아마도 남해바래길 전체구간을 통틀어 가장 많은 바다를 볼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하얀색 몽골텐트가 보였다. 아니, 얼핏 게르처럼 보였지만 KNOC라고 적힌 걸 보니 석유저장고인지도 모른다. 해변을 따르던 길이 우측 산길로 이어지다 마을로 내려선다. 축사의 소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커다란 눈망울에 담긴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노구마을을 빙 둘러 이어진 길은 이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노구마을로 들어선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노구마을을 빙 둘러 이어진 길은 이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노구마을로 들어선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의 겨울은 주로 시금치와 마늘을 재배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의 겨울은 주로 시금치와 마늘을 재배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유자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 망운산노을길이 바다노을길로 이름이 변경됐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유자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 망운산노을길이 바다노을길로 이름이 변경됐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망운산과 금오산 사이
너른 밭을 지나 언덕 하나를 넘으면 옹기종기 바다와 맞닿은 동네에 닿는다. 염해마을은 멀리서 봐도 예쁘고, 가까이서 봐도 예쁘다. 이름 그대로 예부터 소금을 만들던 곳인데 지금은 염전 대신 작은 고깃배만 마을 앞 바다를 누비고 있다. 담벼락 그림 앞엔 나무 벤치도 있다. 앉아서 쉬어가기도 좋고 바다를 보기에도 좋다. 언덕에 올라서면 마을은 더 그림처럼 보인다. 마을이 마주한 여수, 광양, 하동은 한낮 햇살에 하얗게 멀어져 있었다.

은빛 갈대는 망운산 앞으로 이어졌다. 한때 이 길이 망운산노을길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망운산은 남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철쭉 명산이다. 사람들은 흔히 남해 명산으로 군립공원 호구산이나 국립공원 금산을 꼽지만 망운산은 그 어느 곳보다도 남해 사람들이 사랑하는 산이다. 하지만 노구마을로 길이 낮아질수록 망운산은 멀어지고 하동 금오산이 더 크게 보인다. 구간명을 바꾼 까닭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바다는 가깝지만 산은 멀었다.

겨울 농사를 준비 중인 논. 그리고 바다 너머로 보이는 하동 금오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겨울 농사를 준비 중인 논. 그리고 바다 너머로 보이는 하동 금오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벽화와 어우러진 자전거도 한폭의 그림 같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벽화와 어우러진 자전거도 한폭의 그림 같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가천다랭이마을보다 더 큰 유포마을의 논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가천다랭이마을보다 더 큰 유포마을의 논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유포는 가천보다 큰 다랭이마을이다. 텅 빈 밭 사이로 드문드문 새싹이 보였다. 남해의 겨울은 황량하지 않다. 유포 입구엔 샛노란 유자가 한창이다. 바래길은 유자나무 사이로 이어졌다. 해풍 맞은 유자는 맛보지 않아도 달콤했다. 보기만 해도 불끈불끈 온몸에 비타민이 퍼지는 것 같다. 언덕을 두 개 넘으면 노구마을이다. 전엔 노구마을로 곧장 내려가 구간을 끝냈는데, 이름이 바뀌면서 길도 바뀌었다. 마을로 내려가는 대신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매번 맑으면 가뭄이 들겠지만 ‘맑음’ 기분 좋은 말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매번 맑으면 가뭄이 들겠지만 ‘맑음’ 기분 좋은 말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잠시 멀어졌던 바다가 금세 가까워졌다. 비가 안 온 지 오래여서 밭은 푸석하게 메말라 있었다. 스프링클러는 뱅글뱅글 돌아가며 물을 뿌렸다. 물은 방향에 따라 무지개를 만들었다. 머잖아 이 마른 흙엔 무지개처럼 예쁜 결실이 맺히겠지. 길은 중현마을 하나로마트 앞에서 끝난다. 아직은 걸을 만한데 다음 달부턴 부쩍 추워질 것 같다. 으스스, 벌써 어깨가 떨린다.

스테이위드북.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스테이위드북.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스테이위드북
서상항을 막 벗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도로변에 있다. 서점과 카페를 겸하는 곳으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문을 닫는다. 청귤차 5000원, 커피는 책 구매 시 3500원이다. 주로 인문서적과 어린이서적을 판매한다.
주소 경남 남해군 서면 남서대로 1673

남해구판장.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구판장.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남해구판장
50년 된 옛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공간으로 낮에는 분식, 저녁에는 맥주 등을 판매한다. 남상마을에 있는데, 바래길 기준으론 남상마을 0.6km 이정표를 지나 닿는 첫 번째 마을, 큰 나무 뒤쪽에 있다. 해물라면 1만 원이며 근거리는 배달도 가능하다. 수요일 휴무.
주소 경남 남해군 서면 남서대로2197번길 77
문의 0507-1402-0072

가직대사 삼송.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가직대사 삼송.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가직대사 삼송
조선 영조 23년(1747) 가직대사가 심은 소나무로 둘레 4.5m, 높이 15m에 달한다. 가직대사 삼송은 중리마을, 남상마을, 노구마을에 각각 있는데 이곳 노구마을 소나무가 가장 수형이 잘 잡혔다고 한다. 바래길 바로 옆에 있다. 이 나무는 1995년 남해군 보호수로 지정됐다.
주소 경남 남해군 서면 노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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