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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인문학 여행] 성과 속의 조화로운 공존, 수원 지동
[인문학 여행] 성과 속의 조화로운 공존, 수원 지동
  • 임요희 여행작가
  • 승인 2022.04.1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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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계단 창에서 바라본 지동 일대.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수원] 서구 유럽에서 대성당은 마을의 중심을 이룬다. 대성당 광장에는 카페가 즐비하며 주말에는 장터가 열린다. 대성당은 가장 성스러운 공간인 교회와 가장 세속적인 공간인 시장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장소다. 수원 지동에 위치한 수원제일교회가 그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축물, 성소를 공유함으로 속을 품어 안다.”, “팔달문 일대는 시장의 집합소다. 홍콩의 ‘몽콕’을 연상시킬 만큼 그 규모가 크다.” 수원 지동에는 유명한 종교 건축물이 있다. 바로 2023년에 창립 70주기를 맞이하는 ‘수원제일교회’. 지동을 방문한 사람들은 성당도 아닌 개신교 교회가 이토록 클래식하고 거대한 데 놀란다. 교회는 성소인 종탑을 시민에게 내줌으로 속을 품어 안기로 결정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교회 외관.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노을빛 전망대 & 갤러리.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코로나 이전 수원제일교회 종탑은 노을빛전망대로 개방되었다.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360도 서라운드 입체 전망 ‘노을빛전망대’
수원제일교회의 창립연도는 1953년이지만 현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89년이다. 이 거대한 벽돌 건물은 지하 2층에서 지상 11층까지 총 1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상부 8층부터 11층까지는 탑신부다. 나선형 철제계단을 따라 종탑에 올라서면 화성성곽부터 수원천, 광교산, 칠보산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이 종탑을 수원 최고의 전망 명소라고 칭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교회가 워낙 언덕바지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지만 지동 일대가 고도 제한에 묶여 있어 시야를 가리는 건축물이 없다시피 하다. 교회가 ‘노을빛전망대’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종탑을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타깝게도 코로나 위기가 닥쳤다.

채광과 소음이 차단된 교회 내부.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종탑으로 이어지는 나선형계단.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더 가까이, 그러나 선을 넘지 않는
현재 방역 문제로 종탑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 하지만 교회 출입까지 불가능하지는 않다. 교회 내부에 들어서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사람을 압도한다. 교회가 상징하는 신성성도 있겠지만 창을 작게 만듦으로써 채광과 소음을 제한한 덕이 크다. 빛과 소리를 제한하니 고요가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바벨탑을 쌓아 신의 권위에 도전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런 어리석은 짓은 벌이지 않는다. 대신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신에게 다가가려 애쓴다. 절대 권력이 불쾌해하지 않을 높이, 그러나 인간의 정성을 보여줄 만한 높이에 교회 탑신은 건설되었다. 박남수 시인은 교회 종소리를 일컬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라고 노래했다. 종소리가 지닌 경건함의 크기, 존재감의 크기가 뇌성에 맞먹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감상하는 평화로운 저녁 노을.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도시를 물들이는 저녁노을
한국의 교회는 더 이상 종을 치지 않는다. 나에게 경건한 울림이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땅의 수많은 교회가 시도 때도 없이 종을 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종탑까지 갈 수는 없지만, 교회 테라스에만 서도 팔달산의 저녁노을과 서장대의 일몰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멀리 화성 성곽을 따라 오후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평화스러운 광경을 연출한다. 코앞으로 크림색 아케이드가 곧 떠나갈 돛처럼 한껏 부풀어 있는 곳은 지동시장이다.

한때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았던 지동벽화마을.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정감어린 벽화가 성과 속을 연결한다.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성과 속을 연결하는 통로 ‘지동벽화마을’
수원제일교회에서 지동시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지동벽화마을’이 있다. 지동벽화마을은 성과 속을 연결하는 통로다. 평범한 주택가 낡은 벽에는 우산을 든 아이들, 카메라를 든 사람들, 꽃과 나무가 그려져 있다. 색색의 벽화 덕에 골목은 인적 없이 풍요롭다. 한때 지동벽화마을은 꽤 유명한 관광지였다. 하지만 벽화마을이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해진 요즘 이곳에서 관광객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사람 사는 주택가인데 교회 내부보다 더 깊은 적요가 내려앉아 있다.

삶은 성일까, 속일까? 예술은? 삶이 예술로 승화되면 성이고, 예술이 삶으로 내려앉으면 속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성과 속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과 속의 구분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다. 일반인 거주 지역이므로 지동벽화마을을 통과할 때는 발소리, 말소리를 줄일 일이다.

지동시장 입구에 서 있는 황금소 조형물.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전국 3대 우시장이 섰던 ‘수원’
벽화마을을 빠져나오면 자연스럽게 지동시장과 연결된다. 시장 후문에 황금소 조형물 2기가 자리 잡고 있다. 수원에는 일제강점기 전국 3대 우시장이 있었다. 함경북도 명주군, 길주군을 제외하면 한반도 최대 소 거래시장이었다. 충청 지역에서 올라온 소들까지 합쳐 연간 2만 마리의 소가 수원 우시장에서 거래되었다고 한다.

수원이 갈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를 도축하여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갈비가 주로 남았다. 갈비에는 적지 않은 살코기가 붙어 있었는데 여기에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구워 판 게 지금의 수원 갈비가 되었다. 이 일대에 수원 최초의 갈빗집으로 알려진 ‘화춘옥’이 있었다. 화춘옥은 1980년 폐점하기 전까지 수원 갈비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곳이다.

지동시장 입구.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지동시장 순댓국.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수원천변을 따라 늘어선 시장가 상점.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전국구 맛집으로 우뚝 ‘지동시장 순대타운’
지금 지동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갈비가 아닌 순대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도 등장할 정도로 ‘지동순대’는 알아준다. 지동순대는 1990년대 마트, 백화점이 확대되면서 오히려 인기를 끌게 된 상품이다. 순댓국은 서민의 음식이다. 순대는 백화점 푸드코트가 아닌 시장바닥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지동시장 순대타운에는 현재 40여 곳의 순대 전문식당이 성업 중이다.

시장 골목에 걸린 솥에서는 육수가 펄펄 끓고 식당 안에는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손님이 들어차 있다. 식당마다 순댓국밥, 순대 곱창볶음,접시 순대 등의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이곳 식당 대부분이 직접 순대를 만든다고 한다. 지동시장 순댓국은 육수에서 잡냄새가 안 나고 고기는 쫄깃하며 순대는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지동순대는 젊은 층, 노년층 할 것 없이 폭넓게 사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으로 이사가서도 일부러 먹으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팔달문 주변에는 홍콩의 몽콕을 연상시킬 만큼 대단위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지동시장 외에도 미나리광시장, 영동시장, 팔달문시장과 만날수 있다. 팔달문 일대를 상업 중심지로 만든 사람은 정조다. 정조대왕은 수원 화성의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개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지동시장과 영동시장을 가르는 수원천에는 정조대왕의 능 행차를 형상화한 조명이 걸려 있어 봄밤을 환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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