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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옛 마을 이야기] 삶의 냄새가 폴폴 나는 마음의 고향, 제주 성읍 민속마을
[옛 마을 이야기] 삶의 냄새가 폴폴 나는 마음의 고향, 제주 성읍 민속마을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5.01.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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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제주 성읍 민속마을의 풍경.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제주 성읍 민속마을의 풍경.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제주] 제주도는 전설의 섬이다. 섬 곳곳에 전설이 살아 있다. 하루 이틀 머무는 여행자들은 남국의 풍광에 취해, 설사 전설을 듣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흘리고 마는 게 보통. 그러나 전설은 그냥 허무맹랑하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삶의 일부분이다.

한라산은 어머니 같은 존재다. 제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수많은 자식들을 보듬고 있는 형상이다. 북쪽의 제주시, 동쪽 성산일출봉, 남쪽 서귀포 그리고 저 멀리 마라도 끝자락에서도 고개만 쳐들면 한라산이 가물가물 거린다. 그렇다. 제주도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머니 품 같은 한라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설움에 복받치고 힘에 겨울 때 고개를 들면 한라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주 민초들 역시 눈물겹도록 바람과 함께 싸워 왔다. 어쩌면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그들의 눈물일지 모른다. 한라산은 그들의 위로자이며 아름다운 신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한라산은 숙명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수십 번도 더 밟아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호남평야가 두둑이 알곡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한라산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과 계속된 힘겨루기를 통해 얻은 선물일 게다.  

수많은 전설을 품은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다.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수많은 전설을 품은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다.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성읍 민속마을 역시 한라산의 그늘에서 벗어날수 없다. 한라산은 있는듯 없는듯 멀리서 마을을 지켜본다. 성읍 민속마을 만큼 제주 문화와 전통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으랴. 제주만의 초가집과 바람에 맞서 싸워온 선인들의 생활양식 그리고 돌하르방, 갈옷, 정낭, 애기구덕, 통시 등 제주도 민초들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진 곳이다. 박제된 전시관이 아니라 집집마다 사람이 살고 있어 삶의 냄새가 풀풀 묻어난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툭 던지는 제주 사투리에 그 의미를 찾느라고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는 것 역시 제주만의 맛이다. 한라산 윗세오름은 ‘위에 있는 세 오름’이란 뜻이란다. 제주도 말은 늘 이렇다. 한자를 연상하면 머리만 복잡해진다. 그저 발음하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 “빙떡은 얼음처럼 하얗게 생겨서 빙떡인가요?” “아니요. 빙빙 말아서 만든 떡이라고 해서 빙떡이어요”

마을 한복판에는 성읍민속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는 나무들이 긴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천연기념물 161호인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천 년이며 길가의 팽나무는 6백 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말이 천 년이지 고려시대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남문 입구에는 4기의 돌하르방이 서 있다. 제주의 전형적인 돌하르방과는 달리 육지의 미륵상처럼 둥글넓적하게 생겼다. 굳게 다문 입술, 부리부리한 눈, 떡 벌어진 몸체. 그래서 더욱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남쪽 성벽을 따라 거닐면서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제주도의 정낭. 세 개의 막대로 집주인이 있고 없음을 표시한다.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제주도의 정낭. 세 개의 막대로 집주인이 있고 없음을 표시한다.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집주인이 외출한 것을 표시하기 위해 입구에 걸쳐 놓은 세 개의 막대기가 바로 정낭이다. 한 개만 걸쳐 있으면 주인이 이웃에 마실 간 것이고 두 개가 걸쳐 있으면 가까운 곳에, 세 개가 걸쳐 있으면 멀리 출타를 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도시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도둑님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선전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옛날엔 사람 간의 신뢰가 돈독했던 모양이다.

비가 오면 자기 집의 빨래보다 옆집 빨래를 먼저 걷어주었던 것이 제주 사람들의 정이었다고 한다. 제주의 민가는 현무암으로 된 돌로 벽을 쌓고, 짚으로 지붕을 덮는다. 안거리(안채)와 밖거리(사랑채)를 마주보게 하였고 아들이 장가들면 아들 내외에게 안거리를 물려주고 부모는 나가 살거나 밖거리에 살게 된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넉넉한 공간을 내어주는 부모의 정이 느껴진다.

육지가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는 온돌형식이라면 이곳은 ‘정지’라는 부엌이 별도로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특별한 취사도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돌 세 개를 品자 모양으로 깔고 그 위에 달랑 솥을 올려놓은 것이 전부다. 연료는 소똥을 말려 사용한다고 한다. 정지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도 하고 일도 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빗물을 모아두는 촘항.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빗물을 모아두는 촘항.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초가는 바람을 이기고자 높이가 매우 낮다. 습기가 올라오는 것보다 바람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풍채는 햇볕과 비바람이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제주도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빗물을 모으기 위해 나무 밑에 촘항을 따로 놓았다. 한편에 물허벅이 자리잡고 있다. 육지처럼 머리에 이고 가면 바람에 휘청거릴 수 있고 바닥에 돌이 많아 넘어질 위험이 크다. 그렇기에 제주 여인들은 허벅을 등에 지고 다닌다.

애기구덕은 아기침대다. 바구니 안에 바둑판처럼 끈으로 묶어 그 위에 짚을 올려놓고 아기를 뉘여 흔든다고 한다. 물론  바느질 할 때는 발로 흔들겠지.

제주의 전통 화장실 통시를 놓치면 곤란하다. 낮은 울타리 한 구석에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지붕은 있지만 문은 없다. 응가를 하면 돼지가 바로 달려든다고 한다. 사나운 돼지를 내쫓기 위해 아이들은 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들어간다고 한다. 제주 똥돼지는 비계가 얇고 고기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똥 먹는 돼지는 거의 사라졌고 사료를 먹인다고 한다.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빙떡.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빙떡.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Tip.
◆ 제주 특유의 맛, 빙떡

메밀을 맷돌로 갈아 가루를 만들고 물을 넣어 부침개 반죽을 만든다. 솥뚜껑 위에  돼지기름을 발라 얇게 구운 다음 그 안에 무채를 넣고 빙빙 말면 빙떡이 완성된다. 메밀가루이기 때문에 껍데기가 부드럽고 담백하다. 무채가 들어 있어 씹는 맛이 좋고 시원하다. 빙떡은 맛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좁쌀로 만든 오메기술과 함께 하면 금상첨화다.

제주의 민요, 오돌또기를 조롱박 장단에 맞춰 부르는 사람들.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제주의 민요, 오돌또기를 조롱박 장단에 맞춰 부르는 사람들.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 제주의 민요, 오돌또기
제주도의 대표적인 민요인 오돌또기를 조일훈가옥에서 듣는 행운을 얻었다. 제주도에서만 불려지므로 제주도 고유의 민요로 알려져 있다. 경쾌하고 구성지며, 가락이 흥겹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다. 조롱박으로 물허벅 몸통을 때리고 왼손으로 물허벅 뚜껑 부위를 치면서  장단을 맞춘다. 그 소리가 아주 그윽하다. 특히 뚜껑을 내리치는 소리는 경쾌하다.

갈옷을 만드는 모습.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갈옷을 만드는 모습.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 갈옷
갈옷은 6~7월경 풋감을 따서 으깬 것을 광목천에 골고루 묻힌 다음 손으로 주물러 감물을 들이고 햇볕에 7일 정도 말려서 만든다. 처음에는 매우 빳빳하고 색도 빨갛지만 입고 지냄에 따라 점차 부드러워지고 갈색으로 변해 입기에 적당해진다. 제주도 특유의 옷으로 농어민들이 작업복 겸 평상복으로 입는다. 한복의 저고리와 바지가 기본이며 들에서 일을 하다가 비를 맞아도 몸에 달라붙지 않아 편리하며, 땀 냄새가 나지 않아 오물이 붙어도 잘 떨어져 위생적이다. 감에 들어 있는 방부제 성분으로 인해 그냥 두어도 잘 썩지 않고 옷감이 더 질겨지는 등의 장점이 있다.

깊고 진한 맛의 꿩수제비.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깊고 진한 맛의 꿩수제비. 2005년 1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 제주 향토음식, 꿩수제비
제주는 꿩이 많기로 유명하다. 사육한 것이 아니라 자연산이다. 성읍민속마을에 꿩전문 요리집이 몇 군데 있다. 꿩을 푹 고아 진한 국물을 우려내는데 버섯, 파 등과 어우러져 깊은 맛이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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