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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여행] 흐르는 세월 붙든 아름다운 풍경, 상주 두루 둘러보기
[가족여행] 흐르는 세월 붙든 아름다운 풍경, 상주 두루 둘러보기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5.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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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배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상주의 아름다운 풍경. 2005
배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상주의 아름다운 풍경. 2005

[여행스케치=상주] 경북 상주는 경상도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라 조선시대까지 아주 번잡했던 곳이었다.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북방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의 거점지역으로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이 지방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선 굵은 문화 유물들이 산재해 있다.

문명의 이기인 경부고속국도가 상주를 비켜가면서 상주는 내륙의 고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만큼 소외된 곳으로 살았다. 얼마 전 완공된 중부내륙고속국도가 관통하면서 상주는 서울서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으로 다가왔다.

낙동강이 수채화처럼 흘러가는 곳이자 음미하면 할수록 은근한 맛이 배인 상주. 곶감마을과 남장사로 이름난 상주. 알고보면 그 외에도 둘러볼 곳이 많다.

공갈못 풍경.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공갈못 풍경.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공갈못과 충의사
왜 공갈못이라는 이름을 가졌을까? 삼한시대 또는 고령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제천의 의림지와 김제 벽골제와 더불어 삼한시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고려 때는 못 둘레만 1만 6천척이 넘어 상전벽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1천년의 세월 동안 연못은 대부분 논밭으로 변했고 1959년 근처 오태저수지가 완공되면서 공갈못은 더 이상 저수지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1993년 옛 자리에 3천평의 연못을 조성하여 연꽃을 피워 옛 영화를 다시 보여주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황 등 수많은 시인 묵객이 이곳을 찾아 경치를 극찬한 시가 여태 남아 있어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문학은 남아 있었다. 연못 한쪽에 상주 지방 노동요인 공갈못 노래비가 연못가에 서 있다. 바다에 이순신이 있다면 육지에 정기룡 장군이 있었다.

육지의 이순신이라고 불렸던 정기룡 장군 사당인 충의사.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육지의 이순신이라고 불렸던 정기룡 장군 사당인 충의사.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임진왜란 때 신립의 휘하에 들어가 수많은 전공을 세우며 이름을 높였다. 금산싸움에서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하고 거창에서 왜군을 격파했고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은 수훈을 세웠다. 왜군과 격전끝에 상주성을 탈환했으며 정유재란 때도 큰 승리를 이끌어 냈다.

정기룡 장군의 사당과 충의재 그리고 전시관에는 유품인 교지와 관복, 그리고 옥대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보물 669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달리 삼층석탑(보물 117호)
3번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상주땅 사방이 분지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가히 한 왕국의 수도가 있을 만한 자리다. 그 드넓은 땅에서 자란 쌀은 임금님 진상품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품질이 좋다.

연꽃같은 산줄기 한 가운데 꽃밥처럼 자리잡고 있는 곳이 바로 화달리 삼층석탑이다. 석탑은 9세기경의 탑으로 추정되며, 하층 기단의 면석이 없는 것은 문경과 상주 등 이 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이기도 하다. 1층 몸돌에 목 없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풍광.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풍광.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경천대
낙동강 1천 3백리 물길 중에서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곳 경천대라 불리는 바위이다. 굽이쳐 오르는 강물 사이로 수백 년된 노송이 즐비하고 기암절벽이 한 눈에 펼쳐지는 곳이다.

바위 4개가 3층의 계단을 이루고 있다. 육지의 이순신인 정기룡 장군이 천마를 타고 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그 천마를 먹였던 말구유통이라고 여겨지는 돌구유가 경천대 옆에 패여 있다. 정자 기둥에 걸터앉아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인이 되어보자.

드라마 세트장도 있다. 드라마 ‘상도’에 의주포구를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전망대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데 산 이름을 짚어 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곳은 입구의 인공폭포다. 정기룡 장군의 동상과 천마가 하늘을 나를 태새다. 그밖에 MTB코스와 지압코스, 어린이 랜드도 둘러보면 좋다.

풍양 조씨의 종갓집인 오작당.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풍양 조씨의 종갓집인 오작당.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양진당과 오작당
양반의 도시답게 상주에는 선이 굵은 문화재가 많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역사가 묻어있고 곱씹을수록 진한 향이 우러나는 곳이 상주땅이다. 상주향교, 존애원, 체화당, 오작당,옥동서원 등 유적지마다 속 깊은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풍양조씨의 고택 양진당과 오작당도 마찬가지다. 우선 9칸의 기다란 구조가 색다른 눈요깃감이다. 맞배지붕까지 올려 있어 웅장한 종묘건물을 보는 듯하다. 더구나 마루 높이가 무척 높아 집이 2층에 올라간 것 같다.

이는 낙동강이 범람하여 집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란다. 방 구조도 미로 찾는 것처럼 복잡하다. 좌우측에 나무계단이 놓여 있고 툇마루를 따라 방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 방도 밭 전(田)자 모양처럼 겹을 이룬 것이 색다르다.

강원도 고성의 어명기 고택이나 왕곡마을의 방구조와 흡사했다. 남방식 구조와 북방식 구조가 절묘하게 절충되어 있는 셈이다. 날개채는 부엌과 헛간이 있으며 2층에는 방이 따로 놓여 있다. 따로 문이 놓여있지 않고 오로지 1층방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용도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아이들 공부방이었다고 한다. 툇마루의 기둥은 원형인데 아래쪽은 네모난 각주였다. 요모조모 집을 둘러보는 맛이 그만이다. 양진당에서 큰길로 나오면 오작당이 나온다. 사람이 살지 않는 양진당이 썰렁한 느낌이라면 이곳은 훈훈한 사람냄새가 난다.

이 집안 종부가 집안 제사를 위해 음식준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매번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었는데 며칠 전 마을 아주머니가 리어카를 끌다가 뒤로 넘어가 죽게 되자 마을사람 모두가 초상집으로 가게 되어 혼자서 제사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대문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랑채를 만나게 된다. 신발을 벗고 마루를 오를 때 잡는 줄(?)에는 손때와 세월의 때가 함께 어우러져 까맣게 변색되었다. 전통가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마루에 소파가 놓여 있어 빙그레 웃어본다. 종갓집답게 뜰에는 수많은 항아리가 놓여 있다. 노란 배추꽃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자전거의 모든 것이 전시된 자전거 박물관.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자전거의 모든 것이 전시된 자전거 박물관.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상주 자전거 박물관
학교가 파할 때 쯤이었다. 상주읍내를 지나쳤을 때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교문에서 자전거가 쏟아나오는데 중국의 소도시를 보는 듯 했다. 역시 상주가 자전거의 메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상주는 평평한 들녁 한가운데 있어 누구나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더구나 낙동강을 낀 곡창지대여서 경제적으로 윤택하여 1910년경 다른 지역보다 일찍 자전거가 보급되었다. 이곳에 자전거박물관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전거 바퀴 모양의 박물관에서 자전거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최초의 자전거인 목제자전거, 티셔츠 마크에 붙어 있는 오디너리 자전거 등. 양조장 막걸리통을 매달고 있는 자전거가 추억에 빠지게 한다. 자전거 체험실에는 작동원리를 이용하여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2백여 대의 이색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준다. 남장사까지 자전거타기 체험도 멋진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장각폭포 금란정에서 내려본 풍광이 일품이다.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장각폭포 금란정에서 내려본 풍광이 일품이다.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장각폭포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에서 시작한 시냇물은 장각동 계곡을 굽이쳐 흐른다. 6m 높이의 절벽을 타고 떨어져 작은 못을 이루고 있다. 폭포 위의 바위에 금란정이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폭포 주변의 소나무 숲과 붉게 물든 진달래가 잘도 어우러진다. 2002년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 촬영지이기도 하다. 좁은 길을 계속 올라가면 충주 중앙탑과 흡사한 상오리 칠층석탑이 밭 한가운데 서 있다. 현재 보수 중이다.

보은의 삼년산성처럼 성을 단단하게 쌓은 견훤산성.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보은의 삼년산성처럼 성을 단단하게 쌓은 견훤산성. 2005년 6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견훤산성
입구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땀 흘리며 올라야 견훤산성을 만날 수 있다. 삼국시대 민초들이 이 높은 곳까지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고 생각하니 아찔할 따름이다. 하지만 산성 위에서 바라본 경치는 그 발품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이 곳이 천연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속리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고, 화북면 소재지의 민가들이 오밀조밀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경치로 따지면 군사적 요지가 아니라 멋진 별장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백제의 견훤이 쌓았다고 해서 견훤산성이라 부르지만 사실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견훤이 이웃 동네 문경 가은 출신이기 때문에 이 고장사람들이 견훤의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구전에 의하면 견훤은 이곳에 성을 쌓고 세력이 강성해져 근거지를 전주로 옮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상주에서 속리산을 가로질러 보은과 괴산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49번 지방도는 본래 삼국시대 때부터 신라가 북으로 오르내리는 통로였으니, 견훤 산성이 그 길목을 지키는 요지임을 말해준다. 말굽형의 돌출된 망대가 튀어 나와 적의 동태를 감시할 수 있게 했다. 북쪽 전망대에서는 속리산 문장대가 한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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