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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행길 쉼터] 미시령과의 짧은 만남, 시간이 화살이요, 화살도 시간같이 아득하다
[여행길 쉼터] 미시령과의 짧은 만남, 시간이 화살이요, 화살도 시간같이 아득하다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5.16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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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태양이 내려앉은 미시령 고개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태양이 내려앉은 미시령 고개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인제] 설악산 미시령 초입에서 만난 재미있는 표지판 하나, 아니 다섯.

“미시령 길은”/“꾸불꾸불하고 낭떠러지가 많아”/“사고 위험이 많으니”/“우회전 커브·더욱 조심 교통규칙 준수하여”/“안전운행을 합시다. 고성경찰서장”

속초, 고성 쪽에서 미시령을 오르면 초입인 원암리 콘도 단지 근처에서 이 표지판을 만난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속초, 고성 쪽에서 미시령을 오르면 초입인 원암리 콘도 단지 근처에서 이 표지판을 만난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겁나게 긴 교통표지판 문구다. 5m 간격으로 표지판 다섯 개를 이어 세워 놓았다. ‘고갯길 조심’ 정도의 표지판 하나로는 성이 안 찼나. 운전 중에 저걸 다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걸 모를 리 없건만, 그 경찰서장, 저 미시령 고개 앞에서는 할 말 무지하게 많았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백두대간 고개란 참…. 쓱 지나치려 했었는데 결국 궁금증이 도졌다.

속초, 고성과 인제를 연결하는 하늘 고개가 미시령(해발 826m)이다. 그 옛날 한계령 남쪽 어딘가에 소동라령(所冬羅嶺)이라는 고개가 있었는데, 이 길이 좁고 험하다 하여 1493년 미시령길을 냈다 한다.

미시령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이 새겨진 낡은 미시령 비가 서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시령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이 새겨진 낡은 미시령 비가 서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시령(彌矢嶺)은 원래 미시파령(彌時坡嶺)이었다. 미(彌)자에 활 궁자가 들어있어 그런지 화살과 연관된 유래가 많았단다. 실제로 지금은 화살 시(矢)자를 쓰고 있다. 하지만 실은 아득할 미(彌)자에 때 시(時)자, 그리고 언덕 파(坡)자다. 아득한 시간, 너무 힘들어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걸리는 고개다.

정상의 휴게소 광장. 바닥에 노란 선이 그어져 있다. 중앙선도 아닌 게 뭔가 했더니, 노란 선 이쪽 편 휴게소 건물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 1번지요, 저쪽 편 휴게소 건물과 주유소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 1번지란다.

휴게소 앞 '만남의 집' 매점을 운영하는 이미자 아주머니.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휴게소 앞 '만남의 집' 매점을 운영하는 이미자 아주머니.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휴게소 전체가 산 1번지로되, 절반은 고성이요 절반은 인제인 셈이다. 휴게소 광장에서 6년 째 매점을 운영하는 이미자 씨.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해 궁금해 하는, 당연하지만 흔치않은 아주머니다.

조사해 봤더니 ‘고개 아래 미륵(彌勒)이 화살을 쐈더니 이곳까지 떨어지더라’ 해서 미시령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미시령 휴게소에서는 멀리 속초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시령 휴게소에서는 멀리 속초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시령 고개에서 본 울산바위.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시령 고개에서 본 울산바위.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계절 따라 시간 따라 제각각인 산의 표정에 가슴이 뛴단다. 미시령 앞 두 개의 기암 봉우리가 정겹다며 ‘부부 바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매점 한 편에 설악산 야생초 십여 종을 키우고 있다. 바람이 심해 밖에다 내놓지는 못한단다. 아이보리색 꽃의 섬초롱과 이름은 요강인데 꽃은 자주색 종처럼 한 송이가 예쁘게 핀다는 요강나물에다, 노루귀와 처녀치마…. 설악산 동식물 도감을 옆에 끼고 산단다.

한계령이 열리면서 미시령은 초라해졌지만, 고성과 속초 주민은 이 서울 나들이 길을 여전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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