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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차로 가는 섬 여행] 부산 최남단, 가덕도를 걷다
[차로 가는 섬 여행] 부산 최남단, 가덕도를 걷다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2.07.12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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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에서 바라본 가덕도의 전경. 산과 바다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부산] 부산 최남단에 위치한 가덕도는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다. 2010년 연륙교가 개통되기 이전에는 배를 타야만 오갈 수 있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차로 섬을 가로질러 거제까지 내달릴 수 있게 됐다. 바닷길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던 시절의 낭만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가덕도의 속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한 외양포 마을. 사진/ 민다엽 기자
대항항. 조용한 포구 마을에도 낚시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소담스러운 섬마을 풍경

가덕도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독특한 섬 문화, 그리고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그저 차창 너머로 스치는 수많은 풍경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가덕도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작은 포구 마을의 소담스러운 풍경은 섬이 주는 고즈넉한 정취를 느껴보기에 충분했고, 그리 높진 않아도 가장 높은 봉우리인 연대봉에서 바라본 쪽빛 바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바로 옆에 딸린 작은 섬 눌차도에서는 여전히 160여 년 전의 전통 방식으로 숭어를 잡고, 힘찬 파도 속에는 바닷사람들의 숱한 사연이 녹아있다.

2010년 거가대교 준공과 부산 신항 건설 등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많은 토착민이 가덕도를 떠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덕도 신공항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방황하는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연대봉 정상.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섬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해발 459m 연대봉 정상석. 사진/ 민다엽 기자

산과 바다의 정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연대봉

가덕도는 연대봉과 국수봉을 중심으로 섬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그중 해발 459m 연대봉은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수려한 섬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봉우리란 뜻을 가진 연대봉은 예부터 봉화를 올리던 산이라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당시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가덕도는 남해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을 방어하는 최전방 군사 요충지였다. 계속되는 왜구의 노략질에 조선 시대에는 가덕도에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을 설치하고 군사를 두어 지키게 했다.

실제로 연대봉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523, 대마도에서 부산포로 침략해 오는 왜군 함대를 최초로 발견하고 가장 먼저 봉화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모은 <임진장초>에 따르면, 연대봉의 봉수가 왜선 90여 척이 대마도를 나와서 경상좌도 추이도로 향하고 있다고 보고한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조선의 3도 연합 수군은 가덕도를 거점으로 왜구의 본거지였던 부산포를 탈환했고, 이후에도 이순신 장군은 수차례 가덕도 주변으로 출전하여 일본 수군을 격멸시켰다.

연대봉 탐방로.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가덕도 최고봉인 연대봉 정상. 가덕도의 여러 봉우리는 '갈맷길’로 이어져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가덕도의 여러 봉우리는 갈맷길이란 이름으로 이어져 있다. 연대봉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총 21.7km에 이르는 트래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가덕도의 산과 바다, 그리고 마을을 두루 둘러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최남단 대항새바지부터 북부의 눌차도까지 구불구불 탐방로가 이어진다. 고갯길과 임도, 마을 길 등 일부 걷기에 불편한 곳도 있지만 천천히 섬 구석구석을 여행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섬을 일주하는 데는 최소 하루 이상 시간이 소요되니, 원하는 코스를 선택해 걷는 것을 추천한다.

천성동 연대봉 진입로에서 출발하면 연대봉 정상까지 곧바로 오를 수 있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는데, 길이 가파르거나 험준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에 좀 더 가까운 느낌. 짠 내 섞인 숲 내음을 맡으며 40분 남짓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닿는다. 정상부에서 잠깐 가파른 돌길이 나타나지만, 오르는 수고에 비해 훨씬 값진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힘을 내보자.

천성항 전경. 가덕도와 거제를 잇는 가덕해저터널과 거가대교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연대봉 정상의 봉수대. 사진/ 민다엽 기자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덕도의 전망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푸른 바다와 섬, 거대한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눈부신 쪽빛 바다에 한참 동안 마음을 빼앗겼다. 가슴 속이 뻥 뚫리는 상쾌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사방에 거칠 것 없이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외양포 마을과 대항항은 물론, 저 멀리 부산-거제를 잇는 가덕해저터널과 거가대교의 모습도 한눈에 보인다.

능선을 따라 어음포초소, 응봉산 등으로 이어지는 탐방로가 나 있어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연대봉 정상석 뒤편으로는 고려 시대에 설치한 봉수대가 자리 잡고 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고려 시대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고려 의종 때 봉수대를 처음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봉의 봉수는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천성(만호)진과 가덕진, 그리고 대마도 방면에서 출몰하는 왜구를 감시했다. 이후 유실되고 무너진 것을 1996년 부산 강서구에서 제단과 터를 만들어 복원했다. 가덕도 주민들은 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 이곳에서 마을을 보호하는 산신에게 봉수 대제를 올리기도 한다.

INFO 연대봉

주소 부산 강서구 천성동 연대봉 진입로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외양포 포진지. 사진/ 민다엽 기자
일제의 유탄포가 있던 외양포 포진지의 모습. 사진/ 민다엽 기자
외양포 마을. 일제의 군사 시설로 사용하던 건물이 여전히 남아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외양포 마을

가덕도에는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가덕도는 수십 년간 일제의 군사기지로 활용되면서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중 당시의 아픔이 가장 선명히 남아있는 곳은 섬 최남단에 있는 외양포 마을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마저 뜸한 한적한 포구 마을의 모습이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여전히 일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외양포를 군사 거점으로 삼기 위해 당시 거주하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대대적인 포대진지 공사를 진행한다. 곳곳에 거대한 포진지를 구축하고 화약고와 막사, 산악 보루, 창고 등의 군사시설로 마을을 가득 메웠다. 1905년 진지가 완공되자 일제의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이곳으로 옮겨오며 그 규모는 더욱 확대됐다. 이후 일본군은 주변 대항항과 새바지항까지 군사시설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대항항 해안절벽을 따라 인공 동굴과 포진지가 구축돼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노역으로 뚫렸을 인공 동굴의 모습.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노역으로 뚫렸을 인공 동굴의 모습. 사진/ 민다엽 기자
하늘에서 바라 본 대항항 전경. 사진/ 민다엽 기자
하늘에서 바라 본 대항항 전경. 사진/ 민다엽 기자

현재 외양포 마을 주변에는 280m 유탄포 포좌(6) 흔적과 탄약고, 엄폐 막사, 관측소, 창고, 우물, 배수로 등의 다양한 군사시설이 남아있다. 또한 인근 대항항의 해안 절벽에는 길이 175m의 인공 동굴과 3개의 포진지가 구축돼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가던 일제는 이곳에 미국의 폭격기와 함포에 견딜 수 있도록 동굴 속에 야포와 중화기를 배치하고 최후의 항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같은 군사 요새가 완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개월 남짓. 이 짧은 시간 동안 산을 깎아 진지를 구축하고 해안 절벽에 동굴을 파서 여러 개의 포진지를 만들어 냈다. 놀라움보다 전부 강제 동원된 조선인 징용자들의 노역으로 만들어졌을 걸 생각하니, 숨이 턱 하니 막혀온다. 기억하기 싫은 어두운 흔적이지만, 이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임이 분명하다. 몇 년 후에는 이곳에 신공항이 들어설 예정이라니 씁쓸한 감정이 교차한다.

INFO 외양포 마을

주소 부산 강서구 대항동 외양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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