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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오지마을 트레킹] 봉화 구마동계곡 따라 30리 길, 냉이 콩국수가 구수하다
[오지마을 트레킹] 봉화 구마동계곡 따라 30리 길, 냉이 콩국수가 구수하다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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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봉화 구마동계곡의 오지마을.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봉화 구마동계곡의 오지마을.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봉화] 띄엄띄엄 집 몇 채, 10년 전에 폐교된 초등학교, 텅빈 마을 게시판, 그리고 안세기 할아버지. 구마동계곡 봄을 따라서 띄엄띄엄 있는 오지마을을 찾았다.

구마동계곡은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계곡 중 가장 긴 1백리 길이다. 봉화군 소천면 고선2리, 현동리에서 태백방면으로 약 4km 지점에 자리한 잔대미마을에서 시작한다. 중리, 소현, 마방, 노루목, 큰터, 이름조차 지극히 오지다운 마을들을 지나서 걷다보면 태백산에 이른다.

텅빈 마을 게시판. 색깔 입혀서 그림이라도 그려주고 싶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텅빈 마을 게시판. 색깔 입혀서 그림이라도 그려주고 싶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그러나 걸어서 해거름에 닿을 수 있을까? 큰터마을까지 30리길. 다섯 개 마을을 지나는데 11가구. 집들이 띄엄띄엄 있다. 몇 집이 있나 수를 헤아리다가 까먹고 있을 때쯤 다시 집 한 채가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니 어느 마을인지 물을 수도 없고 너무 한적한 게 때로는 답답하다.

그냥 계곡 물소리를 친구 삼아 걷는다. 계곡에서 봄 소리가 난다. 유쾌한 봄이 흐른다. 봄과 함께 걸었지만 표현할 재간이 없다. ‘졸졸졸, 콸콸콸, 또로륵 또로륵’이 소리는 아니다. 봄의 소리를 찾아다오. 오지하면 비포장 길을 생각하는데 구마동계곡은 콘크리트길이다.

오지마을의 길을 닦으면 정부 보조금이 더 지원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3년 전쯤에 큰터까지 길이 닦였다. 간혹 비포장 길이 있기는 하지만.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나무들 사이로 고선초등학교가 보인다.

십년 전에 폐교된 고선초등학교에서 동호회 오지코리아.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십년 전에 폐교된 고선초등학교에서 동호회 오지코리아.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1962년 4월에 개교하여 졸업생 1백40명을 배출하고 1992년 3월 1일 폐교되었다’폐교된 지 10년이 넘은 작은 학교다. 금방이라도 풍금소리가 운동장에 퍼질 듯 산골학교의 아담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운동장이 그리 크더니 이상하게 운동장이 작아졌다. 키가 많이 큰 것도 아닌데, 세월을 돌려보려고 빈 운동장을 달린다. 바람이 시원하다.

간혹 보이는 집은 빈집이거나 혹은 민박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새로 지은 집도 있으나 옛집을 그대로 개조해서 민박을 하고 있다. 계곡이라지만 양지바른 둔덕을 골라 지은 집들이라 채광이 좋다. 마을 게시판에는 최근 들어서 전단지 한 장 붙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마방마을 앞에는 자동우량경보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마방마을 앞에는 자동우량경보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이 산골에 영화 포스터가 붙을 일은 없고, 가끔 면사무소에서 붙이는 산불방지포스터 정도겠다. 조용하다. 계곡 옆으로 버들강아지가 꽃을 피웠다. 봄이 버들강아지를 깨우는 것인지 버들강아지가 봄을 깨우는 건지,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계절이 좋다. 트레킹은 여름에는 덥고 봄과 가을이 좋을 듯 하다.

가을은 좀 시끄럽고 이맘때가 조용하다. 바위에 뭔가 써 있어 유심히 보니 ‘이곳은 1968. 6. 7 간첩이 자수한 부락이다. 귀한 생명 버리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봉화경찰서장-’ 간첩은 삼척과 울진으로 침입한다고 하는데 멀리까지 와서 자수를 했다. 이 곳에서 자수한 그는 지금쯤 어디에 살고 있을까?

동암곡 가는 길.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동암곡 가는 길.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계곡 근처 물웅덩이에 도롱뇽이 알을 낳았다. 올챙이로 부화할 때까지 큰물이 나지 않아야 할텐데, 계곡 센 물살에 휩쓸려 세상구경 제대로 할지 아슬아슬하다. 구마동계곡에서 삼십리 들어가는 큰터마을. 동암곡, 구마산장을 오르는 길의 계곡 물빛이 유난히 맑다. 동암곡을 오르는 길에 여러 개의 돌탑이 보인다.

안세기 할아버지는 큰터마을의 터줏대감이다. 13살에 이곳으로 들어와 60년을 넘게 살고 있다. 동암곡에 오르는 돌탑도 할아버지가 계곡에서 손수 날라 쌓았다고 한다. 79세 나이답지 않게 머리도 까맣고 정정하다. 공기가 좋으면 머리도 세지 않는 것일까?

흙길을 걸으며 비밀스런 마을을 탐험한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흙길을 걸으며 비밀스런 마을을 탐험한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할아버지 집도 동암곡도 싸리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예쁘다. 비를 맞지 않게 싸리 울타리에 달아놓은 전등에 페트병을 씌웠다. 산 사람의 지혜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묵은 김치를 말려서 염소에게 준다고 한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묵은 김치를 말려서 염소에게 준다고 한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묶은 김치가 햇볕에 꼬실꼬실 마르고 있다. 먹는 사람이 없으니 잘 말렸다가 염소에게 준다고 한다. 집 기둥에는 종자 옥수수가 달려있다. 안세기 할아버지께 옥수수술을 한잔 얻어먹었다. 안주가 구수한 냉이 콩국수다. 콩국수는 밭에 널려있는 냉이를 뜯고 땅속에 묻어두었던 무를 곱게 채 썰어서 콩육수와 곁들였다.

처음 먹어보는 냉이 콩국수다. 사실 이름을 몰라 내 나름대로 붙어 보았다. 할아버지께 이름을 물었더니 “할머니가 시장에 가서, 나는 몰라”하며 수줍게 웃는다. 계곡을 따라 걸으면서 처음으로 ‘띄엄띄엄’이라는 부사어의 느낌을 알았다.

대도시의 꽉 찬 느낌과 전혀 다른 텅 빈 듯 하지만 비지 않은 띄엄띄엄. 이제 집 주위 밭에는 옥수수, 배추 등이 심겨지리라. 긴 겨울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다시 긴 겨울을 준비한다. 띄엄띄엄 저녁 연기가 한가롭다.

안세기 할아버지가 사는 큰터민박집.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안세기 할아버지가 사는 큰터민박집.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Interview 안세기 할아버지 (79세)
13살 이곳에 왔어. 그 때는 징그럽게 깊은 골짜기였지만 지금 보다 사람은 많이 살았지. 백명 살았어. 화전민들이 많았지. 왜 불지르고 밭 일구는 사람들 말야. 박대통령 때 다 내보냈어. 땅이 있는 사람만 남고 다 내보냈지. 나는 땅이 있으니까 이 곳을 지키고 있지.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찾아와. 전에 살았던 집터가 생각나서 오는 사람도 있지만 묘를 찾으러 많이 오지. 이 산도 하루가 달리 변하는데 오랜만에 와서 어찌 찾겠어. 나 아니문 찾을 수 없지. 오래 살았으니 찾아줘야지. 2십리 더 가면 한 집 더 있어. 근디 점심 잡섭니껴?

Tip.
청옥산자연휴양림 : 영주에서 태백간 국도변에 위치한 청옥산자연휴양림은 해발 7백m에 자리하고 있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서 아침에 산책하기에 좋다. 침·활엽수 40여종이 뿜어내는 나무향이 향기롭다.

산림문화휴양관 : 2층으로 여러 개의 방이 있어서 단체 여행객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세면장과 화장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휴양림 안에 매점이 있어서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다. 단지 관리 인력이 부족해서 주방용품을 받아서 사용하고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구마큰터 민박 : 할아버지 할머니가 참 민주적으로 살고 있다. 명함에 ‘안세기·조선금’ 두 분 이름을 나란히 넣었다. 현대식 집은 아니지만, 어찌나 깨끗하게 청소를 했는지 방바닥에 윤이 나서 함께 간 일행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말 잘하면 혹 밥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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