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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교육 여행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 한국전쟁 UN 참전국 문화유적 탐방
[교육 여행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 한국전쟁 UN 참전국 문화유적 탐방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2.04.13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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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포천·동두천·연천·파주, 경기 북부 5개 접경 지역 탐방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내부. 사진/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경기] 가평·포천·동두천·연천·파주에 이르는 경기 북부 5개 접경 지역에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당시 한국전쟁에는 총 22개국에서 195만여 명의 UN군이 참전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경기 북부에서 전투를 벌였다. 기억해야 할, 기억되어야 할 또 하나의 이름, UN 참전국의 흔적을 좇았다.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장 눈앞에서 스러져가는 수많은 아이들을 도저히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어요.”

‘7.27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념해 경기북부 보훈지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광의 날들> 속, 이제는 백발이 된 벨기에 참전 용사는 먹먹한 표정으로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떠올렸다. 곁을 떠난 수많은 전우들과 목숨 바쳐 지켜낸 자유와 평화, 그리고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며 오히려 ‘고맙다’고 말한다. 그저 자유와 평화에 대한 순수한 의무와 공감, 그리고 인간애였다.

당시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영국의 글로스터 부대원. 사진/ 민다엽 기자
파주의 영국군 설마리전투추모공원. 글로스터 연대 제1대대는 3일 동안 중공군의 진격을 지연시켜 서울 침공을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 민다엽 기자

한국전쟁에 참전한 195만여 명의 UN군
한국전쟁 당시 가평·포천·동두천·연천·파주에 이르는 경기북부의 접경 지역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을 만큼 치열했던 전투가 지속됐다. 국군은 물론, UN군의 희생도 막대할 수 밖에 없었다. 국가기록원 통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6.25전쟁>)에 따르면, 약 3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총 22개국에서 195만 7733명의 다국적 UN군이 참전했다.

16개국(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터키,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에서 전투 부대를 파견했고, 6개국(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에서는 의료 지원을 했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 끝에 이중 3만7902명이 전사했으며 부상·실종·포로가 된 인원까지 합하면 사상자는 무려 15만 1129명에 달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름도 들어본 적 없던 작은 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임이 분명하다.

가평에 위치한 캐나다참전기념비. 사진/ 민다엽 기자
동두천에 위치한 벨기에/룩셈부르크군 참전 기념비. 사진/ 민다엽 기자 
포천에 있는 태국군참전기념비. 태국은 한국전쟁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병을 결정한 국가다. 사진/ 민다엽 기자

옛 격전지에 세워진 UN군 참전 기념비
경기북부 접경 지역 곳곳에는 다양한 국가들의 참전 기념비와 추모공원이 흩어져 있다. 각 나라마다 가장 치열했던 옛 격전지 근처에 참전 기념비를 세운 까닭이지만, 너무 외딴 곳이라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가평에는 영연방군,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의 참전 기념비가 있고, 포천에는 태국군, 동두천에는 벨기에군과 룩셈부르크군, 노르웨이(의료 지원국)의 참전 기념비, 연천에는 필리핀군과 터키군, 파주에는 미국군의 참전 기념비와 영국군의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각 국가에 따라 서로 다른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

UN참전국들의 활약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동두천 소요산역 근처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다양한 VR체험시설도 갖춰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에도 제격. 이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UN군 참전에 대해서도 상당히 밀도있는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국가의 참전 용사들이 이곳에 방문했다가, 소중히 간직해왔던 당시의 사진이나 물품을 직접 기증한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전경. 사진/ 민다엽 기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서는 UN군 활약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자료를 볼 수 있다.   
3년 간의 전쟁기간 동안 UN군의 사상자는 무려 15만 1129명에 달한다. 사진은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사진/ 민다엽 기자

이밖에도 연천군 동이리에 위치한 UN군 화장장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국전쟁 당시 UN군 전사자들을 화장하기 위해 건립한 시설로 세계에서 유일한 UN군 문화 유적이라고. 아쉽게도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현재는 화장장 굴뚝과 건물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UN군 전사자를 추모하는 문화유적으로서 가치가 충분한 시설이다. 조만간 고증을 통해 복원될 예정이다.

DMZ안보관광 백학마을
남한 최북단 연천군의 백학마을 일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북한의 땅이었다. 남방한계선까지 직선거리로 5km가 채 되지 않으며, 실제로 마을 근처에는 당시 38선이 지났던 흔적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 덕분에 백학마을 일대는 북한군과 연합군·국군이 수차례 번갈아가며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남과 북의 혼재된 상황을 모두 겪은 백학마을 일대는 DMZ안보관광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다양한 안보 문화 유적과 더불어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임진강 주상절리와 비무장 지대의 청정 자연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제1호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로 지정된 연천의 백학마을. 사진/ 민다엽 기자
백학마을 주민들이 만든 로컬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이정주 DMZ마을여행사 대표. 사진/ 민다엽 기자
 영웅 군마 레클리스. 한국 전쟁 당시, 연천지역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의 탄약과 포탄을 나르는 임무를 수행한 군마이자, 미해병 하사 계급을 가지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보다 제대로 연천을 즐겨보고 싶다면 백학마을 주민들이 만든 로컬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 현재 백학면 아침해협동조합에서는 DMZ안보관광과 역사문화관광, 생태지질관광, 백학8경트레킹 등 다양한 여행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이정주 DMZ마을여행사 대표는 “점점 잊혀져가는 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선열들을 기억하고자 주민들이 나서 직접 안보관광 코스를 만들었습니다. 박물관이나 유명 관광지에서 보던 것보다 좀 더 현실적인 전쟁의 참상을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2023년은 정전 70주년
“코로나19 이전 까지만 해도, 매년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과 그 후손이 이곳 참전 기념비를 찾아 추모를 했었습니다. 발전한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계시고, 오히려 그분들이 지역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감동스럽다기보다, 왠지 모르게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남아 있는 우리라도 감사하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뉴질랜드 참전기념비에서 설명 중인 장영근 가평군 문화관광해설사. 사진/ 민다엽 기자
파주의 영국군 설마리전투추모공원. 수많은 전투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 치열했던 설마리 전투. 사진/ 민다엽 기자

장영근 가평군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처럼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은 여전히 우리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정부는 지난 2013년 UN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정전협정을 맺은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했다. 특히 내년은 정전 7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이번 한국전쟁 UN 참전국 문화유적 탐방을 총괄한 장승재 DMZ관광 대표는 “전쟁이 남긴 교훈과 이름조차 생소한 이 땅을 위해 젊은 목숨을 바친 UN 참전용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평생을 DMZ관광을 개발한 저조차 생소한 문화 유적이었음에 반성하게 되네요. ‘그래도 우리가 목숨을 건 가치가 있었구나!’ 혹시라도 그들의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도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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