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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길 따라 떠난 가을 국도 여행] 경북 안동에서 봉화까지 35번 국도여행
[길 따라 떠난 가을 국도 여행] 경북 안동에서 봉화까지 35번 국도여행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4.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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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안동] 권위 있는 여행지 평가 매체인 미슐랭 그린가이드의 별점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런 미슐랭가이드로부터 유일하게 별점을 받은 국도가 있다. 바로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에서부터 경북 봉화를 거쳐 강원도 태백까지 이어지는 35번 국도다. 이 가을, 안동에서 봉화까지 국도여행을 통해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해 보자.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부가 알까 하노라.” - 퇴계(退溪) 이황(李滉) <청량산가>.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35번 국도와 관련해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퇴계 이황 선생이다. 퇴계 선생은 안동에서 태어나 봉화의 청량산을 오가며 공부를 했고, 낙향한 후에는 이곳에 터를 잡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선생의 <청량산가>와 <도산십이곡>에는 낙동강과 청량산을 끼고 도는 이 길의 아름다움이 잘 묘사돼 있고, 심지어 청빈한 삶의 대명사였던 선생조차도 이곳의 비경을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는 속내도 드러내게 만들었다.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낙동강과 청량산을 끼고 도는 35번 국도.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도산서원에서 농암고택까지, 퇴계가 사랑한 길
35번 국도여행의 시작점은 도산서원(陶山書院)이다. 도산서원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나와 퇴계 선생의 손길이 구석구석 담긴 도산서원을 둘러본다. 고즈넉한 가을의 도산서원과 형형색색의 기운이 깃든 주변이 잘 어우러지며 멋들어진 풍치를 자랑한다. 도산서원 앞마당의 왕버들나무도 어서 오라며 반긴다. 퇴계의 손길이 머문 도산서당, 농운정사, 광명실 등은 퇴계의 흔적이 역력하다. 선조의 어명으로 석봉(石峯) 한호가 썼다는 도산서원의 현판도 고즈넉한 가을 도산서원의 정취를 더해준다.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도산서원 앞마당의 왕버드나무는 수령이 500년을 넘었다.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도산면 토계리에 자리한 퇴계 선생 묘소.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퇴계가 아끼고 사랑했다던 녀던길(퇴계오솔길)을 보기 위해 단천교 부근의 청량산조망대 쪽으로 차를 몰아간다. 녀던길은 퇴계가 숙부인 송재(松齋) 이우(李?) 선생에게 글을 배우러 다니던 낙동강변의 오솔길로, 퇴계의 <도산십이곡>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퇴계가 이 길을 따라 청량산을 오가며 학문과 사상을 닦았다 해서, 조선시대에는 퇴계를 흠모하던 선비들로 이 길이 가득 찼단다.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고즈넉한 농암고택의 장독대.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청량산조망대에서 바라본 청량산 풍경.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청량산조망대에 올라서니 아스라이 보이는 청량산과 굽이굽이 유연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며 여행자의 탄성을 이끌어낸다. 어찌 이리도 잘 어울린단 말인가. 그림 같은 풍경이라더니 과연 한 폭의 그림이다. 강변길 끄트머리에는 농암종택도 보인다. 농암종택은 퇴계와도 교류했던 농암(聾巖) 이현보 선생이 살았던 고택으로, 퇴계가 걸었던 녀던길을 이용하면 강변을 따라 한 시간여 만에 닿을 수 있지만, 현재는 녀던길 내에 사유지가 겹친 관계로 그리 할 수 없단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참을 쳐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이제 발길을 돌려 퇴계가 태어나고 자란 노송정(老松亭)종택과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농암종택을 둘러볼 참이다. 먼저 노송정종택에 들르기 위해 도산면 온혜리로 방향을 잡았다. 노송정종택은 대문채, 노송정, 본채, 사랑채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집으로서, 노송정종택의 본채 가운데 돌출된 방에서 퇴계가 태어났다고 해서 퇴계태실로도 불린다. 퇴계의 어린 시절을 그려보며 노송정종택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인 농암종택으로 차를 몰아간다. 

안동에 한 집 걸러 한 집이 고택이고 종택이라지만, 농암종택은 참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해 분위기가 남다르다. 깎아지른 듯 위맹한 건지산 절벽을 등지고, 고요한 낙동강을 앞 삼은 데다, 멀리로는 청량산까지 보이니 이 얼마나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단 말인가. 별당인 긍구당(肯構堂) 툇마루에 앉아 낙동강을 바라보니 무릉도원이 멀지않다. 잠이 솔솔 온다. 달콤한 잠에 취하려는 순간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좁은 바위 틈을 타고 내리는 관창폭포.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35번 국도여행의 진수, 청량로
농암종택에서 나와 35번 국도로 올라서니 어느새 길 이름은 퇴계로에서 청량로로 바뀌어 있다. 봉화 땅에 들어선 것이다. 청량로에서는 차량을 천천히 몰 수 밖에 없다. 도로 왼편으로는 만리산, 오른편으로는 낙동강, 좀 더 멀리는 청량산. 세 거인이 완벽하게 합일돼 만드는 절경이 운전자의 시선을 계속 빼앗기 때문이다. 마치 네가 얼마나 날 안 보고 버티나 보자는 식으로 쉴 새 없이 자연의 풍광이 운전자의 넋을 빼간다. 이 길에서는 차창을 모두 내리고 달려야 제 맛이다. 대자연을 휘감은 바람이 운전자와 완벽하게 합일되기 때문이다. 

자연과 동화된 기분으로 10여분쯤 달렸을까, 청량산이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시사철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열두 봉우리가 퇴계를 보듬어주던 산. 퇴계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바로 그 산이다. 청량산은 산세가 용맹하지는 않지만, 넉넉하고 풍성한 암봉(岩峰)에 기암괴석이 골짜기를 가득 채워 영남의 소금강으로 불린다. 청량산을 직접 오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다음 목적지는 관창폭포,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이 봉화의 숨겨진 보물이라고 추천한 곳이다. 폭포로 걸어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곱새길’이란 표지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산허리를 통과하는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이곳 주민들이 걸어 다녔던 옛길인데, 허리가 구부러질 정도로 가파른 산길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그런데 정작 폭포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따라 데크길 끝까지 가 봐도 폭포가 보이질 않는다. 잠시 당황해하다 물소리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 옆으로 돌아가 보니, 좁디좁은 바위틈을 타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날 맞이한다. 숨겨진 보물이라더니, 진짜 숨어있다. 웅장하거나 수려한 맛은 덜하지만, 이끼가 가득한 계곡과 하나 되어 내리는 폭포의 모습이 어울려 한참을 들여다본다.

관창폭포를 나와 봉화군 명호면소재지까지 길을 재촉한다. 국도를 좌우로 둘러싼 산하에 붉고 노란 기운이 제법 눈에 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뒤로 멀어지는 청량산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려는 찰라, 내 오른편으로 낙동강을 끼고 우뚝 솟은 기암절벽이 솟아올라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에서 내려 강변을 내려다본다. 낙동강 천삼백 리 길에서 여기는 겨우 삼백 리 남짓한 곳, 낙동강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듯, 지켜보는 여행자를 뒤로하며 흘러내려간다.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를 드니 강변에서 루어 낚시를 즐기던 강태공 둘이 카메라를 발견하곤 손을 흔든다.

낙동강은 명호면소재지에서 반 바퀴 크게 돌아 황우산 저편으로 사라진다. 여기서부터는 강변길이 아니라 산길을 올라야 한다. 울창한 숲을 따라 급경사와 고갯길이 이어지며 삼동재(464m) 정상으로 향한다. 범바위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이제는 좌로, 우로 급격하게 굽은 내리막 도로가 펼쳐진다. 구불구불 아래로, 아래로 한참을 내려간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사미정(四未亭)과 사미정계곡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명 재상 체재공이 썼다고 전해지는 사미정 현판. 2014년 10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사미정은 조선 영조 때 문신인 조덕린 선생이 말년에 풍광 좋은 곳에서 수양하고자 운곡천 옆 작은 언덕 위에 지은 정자이다. 현판인 ‘사미정(四未亭)’과 내현판의 ‘마암(磨巖)’이라는 글자는 당대의 이름난 재상 채제공이 썼다고 전해진다. 사미정 마루에 앉아 앞쪽 계곡을 바라보니, 이런 곳에서 글을 읽으면 절로 학문도 늘고 수양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근심걱정 없이 살기에는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한참을 이런 저런 생각에 앉아 있다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사미정을 빠져나온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봉화군 소천면소재지로 향한다. 태백에서 흘러온 낙동강은 이곳에서 현동천을 가슴에 품고 비로소 강다운 모습으로 남해를 향해 흘러간다. 퇴계는 ‘유산(遊山)은 독서와 같다’고 했다. 산에 가는 것 자체가 마음 수행이며, 자연을 벗하는 것이 곧 지식을 쌓는 한 방편이란 뜻이다. 이 가을, 하늘 높은 날에 퇴계 선생이 아끼고 사랑했던 35번 국도를 찬찬히 거닐며 퇴계와 교감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Tip. 안동지역에는 고택과 종택이 많아 35번 국도 주변에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위에서 소개한 노송정종택, 농암종택 외에도 도산서원 조금 못 미쳐 자리한 안동군자마을과 퇴계 음택 주변에 퇴계 손자가 살았던 동암종택, 이육사의 고향인 원촌마을의 목재고택(穆齋古宅) 등에서도 한옥스테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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