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김제] ‘망해사’라는 절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지요. ‘참, 이쁜 절도 다 있구나’ 라구요. 망해사라는 이름에서 바다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바다를 꿈꾸는 절이라니…. 마음속으로 절을 하나 그려 보았지요. 바다를 앞에 둔 고즈넉한 산사를요. 그 이미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지요. 다녀온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서해바다를 향해 엎디어 있는 그 절은 저녁노을 즈음에 가장 아름다울 거라고요.
망해사를 향해 가는 길에 만경평야가 아득하게 펼쳐져 들판과 하늘을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너른 평야를 바람은 제 것인양 휘휘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망해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난 작은 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소 투박한 시멘트 포장길이었지요. 길 양쪽에 제법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하듯 노송들이 들어서 있어서 그 길이 흙길 그대로였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저녁바람을 뚫고 간간이 솔향기가 번져 와서 그 길을 걸을 만 했습니다. 오르막 산길이 두 갈래의 길로 나뉘어 지는 지점에 네 개의 부도가 나란히 서있었습니다. 망해사 부도밭, 딱히 부도를 설명해 주는 입간판도 하나 없고 기념비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었으나 다만 그것들이 하나같이 투박한 것이 귀여워 발길을 머물게 했습니다.
부도밭을 기준으로 위쪽으로 난 길은 진봉산 낙조대를 향하는 길이고 아래쪽은 망해사 가는 길입니다. 아래쪽 산길을 돌아 망해사를 발견하기까지 여전히 설레임이 남아 있었지요. 갑자기 군용차가 터덜터덜 나타나 먼지를 일으키고 나를 앞질러 갈 때까지는요. 절 옆에 군부대가 있었습니다. 절과 군부대라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게 나란히 선 두 건물로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정갈하게 쓸어 놓은 절 마당에서 뽀얀 흙먼지가 날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무색하게 마당엔 돌들이 가득 깔려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절 마당에 들어서자 주차금지용 노란 팻말들이 마당 한켠을 차지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마침 토란대를 말리고 계시던 보살님께 물었습니다. 군부대가 바로 옆에 있어 오히려 든든하다고 첫 번째 질문에 수월한 답이 나왔습니다.
절마당의 흙이 진흙인지라 비라도 한번 오고 나면 도무지 진득거려 다닐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돌을 깔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절 아래 주차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를 가지고 절 마당까지 들어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어 주차금지용 팻말을 절 마당에 들여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세 번째 질문에 대답하시더군요.
나그네의 시각으로 보는 불편사항이 절에 기거하시는 분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모양이니 묻는 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도리밖에요. 절은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고즈넉했습니다. 비구니 스님만 몇 분이 낙서전에서 기거를 하신다는데 낙서전 댓돌 위에 하얀 고무신만 정갈한 채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바다를 향해 ㄱ자 형식으로 ‘망해사’라고 쓰인 요사채와 극락전과 낙서전 건물이 나란하고 그 한가운데 범종이 모셔진 범종각이 들어서 있었지요. 이 단출함 속에 우뚝 팽나무 세 그루가 있어 나무 아래로 사람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딱히 앉을 의자가 없어 사람들은 가져온 돗자리를 펼치고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습니다.
백제 의자왕 2년 부설스님이 세웠다는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고 했고, 지금의 망해사는 조선 선조 22년에 진묵스님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극락전 앞뜰이 너무 소박하여 돌확인 듯 작은 그릇 속 부레옥잠의 통통한 줄기에 한참 눈길을 주다 뒤뜰로 나가 보았습니다. 순간 바람이 언뜻 불어와 댓잎에 부딪히는 것이었습니다.
극락전 뒤뜰과 마주한 낙서전의 뒤뜰에 대숲이 들어차 바람에 댓잎 부딪히는 소리가 청량했습니다. 범종각 아래 낙서전을 마주한 곳에 놓인 돌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자리는 노을 지는 서해바다를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지요. 멀리 붓으로 획을 그은 듯한 고군산 열도가 바라다 보였습니다.
바다는 그 곳으로부터 물이랑을 만들어 망해사를 향해 찰랑거리듯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범종각 아래는 아득한 절벽, 그 아래 개펄을 머금은 서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었지요. 파도가 되지 못한 잔잔한 물결무늬를 바라보다가 그 바다 속에 잠겼을 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바다를 향한 기도를 끝마치지 못한 채로 물에 잠긴 절을 다시 세운 그 사연을 짐작해 보기에 물빛은 너무 짙어 보였습니다. 조금씩 저녁이 깊어 갔지만 해는 쉽게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름층이 두텁게 깔린 수평선 너머로 잠깐 햇살이 비껴들 뿐이었지요.
끝내 장엄한 망해사의 일몰을 마주하지 못하였지만 범종각 아래 돌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내가 떠나온 자리, 범종각 아래 돌의자에 나란히 커플룩의 연인들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양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절 마당을 서성이다 법당 격자창문에 비친 노을빛 단청을 보았으니 망해사는 저물 무렵이 충분히 아름다운 절로 오래 남을 것이었습니다.
저녁 6시는 망해사 타종 시간이랍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손님만 아니었으면 33번의 망해사 종소리를 들었을 것을 아쉽게도 오늘은 그만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서해바다를 깊게 물들이는 저녁노을과 그 바다를 향해 서른 세 번의 종소리를 울리는 망해사의 저녁예불 시간은 이제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겨 두고 갯내음 따라 심포항에 닿았습니다.
어슴푸레한 저녁빛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는 시각이었습니다. 포구에 닻을 내린 고기잡이배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풍경이 보였습니다. 백합조개를 파는 상인들이 마지막 손님을 부르고 주황빛 나트륨 등이 방파제 쪽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갯내음 가득한 좁은 거리에 갓 잡아 올린 백합들이 즐비했습니다. 딱, 딱…. 백합조개 더미속에 한 상인이 손바닥에 서너 개의 조개를 올려 두고 조개를 감별하는 중이었습니다.
왼손 바닥에 서너 개의 조개를 올려놓고 오른손에 또 다른 조개를 들고서 하나씩 두드려 보아 그중 속이 빈 백합조개를 찾아내는 일이었지요.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로 신기하여 오래 들여다보고 있어도 손바닥에 놓은 백합조개 중 어느 것이 속빈 강정인지 도무지 분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손바닥에 놓은 조개를 쭉정이와 진짜로 갈라놓기까지 순식간처럼 보였고, 그런 상인의 손놀림엔 일정한 리듬이 실려 있었습니다. 포구로 향한 길을 따라 온통 백합조개 천지였습니다. 갯내음은 필시 백합조개가 풍기는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아무런 꾸밈이 없는 포구, 그 가운데로 역시 소박하기 그지없는 길지 않은 방파제가 바다를 향해 있었습니다.
저녁에서 밤으로 가는 하늘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고, 몇 개의 나트륨 가로등이 주황색 불빛을 밝히고 있는 심포항의 밤은 일찍 찾아 왔습니다. 백합더미도 조개를 팔던 상인들의 왁자함도 어느 순간 포구에 깃든 어둠 속에 갇히고 몇 개의 불빛만 간신히 길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녁놀이 질 무렵 망해사에 한번 가 보시지 않겠는지. 저녁 6시 타종 시간에 맞춰 망해사를 돌아 나와 낙조대에 올라 해 지는 서해바다를 앞에 두고 종소리에 취해 보지 않으시겠는지. 당신께 권해 봅니다. 망해사에서의 일몰을 보고 나서 심포항에 들러 백합구이나 백합탕으로 싱싱한 바다를 맛보며 포구의 저녁을 즐기심은 또 어떨런지요.
Tip.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서전주 나들목 -> 김제 방면 716번 지방도 -> 김제 -> 29번국도 만경방향- 만경종합여중고교 -> 702번 지방도 심포항 방면 -> 망해사
· 서해안 고속도로 서김제 IC -> 29번 국도 만경 방향 -> 만경종합여중고교 -> 702 지방도 심포항 방면 -> 망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