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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오지마을 트레킹] 큰구슬봉이가 곱게 핀, 삼척 덕풍마을
[오지마을 트레킹] 큰구슬봉이가 곱게 핀, 삼척 덕풍마을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6.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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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삼척 덕풍마을을 찾아가는 길.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삼척 덕풍마을을 찾아가는 길.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삼척] 덕풍계곡은 2년 전의 수해로 인해서 복구 공사중이였다. 그 사이로 꽃이 피고 어미 염소가  새끼를 키운다. 나무마다 잎이 돋고 산에는 물이 오른다. 숲이 자란다.

염소 가족을 만났다. 나는 산을 깎아서 도로를 낸 길을 가고 있었고 염소 가족은 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있었다. 육안으로 아빠 염소, 엄마 염소, 아기 염소 둘 이렇게 식별은 할 수 있었으나, 그래도 꽤 먼 거리였다. 그리고 그들과 나 사이에 철조망이 있었다. 철조망은 그들을 가두고 사람들에게 ‘여기까지…’라는 경고를 한다.

외삼방마을이다. 길 옆의 긴 집 언덕 위에 까만 점들이 염소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외삼방마을이다. 길 옆의 긴 집 언덕 위에 까만 점들이 염소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그냥 그들을 봤을 뿐이다. ‘몸에 좋은 흑염소’라는 불순한 생각도 없었다. 엄마 염소가 두 마리 아기 염소를 데리고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간다. 아빠 염소가 느릿한 걸음으로 철조망 가까이 다가온다. 위협적으로 뿔을 세우고…. 나도 위협적인 자세로 아빠 염소를 째려보았다. “왜, 씨름한판 할까?” 큰소리 쳤으나 나는 지킬게 없었다. 삼척 외삼방마을에는 집단 방목을 하는지 염소가 많았다.

2년 전에 큰 수해를 당해서 여기저기 수해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그때 피해를 당한 풍곡-석포도로도 복구 중이다. 트레킹은 외삼방마을 도로 포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했다. 삼방산 초입, 길이 무너졌다. 돌아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들어선다. 길은 다시 이어졌으리라.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숲은 그 연한 초록빛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사람의 길은 무너져 있고, 나무 사이가 길이다. 나무 사이로 빠져나가니 가지들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얼굴을 때린다. 동물이 한 무더기 똥을 쌓아 풀들에게 보시하고 갔다. 꽃이 카메라를 잡는다. 큰구슬봉이가 마른 잎 사이로 여기저기 피었다.

큰구슬봉이 천지다. 처음으로 큰구슬봉이 하나를 뽑았다. 뿌리까지 쏙 빠져나온다. 산짐승이 보시하고 간 자리에 나는 꽃을 뽑아 그에게 준다. 그의 책갈피 속에 향기를 품고 마르리라. 나무 사이로 다니다 길을 잃었다. 사람들의 길을 벗어나자 아찔한 생각이 머릿속에 넘친다.  

여전히 오만한 자세로 ‘세상의 모든 길은 통하게 되어있다’라며 길을 찾는다. 산 밑은 전봇대가 기준이 되고 산 속은 능선을 따라 오른다. 그렇게 헤매도 여럿이 함께 있어 두렵지 않다. 산에서는 길동무가 의지가 된다. 집 한 채가 보인다. 지금은 수풀로 변해버렸지만 집 주위로 넓은 터가 꽤 오랫동안 정성을 들인 느낌이 든다. 산 속에서 집을 보니 반갑다.

스님이 떠난 암자에 민들레가 곱게 피었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스님이 떠난 암자에 민들레가 곱게 피었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암자다. 우물에 나무 지붕을 얹어 비를 피하게 했다. ‘감로라 물은 만물을 기르고 산은 만물을 거두니라’, ‘한마디 말이 맞지 않으면 천마디 말이 쓸데없느니’ 경구도 써 놓았다. 물을 꽤 아낀 스님인 것 같다. 암자 마당에는 민들레가 무더기로 곱게 피었다. 방문 앞에 ‘스님방’이라 써 놓았다. 민들레도 피었으니 겨울동안 산 밑으로 내려간 스님이 이제 올 때도 됐는데 암자가 텅 비었다. 어떤 스님이 기거했을까? 궁금하다. 다시 산으로 접어든다.

텅 빈 밤나무 껍질이 여전히 가시를 세우고 있다. 아궁이에 넣고 태우면 투닥투닥 잘 타겠다. 산이 깊다. 간혹 신갈나무 사이로 잘 생긴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든다. 산골짜기로 내려간다. 이 깊은 골짜기에 벌써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엄나무(음나무) 가지들이 잘렸다. 닭과 함께 맛나게 삶아졌겠다.

엄나무. 새순을 살짝 데쳐서 쌈싸 먹는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엄나무. 새순을 살짝 데쳐서 쌈싸 먹는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더 이상 가지를 잃으면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어린 새순을 몇 개 땄다. 강원도에서는 엄나무 어린잎을 ‘개두릅’이라 한다. 새 순을 따다가 물에 데쳐서 고추장에 쌈을 싸먹는다. ‘두릅’보다 더 맛있다고 하니, 한번 그 맛을 보고 싶다. 가지에 붙은 가시가 이쁘다 했더니 “여자는 가시지!”하며 일행 중 한분이 놀린다. 장미 가시에 찔려도 피가 나는데 엄나무 가시에 찔리면 어찌될까 심장이 터져버릴까?

가시가 독하게 생겼다. 급경사 골짜기를 내려오니 발에 걸린 돌이 먼저 내려간다. 머리가 쭈뻣쭈뻣 선다. 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나뭇가지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물소리가 나는 걸 보니 계곡이 가까워졌다. 덕풍계곡은 문지골, 용소골, 괭이골 세 골이 있다. 3곳 다 아름답다고 한다.

지금은 계곡물이 적어서 트레킹하기에 좋다. 괭이골을 따라서 트레킹을 했다. 맑은 계곡물이 낮지만 경쾌하게 흐른다. 아니 달린다. 계곡을 따라 내 걸음은 흐르고 귀는 달린다. 계곡과 떨어진 웅덩이에 올챙이가 헤엄을 치고 있다. 저번 구마계곡에서 알을 보았는데 덕풍계곡에서 올챙이를 본다. 한달 사이에 생명이 쑥쑥 자랐다.

유수의 흐름이 느린 계곡에는 작년 겨울에 떨어진 나뭇잎이 쌓여있다. 울창한 나무가 푸르러 계곡보다 깊다. 계곡을 따라서 오다보니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에 올라서서 사람의 길에 접어든다. 외삼방 마을에서 산을 넘고 외딴 암자를 만나고 다시 산을 넘고 계곡을 따라오니 지도가 그려지지 않는다. 지나가는 차를 잡아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덕풍계곡, 덕풍마을” 마을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줄기가 발 아래 흐르는 계곡 트레킹.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시원한 물줄기를 발 아래 두고 걷는 계곡 트레킹.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덕풍계곡 괭이골은 물이 적어서 트레킹하기에 좋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덕풍계곡 괭이골은 물이 적어서 트레킹하기에 좋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계곡은 수해복구 공사 중이다. 커다란 강돌이 굴러다닌다. 얼마나 덮친 것일까? 상상이 안 간다. 여름 폭우는 왜 사람의 마을에 닿으면 흉폭해지는 걸까. 사람들이 거슬린 게 무엇일까, 유수의 흐름을 일자로 만들어서…. 계곡 옆으로 찔레순이 길게 자랐다. 여린 순을 꺾어서 껍질을 벗긴다. 너무 여려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서울에 태어나서 자랐다는 분에게 찔레순을 드렸다. “뒤 끝에 푸른 맛이 나네.” 풋풋한 향내가 났다. 곧 찔레꽃이 피겠다. 나는 산천에 지천으로 피는 찔레꽃을 좋아한다. 덕풍마을에서 화장실에 들렸다. 재래식 화장실에 구더기가 우글우글하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는 뭐라 물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사진 한 컷 찍자고 카메라를 꺼내니 “늙은이를 찍어서 뭐해”하며 정색을 하신다. 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할머니에게 유일한 친구는 내내 짖어대는 강아지다.

덕풍마을 나오는 다리가 다 망가져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덕풍마을 나오는 다리가 다 망가져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왔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손을 씻으려 우물 곁에 가니 조그만 스치로폴 상자에 고추가 심어져 있다. 어디를 가나 조선의 마을들은 참으로 알뜰하다. 덕풍마을은 새 집들이 지어지고 이제 오지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덕풍마을과 이어지는 다리가 다 망가져서 아슬아슬하게 나왔다. 복구 작업이 다 끝나려면 먼 것 같다.

큰구슬봉이. 2004년 6얼. 사진 / 여행스케치 DB
큰구슬봉이. 2004년 6얼. 사진 / 여행스케치 DB

Tip. 큰구슬봉이
깊은 산골 숲 속이나 높은 산 위쪽 풀밭에서 많이 자랐으나 지금은 그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두해살이풀. 높이 5∼10cm 정도. 뿌리잎은 줄기잎보다 작고 줄기 잎은 마주나며 넓은 달걀 모양이다. 5∼6월에 종 모양의 꽃이 피고 8월에 열매가 익는다. <김태정 님의 ‘우리 식물도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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