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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대종주①] 남원 주촌리에서 월경산 중재까지, 우리들의 백두대간
[백두대간대종주①] 남원 주촌리에서 월경산 중재까지, 우리들의 백두대간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05.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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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주촌리 -> 노치마을 -> 수정봉 -> 입망봉 -> 여원재 -> 장봉 -> 고남산 -> 통안재 -> 권포리(권포리에서 복성이재는 중국 출장으로 연기)복성이재 -> 봉화산 -> 월경산 -> 중재. 이 경로를 따라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남원]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다. 전라도 지리산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중간에 통일이 되면 백두산까지 가야겠지만. 이제 백두대간 7백여 km 산행을 52구간으로 나눠 종주한다. 그 첫산행을 다녀왔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로 작정하니 며칠씩이나 가슴이 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종주했다는 백두대간. 여행잡지를 만들면서 언젠가는 종주할 거라는 다짐과 기대가 의외로 빨리 왔다. 참으로 우연히 솔터산악회(등반대장 우연희)를 만난 것이다.

3월 20일 새벽 4시 45분. 5시에 알람을 맞춰 두었는데 그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처럼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종로 3가에 도착하니 버스 두 대가 서 있고, 몇몇 사람들이 버스를 오르내리고 있다. 그중 유일하게 얼굴을 아는 우 대장과 인사를 하고 지정석에 앉았다.

동대문과 양재, 신갈에서 회원들을 태운 버스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창밖으로 봄기운이 느껴진다. 언제나 여행은 신나는 일이다. 산행은 좀더 신나는 일이다. 적당한 운동과 가슴에 서정성을 담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산에 오르면서 남들처럼 호연지기를 기른다는 거창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갖가지 나무와 그들이 만들어 준 숲과 바위와 풀포기와 수많은 야생화들을 눈에 담는 것이 즐거워 산에 오른다. 그 산에서 흘러간 옛추억을 생각하고, 옛친구들을 떠올리고, 콧노래를 부르는 재미도 쏠쏠하고, 바짓가랑이가 젖을 정도로 많은 땀을 흘린 뒤의 상쾌함도 빠뜨릴 수 없다.

노치마을에서 수정봉으로 오르는 초입에 있는 노송.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노치마을에서 수정봉으로 오르는 초입에 있는 노송.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버스가 남원시 주천면 주촌리에 멎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 두 대에서 내린 대원들이 첫걸음을 내딛는 기념촬영을 하고 제각기 노치마을로 향한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외딴 시골이다. 이 한적한 시골에서 산을 오르기도 전에 나는 점심 걱정을 했다.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지 않고 산 입구에서 김밥을 몇 줄 사갈 참이었다. 그런데 김밥장수는커녕 동네 사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휴게소에서 달랑 조그만 물만 한 병 샀는데 과일이나 과자부스러기라도 사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차마 굶기야 하겠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거지 근성을 발휘하기로 하고 대원들 사이에 끼어 걷기 시작했다.

노치마을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는 노치샘이 있다. 이후 산행에서는 옹다샘도 만날 수 없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노치마을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는 노치샘이 있다. 이후 산행에서는 옹다샘도 만날 수 없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노치마을을 가로질러 수정봉을 향해 오르려는데 동네 샘이 보인다. 노치샘이다. 사계절 하루도 마르지 않은 샘이란다. 샘물이 진짜 내 고향 샘물 맛이다. 샘물을 떠 마시면서 보니 바로 앞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다. 얼른 들어가서 빵을 세 개 샀다. 이제 적어도 배가 고파서 산행을 못하는 일을 없겠지.

그런데 참 무지막지한 사람들이다. 샘물을 마시고 빵을 사서 일행을 쫓아갔는데 벌써 산행을 시작해 버렸다. 여유를 부리며 앞산 뒷산을 휘둘러보고, 이 골짜기 저 능선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산을 취재하고 다닌 나의 산행 습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백두대간을 산행하려는 사람들의 보폭은 이미 나의 보폭과 견줄 바가 아니었다. 내가 소달구지를 타고 산천을 유람하는 보폭이라면 대원들은 말을 타고 달리는 격이었다. 저 앞에 오르고 있는 선두를 보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지난 가을 이후로 거의 산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지난 한 주일 내내 술을 많이 마셨다는 사실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러나 왕년에 다람쥐 소리를 듣던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여행스케치>에서 취재를 왔고, 완주할 때까지 동행 취재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네 뒷산에 있는 수백년 된 노송 4그루를 카메라에 담고, 뛰다시피 산을 올랐다.

봉화산 진달래 능선은 어른들보다 키가 큰 진달래가 숲을 이룬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봉화산 진달래 능선은 어른들보다 키가 큰 진달래가 숲을 이룬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기서 수정봉까지는 약 1시간 거리다. 가파른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는데 숨이 가쁘다. 남들이 볼까봐 차마 숨을 가쁘게 쉬지도 못하겠다. 그동안 운동하지 않은 잘못과 술을 많이 마신 죄를 반성하며 이를 악문다. 그런데 악!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난다.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쥐가 날까. 부끄러워 차마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앉아서 다리를 주무른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뒤를 돌아본다. 들녘이 한가롭다. 들녘엔 봄기운이 아지랑이를 따라 새록새록 솟아오르고 있다. 들녘을 가로질러 성삼재에서 주촌리에 이르는 산등성이들이 우뚝 버티고 서 있다. 가까이 보이는 것이 고리봉이고 멀리 보이는 것이 바래봉, 덕두산, 세걸산 등이란다.

황사 때문인지 시계가 좋지 않아 사진 촬영은 큰 의미가 없겠다. 수정봉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동네가 황산벌이다. 신라와 백제가 싸운 계백장군의 황산벌이 아니고, 고려말 이성계 장군이 전라 경상도를 침략한 왜구를 격퇴한 황산벌이다.

수정봉에서 입망치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산행에 내리막길이 없다면 누가 산행을 할까? 쥐가 나던 다리가 좀 풀린다. 혼자 씨익 웃으면서 산을 내려간다.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양지꽃과 제비꽃이 눈에 띈다.

여원재에서 낙오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원재에서 낙오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야산과 밭이 보인다. 여기서 여원재까지는 남원군 이백면과 운봉면을 좌우에 두고 마을 뒷산 주능선을 따라간다. 여원재는 그리 높지 않다. 4백70여m. 24번 국도가 뚫고 지나간다. 그런데 버스 두 대가 기다리고 있다. 낙오자를 기다리는 버스란다. 버스 안을 기웃거리는데 운전 기사 뿐 등반대원은 한 사람도 없다. 왜 하필 이런 데서 버스가 기다릴까? 인간의 나약한 정신력을 시험하는 하나님의 덫이 아닐까.

여원재에서 점심을 먹는데 먼저 먹던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나눠준다. 빵을 먹을 새도 없이 얻어먹은 밥으로 배가 부르다. 과일과 커피에 술까지 얻어먹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곧장 일어나서 또 산을 오른다. 갈 길이 바쁜 모양이다.

고남산 정상에 이르기 직전에 있는 임봉.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고남산 정상에 이르기 직전에 있는 임봉.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새가 지저귀고 비둘기가 난다. 까마귀 세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진달래 꽃망울이 구기자 모양으로 살며시 올라오고 있다. 이제 올라갈 산은 8백46m의 고남산. 송신탑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조그만 마을을 지나고 논과 밭을 지난다. 오전에는 배가 고파서 힘들었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 배가 불러서 또 고역이다. 내가 이토록 아마추어였단 말인가. 물병의 물도 이미 바닥이 났고, 숨은 가쁘고… 산행이 이토록 큰 고행길이 될 줄이야.

봉화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아영면 구상리마을.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봉화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아영면 구상리마을.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고남산 정상 가까이에 암릉지대가 나온다. 짧은 로프를 잡고 바위를 오른다. 정상에 오르자 바로 아래 산불감시 초소와 헬기장, 한국통신 중계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다 내려다보이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통안제를 거쳐 시멘트 포장길을 20여 분 내려가니 권포리에 이른다.

권포리 마을에 다다르자 두엄냄새가 발길을 가볍게 한다. 젖소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고, 밭에서는 할머니 두 분이 감자를 심고 있다. 봄이 되었으니 농부는 씨앗을 심고, 대지는 새로운 기운을 뿜어 올리고 있다.

감자 씨앗을 묻고 있는 권포리 할머니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감자 씨앗을 묻고 있는 권포리 할머니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권포리 목장에서 마주한 젖소들이 포즈를 취했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권포리 목장에서 마주한 젖소들이 포즈를 취했다.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복성이재에서 치재로 오르는 왼편으로 남원시 야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잇는 도로.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복성이재(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을 연결하는 고개)에서 치재로 오르는 왼편으로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잇는 도로. 2004년 5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며
그동안 꽤 많은 산을 다녔습니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이름 있는 산들을 여러 곳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백두대간 종주는 처음입니다. 주저함 없이 시작했습니다만 과연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여러 친구들과 가족에게 알리고 마음을 다잡고 종주를 시작합니다.

전라도 지리산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실개천 하나도 건너지 않고 뭍으로만 오르고 또 오른다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산이 담고 있는 전설을 전하고, 골짜기나 봉우리와 그 능선에 피어 있는 꽃들의 이야기와 새들의 노래,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Tip. 진달래와 철쭉 구별법 진달래와 철쭉은 많이 닮았지만 '참꽃'과 '개꽃'으로 불릴 만큼 다르다. 진달래는 먹어도 되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다. 독성이 있어서 위험하다. 진달래는 3~4월에 피고 철쭉은 5월에 핀다. 진달래는 붉은 빛이 도는 분홍색이고, 철쭉은 더 연한 분홍색이다. 진달래는 꽃을 만져도 아무렇지 않은데 철쭉은 끈적끈적한 점액이 있다. 철쭉은 꽃잎에 자주색 점이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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