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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여행] 고려인의 예술혼, 고달사지 부도
[가족여행] 고려인의 예술혼, 고달사지 부도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4.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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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여주] “정수야. 아빠하고 고달사지 가자.” “거기가 어딘데?” 정수는 아빠의 답사여행 말동무며 스승이기도 합니다. 가끔 순수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 유물을 설명해줘서 놀라게 할 때가 많습니다. 정수와 함께 여주 고달사지에 다녀왔습니다.

혜목산의 고달사지 풍경.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혜목산의 고달사지 풍경.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전원일기에 나옴직한 농촌풍경입니다.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농가들이 그 넉넉함을 더해줍니다. 여느 향촌처럼 마을입구엔 커다란 보호수가 서 있습니다. 우람찬 혜목산이 절 집을 한아름 품고 있어 포근하고 아늑합니다. 매번 느끼는 경험이지만 전국 어디를 가든지 절터는 참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나뒹군 돌멩이 사이에 성한 돌을 찾아내어 마음속으로 건물을 세워 올리는 것이 폐사지를 보는 맛이랍니다. 황폐함 속에서 생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겨울에 폐사지를 찾아가면 스산함 속에 제가 해야할 일이 많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도 가져봅니다.

‘고달사(高達寺)’는 도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해서 ‘高達’인가? 실은 이 곳의 석조물은 ‘고달’이란 석공이 만들었기 때문에 ‘고달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고달은 가족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고 스스로 머리를 깎아서 훗날 유명한 고승이 될 정도로 불심이 깊었지요.

고려 때 사방 30리가 사찰의 대지였을 정도라니 고달사의 위용이 느껴집니다. 고달사 앞 5백m지점 논 가운데 작은 봉우리가 보입니다. 이는 고달사 승려들이 절에 오르다 쉬면서 신을 털어 야트막한 산을 만들었기에 그 산을 ‘신털이봉’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석불대좌의 모습.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석불대좌의 모습.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먼저 탐승객을 흥분시키는 것이 바로 석불대좌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잘 생긴 대좌랍니다. 보통 원형이나 팔각모양인데 이 곳은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높이만 1.5m가 넘습니다. 하대석에는 안상(코끼리 눈)이 4개씩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연꽃이 둘러쳐 있는데 이것이 참 명작입니다. 조각의 입체감이 뚜렷하고, 가지처럼 늘어진 것이 부처님의 자비가 너울너울 분출하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상대석에는 위로 새겨진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하대석에 새겨진 연꽃이 넘치는 자비라면 이 곳은 부처님의 영광을 말해주는 불꽃입니다. 수 천년간 멈추지 않고 타오르는 화신입니다. 지긋이 눈을 감고 손을 대었습니다. 1천년 전 석공의 망치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국호 4호인 고달사지 부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부도.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국호 4호인 고달사지 부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부도.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원종대사 부도비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귀부와 이수’랍니다. 용의 머리를 한번 보십시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인상이지요. 콧구멍이 깊숙이 패여 있고 주름까지 보이며 벌름거리고 있습니다. 무서운 얼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얀 이빨을 드러낸 미소가 무척이나 해학적입니다. 입에 여의주를 물지 않는 것도 특이합니다.

발톱은 마징가 제트에서 나오는 적군 로봇의 흉기같다. 2004년 4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발톱은 마징가 제트에서 나오는 적군 로봇의 흉기같다. 2004년 4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사실 눈알 자체가 큼직한 여의주처럼 둥그렇습니다. 여의주를 2개나 몸에 지니고 있으니 굳이 입에 넣을 필요가 없었겠지요. 거북이 발톱은 땅에 처박고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돌 조형이 다 쓰러져도 이 거북상이 천년을 버틴 것은 든든한 발톱 때문이 아닐까요? 이 부도비를 보고 후대 나타난 거북선의 모습을 그려본답니다.  

이무기를 나타내는 이수를 보고 정수는 ‘상자’랍니다. 전면에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지비’라는 전서체의 글씨가 고즈넉하게 보인답니다. 구름과 용이 꿈틀거리면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도깨비상도 볼 수 있는데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친근한 고려인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정수와 함께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입니다.

이수에는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우너종대사자비'가 보인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이수에는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자비'가 보인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저는 이수의 측면을 가장 사랑한답니다. 용의 비늘을 한번 보십시오. 꿈틀거리는 생명력 때문에 비늘이 떨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귀부와 이수는 한 개의 돌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정을 한번 잘못 때리면 헛수고로 돌아가는 돌조형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이수의 측면. 용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이수의 측면. 용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중간에 있어야 할 비는 어디 있을까요? 1915년 봄에 비신이 넘어졌는데 지금은 국립 중앙박물관 창고에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웬만하면 보수해서 이곳에 다시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유물은 원래 있는 그 자리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거든요. 고달사터 부도(국보 4호)를 만나려면 산길을 조금 올라가야 합니다.

도중에 정수하고 미끄럼도 타고, 억새도 뜯어보며, 흥겹게 산길을 올랐습니다. “와! 세상에 이럴 수가!”저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우선 그 규모에 압도당합니다. 높이 3.4m,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그 정교함에 다시금 놀랍니다.  

거북을 중심으로 네마리의 용이 구름을 뚫고 노닐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거북을 중심으로 네마리의 용이 구름을 뚫고 노닐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이 부도는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부도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지대석, 기단부 ,탑신부, 지붕돌 모두가 팔각형으로 신라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초기의 작품이지요. 가장 화려하게 조각된 부분은 중대석입니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거북을 중심으로 4마리의 용이 구름을 뚫고 노닐고 있습니다.

돌의 양감도 풍부하여 금방이라도 돌을 깨고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마치 마술상자에 갇힌 용같이 보입니다. 마술이 풀리면 ‘펑’하고 터지면서 용이 하늘로 승천할 것 같지요. 그리고 그 위에 돌려진 연꽃문양은 천년 전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추상 조각가의 작품처럼 보인답니다.

탑신부에는 자물통이 달린 문짝과 창살문, 사천왕이 번갈아 조각되어 있지요. 이 곳에 스님의 사리와 경전 등이 들어 있으니 자물통으로 잠근다는 의미겠지요. 사천왕상은 그걸 지키는 수호신이고요. 그 몸돌에 지붕돌을 얹었습니다. 조금 큼직해서 전체적인 비례에 맞지 않는 아쉬움이 들지 모르지만 날렵하게 솟아 오른 귀꽃이 그 어색함을 덜어줍니다.

고달사지 부도의 비천상이 하늘을 날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고달사지 부도의 비천상이 하늘을 날고 있다.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지붕 돌 밑에 숨겨진 ‘비천상’을 보십시오. 어떻게 이 곳에 이 비천상을 새길 생각을 했는지…. 연곡사 동부도 지붕돌 밑에있는 구름문양을 보고 무릎을 쳤는데 역시 명품엔 숨어있는 비밀이 있는 모양입니다. 악기를 두드리며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세요. 이곳이 천상의 세계임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지붕돌 위엔 보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지붕돌이 보입니다. 아마 상륜부는 더 화려했을 텐데 남아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랍니다. 얼마 전 도굴을 당해 귀꽃이 하나 떨어져 나갔답니다. 그 부위를 보니 가슴이 찢어집니다.  

찬바람이 씽씽 부는데 무려 한 시간을 부도 앞에 서있었습니다. 애인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아쉽게도 고달사지를 떠납니다. 비록 폐사지가 되었지만 거기에 깃든 정신세계는 참으로 넓습니다. 얼어붙은 논길을 가면서 몇 번을 넘어지니 정수가 보고 깔깔 웃습니다. 가는 길에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있군요. 고달사의 후예들이지요.

강계봉진 막국수.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강계봉진 막국수. 2004년 2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Tip. 강계봉진 막국수
이포대교 근처에는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천서리 막국수’집이 있답니다.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막국수집이 촌락을 이루는 곳이 천서리입니다. ‘川西里’이름 그대로 남한강 서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제 맛을 낸다는 ‘강계봉진막국수’ 허름한 집을 찾았습니다. 국수와 편육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양도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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