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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6월호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집] 교토, 기억해야 할 것들…윤동주 시비와 귀무덤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집] 교토, 기억해야 할 것들…윤동주 시비와 귀무덤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2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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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 대학 생활 중 일본에서 사망…
조선인 12만 6000명의 코 베어 만든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 앞 귀무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교토는 우리 민족의 아픈 흔적이 곳곳에 녹아 있는 도시다. 교토의 도시샤대학 건물 앞에 윤동주 시비(왼쪽)와 정지용 시비가 나란히 자리한 모습.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스케치=교토] 교토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본 여행지 중 하나다. 청수사, 금각사, 기온 등은 말이 필요 없는 세계적 관광지이다. 그렇지만 이곳에도 우리 민족의 아픈 흔적이 있다. 윤동주 시비와 이총은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러볼만한 추모의 공간이다. 

윤동주 시비와 정지용 시비 
지난 2016년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며 다시 한 번 시인의 삶이 조명되었다. 2016년 2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개봉된 이후,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이따금씩 한국인 여행자를 볼 수 있다. 교토는 시인 윤동주가 마지막 생을 지낸 곳으로, 사람들은 도시샤대학 ‘윤동주시비’ 앞에서 청년 윤동주를 추모한다.

그는 1917년 만주에서 태어나 1945년에 생과 이별하였다. 그 나이 28살, 도시샤대학 재학 중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후쿠오카 감옥 수감자들 중 1800여명이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사망했다고 하니 윤동주 시인 또한 그 희생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윤동주 시비의 모습. 새겨진 내용은 ‘서시’이다. 윤동주 시인은 도시샤대학 재학 중이던 28살,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정지용 시인 시비. 도시샤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윤동주 시인이 생애 가장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시비는 소박하다. 그 모습에 울컥 서러움이 올라온다. 새겨진 내용은 ‘서시’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는 자신의 시처럼 살고자 했다. 우리 민족은 위기 때마다 수많은 청년들이 지불한 핏값으로 연명하였다. 그들의 순수한 신념은 개인의 안락과 주변의 참견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일본 지방 대학의 키 작은 시비에서 마음이 숙연해 지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윤동주 시비와 나란히 정지용 시비가 있다. 우리에게 <향수>라는 시로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 또한 도시샤대학 영문학과 출신이다. 윤동주는 정지용을 시인으로서 가장 존경했다고 전해진다. 생전에 두 사람이 만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영화 <동주>에서는 두 시인의 만남이 그려진다.)

정지용 시인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국어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순수문학을 택했다. 이후 일제에 협력하는 시 <이토>를 발표하였고, 이 때문이었는지 이후 붓을 꺾고 한동안 칩거한 사실은 다소 씁쓸한 결말이다.

<도시샤대학 (윤동주 시비, 정지용 시비) 찾아가기>
카라스마선 이마데가와역 하차 -> 3번출구 -> 도시샤대학 서문 -> 도시샤 교회 건물 뒷편과 Harris Science Hall 사이 위치
주소 〒602-8580 京都府京都市上京区相国寺門前町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임진왜란 때 조선인들의 코를 모아 만든 귀무덤. 무덤 이름에 귀를 뜻하는 한자 ‘이(耳)’를 사용하여서 한국말로 ‘귀무덤’이라 부른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귀무덤에는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조선 사람들 12만 6000명의 코가 베어져 묻혀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 앞, 조선인들의 귀무덤
이총은 조선인의 코가 묻혀 있는 곳이다. 이름만으로도 끔찍한 이 무덤의 위치가 얄궂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는 토요쿠니 신사 앞 놀이터에 자리 잡고 있다.

히데요시는 1592년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그는 조선인의 수급(머리) 대신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본국으로 보내라 했다. 무사들의 전공을 확인하기 위해 조금 ‘간편한’ 방법을 고안한 것이었다. 이렇게 보내진 조선인의 코로 공을 증명하는 영수증까지 발행하였다고 한다.

이를 모아 무덤을 만든 것이 바로 이총(耳塚, 귀무덤)이다. 귀는 두 개라 희생자 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코를 쓰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였는데, 무덤 이름에는 귀를 뜻하는 한자 ‘이(耳)’를 사용하여서 한국말로 ‘귀무덤’이라 부른다.

귀무덤은 자그마치 12만 6000명 분이다. 그들의 침략으로 죄 없는 백성들이 코를 잘리고, 굶주림과 이유 없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조선의 국력은 쇠약해졌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리는 토요쿠니 신사 앞 놀이터에 자리한 귀무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발길이 뜸한 귀무덤은 초라하고 외로운 분위기이다. 어린이 놀이터 한켠에 하나의 봉분이 있고, 재단 출입은 불가하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발길이 뜸한 귀무덤은 초라하고 외로운 분위기이다. 어린이 놀이터 한켠에 하나의 봉분이 있고, 재단 출입은 불가하다. 굳이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은 역사를 좋아하는 소수의 한국인과, 토요쿠니 신사에 갔다가 어쩌다 눈에 띄어 게시판을 읽어보는 사람뿐이다. 

귀무덤은 카모강 동쪽 시치조역에서 멀지 않고, 청수사(기요미즈데라)와도 가까워 여행 중에 들러 가기 쉬운 위치이다. 추모의 마음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굳이 한번 들러보길 권하는 이유는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찾지 않아 버려진 유적이 된다면, 누가 이곳을 기억할까? 지금의 우리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코 베어가며 지켜냈기에 있는 것이다. 교토에 왔다면 잠시만 시간을 내어 그들의 혼령에 감사 인사를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총 (귀무덤) 찾아가기>
케이한선 시치조역 하차 -> 6번출구 -> 맥도날드 끼고 우회전 -> 토요쿠니 신사 앞쪽(쇼멘거리)으로 직진 -> 놀이터에 위치
주소 〒605-0931 京都府京都市東山区茶屋町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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