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서울] 600년 수도의 서울이지만, 아쉽게도 궁궐 등을 빼고는 100년 넘는 건축물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로 아흔 살이 된 서울교육박물관 건물이 더 소중한 이유다. 더구나 이곳은 우리나라 근대 중등교육의 발상지이기도 하니 그 의미가 각별하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벽돌 건물로 여전히 예쁘게 서 있는 서울교육박물관을 찾았다.
사실, 서울교육박물관보다는 정독도서관이 더 익숙한 이름이다. 오랜 세월 서울시 공공도서관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 정독도서관은 지금도 책을 찾아오는 이들로 붐빈다. 도서관 마당의 분수 옆 등나무 벤치에서 책 읽는 모습이 시원하다. 아는 사람은 아는 것처럼, 정독도서관은 건물 자체가 등록문화재다. 이곳은 강남으로 이전한 경기고등학교의 본관으로 1938년에 건축한 근대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독도서관 바로 옆에 역시 경기고등학교의 건물이었지만 본관보다 13년 더 일찍 지어진 건물이 있다. 붉은 벽돌의 서울교육박물관 건물이 그것이다.
정독박물관을 자주 찾았던 사람이라도 서울교육박물관을 알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이곳은 정독도서관의 명성(?)에 그동안 가려져왔으니까 말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보러 왔다가, 교육관련 박물관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곳을 둘러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독도서관에 가려진 근대문화유적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백 년 전 아이들을 담은 커다란 흑백 사진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그 옆에는 ‘정동 문방구’라는 빛 바랜 간판을 단 학교 앞 문방구가 보인다. 뽑기판에 ‘어름과자’통, 딱지와 솜사탕까지 있는 것이 영락없이 수십 년 전 엄마, 아빠가 다니던 ‘국민학교’ 앞 문방구의 모습 그대로다.
문방구 앞쪽으론 그 시절 운동회의 모습이 디오라마로 전시되어 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벌이던 각종 경기들, 이를테면 장애물 경기와 공굴리기, 오재미로 박을 터뜨리는 게임에 이르기까지. 운동장 한 켠에 처진 커다란 차양 아래에는 공책이며 연필 같은 상품이 한아름 쌓여 있고, 다른 한 켠 나무 아래에서는 김밥과 사이다로 점심 식사가 한창이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엔…
아담한 박물관은 왼쪽의 상설 전시장과 오른쪽의 기획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지금 전시 중인 기획 전시실의 테마는 ‘교복의 이력서’. 여기서는 삼국시대부터 최근까지 교복의 변천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960~70년대 교복이다. 교복뿐 아니라 그 시대의 교실과 교과서, 책가방과 도시락 등 추억의 물건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교실 뒤편에는 불조심과 반공 포스터가 붙어 있고, 교실 중앙 난로에는 양철 도시락들이 몸을 덥히고 있다. 교실 앞에는 태극기를 중심으로 교훈과 급훈이, 칠판을 가운데 두고 시간표와 우리나라 지도가 나란히 자리잡았다. 학생을 자녀로 둔 엄마, 아빠들 또한 이 시기에 학교를 다녔을 테니, 아이들과 함께 본다면 나눌 이야기도 많을 듯이다.
상설 전시장은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교육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의 학교였던 태학부터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 등 전통 시대 학교의 모습과 함께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 6.25전쟁 이후 오늘에 이르는 교육의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기획 전시실까지 꼼꼼히 둘러보아도 30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서울교육박물관 나들이의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