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축제따라잡기] 구림에서 아스카로 부는 바람, 영암 왕인문화축제
[축제따라잡기] 구림에서 아스카로 부는 바람, 영암 왕인문화축제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4.06.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영암 왕인문화축제.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영암 왕인문화축제.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영암] 벚꽃 피는 4월이면 영암은 천국이다. 너무 입에 발린 칭찬일까? 아름다운 백리 벚꽃길과 월출산의 기막힌 조화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때쯤 해서 열리는 축제가 바로 영암의 왕인문화축제다. 

왕인박사 그는…
왕인박사는 백제 14대 근구수왕때 월출산 주지봉 아래 ‘성기동’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월출산의 맑은 정기 때문인지 왕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했다.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글 읽는 소리에 홀로 글을 깨우칠 정도였다. 왕인은 8살이 되던 해,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던 문산재라는 서당에 입문했다.

그 곳에서 유학과 경전을 공부했던 그는 열여덟이 되던 해 과거를 통해 오경박사로 등용된다. 오경박사는 주역, 시경, 서경, 예기, 춘추 등 유교의 경전에 능통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 무렵 백제는 고구려의 계속적인 침략에 위협을 느꼈다. 17대 아신왕은 백제의 태자 전지를 일본으로 보내며 수교를 맺기 원했지만 왜왕은 태자를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음독을 하며 오르는 250 천자문 계단.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음독을 하며 오르는 250 천자문 계단.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대신 그는 훌륭한 학자를 청하였다. 결국 왕인 박사가 태자를 대신하여 영암의 상대포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가 갈 당시에 유명하다는 도공과 석공이 함께 갔는데 이들이 일본의 새로운 문화를 열었다. 왕인박사는 가지고 간 천자문 1권, 논어 10권을 가지고 일본인들에게 한문학을 가르쳤다.

일본의 아스카 문화는 이를 바탕으로 꽃을 피웠다. 구림에서 보낸 기별 축제가 열리는 왕인박사 유적지에는 벚꽃들의 마지막 인사가 한창이었다. 꽃잎이 카펫처럼 땅을 덮었다. 올해의 왕인문화축제는 4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동안 개최됐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염원을 담아 소지를 올렸던 배움의 등.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염원을 담아 소지를 올렸던 배움의 등.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4월 9일 금요일 저녁 7시, 개막식이 시작됐다. 축제장은 조용하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행사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어디 갔나 했더니 공원 내에 있는 정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개막굿이 시작된단다.

왕인의 혼을 불러 소통과 상생의 만남을 주선하는 굿. 무당들이 통통 튀며 제례를 올릴 줄 알았는데 감미로운 전통음악과 현대무용이 적절히 버무려졌다. 좀처럼 현대 무용을 보기 힘든 사람들도 무용수의 열연에 그만 넋을 잃었다.  

어느 덧 행사장을 비추던 해는 월출산 뒤로 숨어버리고 어슴푸레한 조명이 행사장을 더듬는다. 무용수들의 현란한 몸짓과 정자를 비추는 붉은 기운, 차디찬 연못 한가운데를 비추는 조명사이로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친다. 왕인의 혼이 구림에서 보낸 기별을 들었을까?

우물가에서 만난 선남선녀들의 이야기가 무언극으로 펼쳐진 '신화전놀이'.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우물가에서 만난 선남선녀들의 이야기가 무언극으로 펼쳐진 '신화전놀이'.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구림마을에서 보낸 아침
영암에서의 아침은 구림에서 맞았다. 구림마을. 삼한시대부터 계속된 2천2백여년의 전통이 서려있다. 이 마을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를 배출한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성기동 마을 처녀가 개울로 빨래를 하러 나왔다가, 우연히 오이를 따먹고 아기를 낳았다. 구정봉 갈대밭에 그 아기를 내다버렸는데 사흘 후 찾아가니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모여 그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 아기가 바로 유명한 도선 국사.

그 이후 마을은 비둘기 숲이라는 뜻의 구림마을이라고 불렀다. 구림마을은 터가 좋아서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으며 주민자치계 대동계가 5백년 넘게 활발히 움직이는 마을이다. 올해부터 구림마을에서는 민박을 받는다. 현재는 대동계원보다 일반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지만 마을 곳곳에는 예전의 영화를 알려주는 문화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왕인박사 행렬. 대불대학교 관광외국어학부 학생들이 역할을 담당했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왕인박사 행렬. 대불대학교 관광외국어학부 학생들이 역할을 담당했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왕인박사, 그를 만나다
구림마을에서 축제장이 있는 왕인박사 유적지까지는 불과 10분 거리다. 구림마을 구경 왔다가 축제장에서 울리는 신명나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돌리고 만다. 축제장 한 편에서는 지글지글 화전 지지는 냄새가 방문객을 끌어 들인다.

멀리서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화전.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멀리서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화전.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경연대회를 의식한 탓인지 만드는 팀마다 정성을 다하는데 지켜보는 사람들은 맛을 보고 싶어 군침을 꿀떡꿀떡 넘긴다. 열심히 전을 지지는 아주머니 하나를 꼬셨다. 군침을 흘리며 서있던 기자가 안쓰러웠던지 아주머니가 몰래 하나를 건네준다. 고소한 찹쌀 지짐에 달달한 꿀과 진달래…. 음~. 맛있어.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화려한 화전나라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는 사이 메인 행사장에서는 화전놀이 가는 백제인들의 모습이 무언극으로 펼쳐졌다.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관람객들이 박장대소 한다. 천자문 250계단에서는 천자문 읊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250계단에 정성스레 새겨져 있는 천자문을 모두 읽으면 상품을 받을 수 있다.

학창시절부터 줄기차게 한자를 배웠던 어른들이야 쉬운 일이겠지만 어린 학생들은 힘겹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계단은 놀이대상이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누가 더 많이 올라가나 내기를 하느라고 바쁘기만 하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온 외국인들까지 합세해 계단이 북적인다.

왕인박사 퍼레이드가 펼쳐졌을 때 군대가 도열한 모습.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왕인박사 퍼레이드가 펼쳐졌을 때 군대가 도열한 모습.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드디어 기다리던 왕인박사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취타대의 행진 뒤로 왕인박사가 상대포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었던 장면이 재현됐다. 기자들이나 방문객들 모두 왕인박사의 모습에 사진기를 들이댄다. 조용히 퍼레이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극 형태로 전환하여 사람들의 이해를 도왔다.

왕인이 어떻게 일본에 건너갔으며 그가 남긴 업적은 어떤 것이 있었는가를 극을 통해 설명한다. 입고 있는 복장이나 참여한 인원,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만 보아도 하루 이틀 준비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퍼레이드가 끝나자마자 왕인박사를 찾아 헤메었다. 아까의 위엄은 어디로 가고 친구들과 사진찍기 바쁜 젊은 청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국악고등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취타대는 축제에 활기를 띄웠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국악고등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취타대는 축제에 활기를 띄웠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대불대학교 관광외국어학부 학생들로 이루어진 퍼레이드단이라며 수줍음을 감추지 못했다. 영암 왕인축제의 가능성을 본 것은 아마도 젊은 청년들이 축제를 돕고 있었던 점일지도 모른다. 다른 축제처럼 마을 주민들이, 부녀회 회원들이 화전을 열심히 지지고 널뛰는 광경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부스 안과 수많은 프로그램 안에는 영암의 젊은이들이 봉사자로서 함께하고 있었다.

또한 축제의 이름만 지어놓고 엉뚱한 프로그램과 장터로 일관하는 수많은 축제와 달리 축제를 개최한 그 이유만은 잊지 않았다. 왕인박사를 중심으로 한 퍼레이드와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왕인의 정신을 미래의 영암인과 함께 하겠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영암문화축제를 이어갈 수 있는 저력이 아닐까?

영암도기문화센터 앞마당에서 펼쳐진 도자기 전시.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영암도기문화센터 앞마당에서 펼쳐진 도자기 전시.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Interview 김철호 (영암 군수)
“영암 왕인축제가 이 같은 성공을 거둔 까닭은 영암의 군민들과 군청 공무원, 향우회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일군 축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는 관주도로 많은 행사를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민간인 축제전문가를 영입해 관주도에서 민간주도적인 축제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왕인축제는 역사적인 인물을 테마로 하여, 한국적이고 완성도 높은 축제였다는 평을 얻었다. 그 결과 2년 연속 정부집중육성축제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왕인박사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많은 일본인들이 방문하자 영암군에서는 80억원을 투자하여 지난 3월에 왕인공원을 조성했다.

김철호 영암군수.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김철호 영암군수. 2004년 6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영암군은 이같은 여세를 몰아 왕인과 관련된 유적은 물론 다양한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옥과 유교문화가 잘 보존돼 있는 구림마을에 앞으로 160억원을 투자하여 남해안관광벨트의 역사문화 빌리지로 조성하고, 남해신사와 마한유적들이 남아 있는 시종면 고분군 일대는 70억원을 투자하여 마한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악성 김창조선생의 현창사업과 종이박물관 건립 사업, 도선국사 현창사업, 천황사 복원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본래 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군수는 평상시에도 영암의 역사적인 사료나 고증에 있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다.

“역사의 고장인 만큼 역사적인 관광사업에 중점을 두었지만 앞으로는 스포츠 관광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영암의 각종 경기장을 활용해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금년 가을에는 아시아 암벽등반 경기대회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김군수는 다른 고장과는 차별화된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관광영암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월출산의 정기를 받은 기의 고장, 2천년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영암의 숨은 노력이 결실을 맺기 바란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