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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포구 미식] 묵호 담화(談話)와 일미(逸味)가 남긴 여운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미식 기행
[포구 미식] 묵호 담화(談話)와 일미(逸味)가 남긴 여운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미식 기행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4.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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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동해] 가을의 끝자락 11월 여행은 강원도 묵호가 좋겠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묵호항에서 어민의 생활상을 엿보고, 옛 어민의 희로애락이 스민 논골담길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 늦가을 여행에 식도락이 빠지면 밋밋하다. 묵호 명물 ‘냄비물회’로 미각에 즐거움도 선사하자.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목호의 옛이야기가 깃든 논골담길.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장화 없인 못 사는 논골담길 언덕배기

가파른 언덕을 품고 있는 ‘묵호등대 담화마을 논골담길’에 오른다. 논골담길은 과거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었던 묵호항 그리고 옛 어민의 생활상을 담은 그림이 그려진 골목길이다. 벽화마을이 아니라 담화마을인 이유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묵호 어르신들,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소통하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살았던 동네가 묵호예요. 오징어랑 명태를 많이 잡으니까 어민이 버는 돈도 많았죠. 동네 똥개도 만원짜리를 입에 물고 다닐 정도라는 소문까지 나니까 타지에서도 뱃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죠. 그렇게 잘 나가던 시절에는 논골담길 바닥이 물로 흥건해서 마를 날이 없었어요. 그래서 장화는 여기 사람들 필수품이었죠” 김승수 문화관광해설사는 묵호의 풍요로웠던 과거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활력이 넘치는 목호항의 아침.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과거 묵호 바다는 밤이면 어선들의 불빛이 6월의 꽃밭처럼 현란했고, 새벽의 묵호항은 만선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뱃일을 파한 어민은 고단한 몸을 뉘이고자 양철 지붕을 얹은 집들이 빼곡한 논골담길의 언덕을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아낙들은 오징어 배를 가르고 겨릅대를 끼워 덕장에 말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옛 묵호 사람들은 먹고 살기 급급한 삶 속에서도 자식들 뒷바라지를 위안 삼아 비린내가 진동하는 역경을 이겨내고자 부단히도 노력했을 게다.

옛 묵호 어민에게 장화 못지않은 필수품은 지게였다. 그들 진 지게에는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웠을지도 모를 생선과 생필품 따위가 가득했다. 묵호의 고단한 삶까지 지게에 지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간 어민의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을 땀방울도 논골담길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 데 기여하지 않았겠냐는 상념에 빠질 무렵, 담장 한 편을 차지한 ‘바람이 언덕을 향하는 이유는 숙명처럼 기다리는 언덕배기의 삶을 차마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란 글귀가 시신경을 자극하고 이내 감성을 흔들어 놓는다.

묵호등대 담화마을 논골담길은 총 4개의 길로 이뤄졌다. 논골1길은 묵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로 고무대야, 장화, 보따리 등 묵호의 옛 이야기를 담은 생활상을 담화로 표현했다. 논골2길은 떠난 사람들, 남은 사람들, 찾아 올 사람들 등 모든 사람들이 희망하는 메시지를 간직한 길이다. 황금기를 보냈던 묵호의 과거와 현재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녹여 넣은 논골 3길은 묵호의 옛 이야기와 추억이 깃든 골목이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논골담길의 야경은 황홀경 그 자체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깨어있는 묵호항과 묵호등대의 황홀경
묵호등대 담화마을 논골담길의 네 번째 길인 등대오름길은 지역민들이 참여한 담화가 있어 이색적이다. 묵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예술가들이 밑그림을 그렸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던 어르신들이 손수 채색한 담화가 주를 이룬다. 이 길을 따라 곧장 오르면 산중턱에 자리한 묵호등대에 닿는다. 1968년 제작된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묵호등대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동해와 묵호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대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나무데크는 가을 끝자락의 선선한 바다 바람을 느끼며 망망대해를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묵호등대 앞 카페 쪽으로 난 길을 내려가면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였던 출렁다리도 만난다.

출렁다리를 건넌 후 묵호등대를 벗어나 묵호항 어시장으로 한 템포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공복감이 밀려오기 시작한 탓도 있지만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의 구절이 뇌리를 파고든 까닭이기도 하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않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는 글귀가 바로 그것이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회를 뜨는 할머니의 손놀림은 묘기 수준이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심상대가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1960~1970년대 묵호 사람들의 드라마 같은 질펀한 삶이었지만 기자는 엉뚱하게도 ‘독한 술’에 초점을 맞췄고, 이내 ‘독한 술의 안주는 회가 제격’이라는 합리화로 묵호항 어시장에 섰다. 이곳은 횟감을 구입하는 곳과 회를 써는 곳이 분리돼 있다. 회 써는 곳에서는 ‘오징어 마리당 얼마’라는 식으로 요금표를 달아 놓았다. 요금표에 쓰인 삯도 저렴한데 그보다 더 싸게 회를 손질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회 써는 할머니에게 횟감을 맡기자 눈으로 겨우 좇아갈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손놀림을 선보인다. 연신 ‘우와’란 탄성을 내뱉는다. 감탄사를 너무 남발했던 탓일까. 회를 썰던 할머니가 행색을 살피더니 “뭐 할라고 먼 데까지 와서 고생이야.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쉬지”라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어느 곳을 돌아다녔느냐고 묻고는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해가 지면 묵호등대에 가보라고 일러준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만선을 기대하며 출항을 준비중인 어선.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숙소에 들어가 알싸한 초고추장에 찍은 회 한 점 입에 넣고 소주 한 잔 들이켜며 여독을 풀 참이었지만 회 써는 할머니의 말에 마음이 동한다. 숙소에 마련된 냉장고에 회를 밀어 넣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를 기다렸다가 묵호등대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머지않아 몇 초간의 시간차를 두고 변하는 등대 기둥의 찬란한 빛깔과 고깃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자 꼭대기에서 쏘아대는 곧고 밝은 빛줄기를 마주한다. 예상치 못한 황홀경에 빠져 넋 놓고 바라보기를 한참. 냉장고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회와 소주는 뒷전이 돼버렸다.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출연한 곽영근 씨가 내놓은 냄비물회. 2014년 11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냄비물회가 입맛 당기는 오부자횟집
명성이 자자한 음식점을 찾았다가 “속았다”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실망을 금치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던 터라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간 오부자횟집. 우려와 달리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물회 음식점을 찾았다는 기쁨에 사로잡힌 곳이다. 몇 해 전 ‘진검으로 오징어 가늘게 썰기’로 생활의 달인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곽영근 씨와 아내 김혜정 씨가 운영하는 오부자횟집의 냄비물회는 ‘별미’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특별한 맛이 숨어있다.

호텔 주방에서 내공을 쌓다가 횟집을 운영하기 시작한 곽 씨가 냄비물회로 유명인이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시행착오 끝에 만든 육수와 싱싱한 횟감을 냄비에 담아 지인들에게 대접하면서부터다. 예상치 못했던 칭찬 일색에 정식메뉴로 이름을 올렸고, 그렇게 손님상에 오르기 시작한 냄비물회는 입소문을 탔다. 그렇게 전국에서 몰려든 손님들 덕분에 7년 전부터는 아예 냄비물회만 전문으로 취급하게 됐다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변에서는 분점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성화지만 “아직 최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상황에서 분점을 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곽 씨가 매번 거절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성공의 밑거름은 밑반찬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를 직접 맛보고 최상품만 고집하는 곽 씨의 꼼꼼함과 충북 옥천에 사는 김 씨의 어머니께서 공수해 보내는 깨소금, 참기름, 고춧가루 등 정성이 가득 담긴 재료 덕분이다. 게다가 지척에 묵호를 두고 있으니 횟감의 싱싱함까지 시시콜콜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 그날그날 가장 신선한 활어를 손질해 내놓기 때문에 횟감은 날마다 바뀌기 일쑤지만 보통 오징어와 광어를 기본으로 냄비물회가 완성된다.

물회의 맛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육수. 안주인 김혜정 씨는 “육수 만드는 방법은 여느 음식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비법이라면 혹시 있을지 모를 생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육수에 더덕즙을 갈아 넣는답니다”라고 귀띔한다. 오부자횟집이 냄비물회 맛집으로 소문난 까닭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법이 녹아든 육수에 회와 채소를 골고루 섞어 먹으니 향긋한 바다내음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마냥 달고 시기만 했던 여느 음식점의 육수와 달리 새콤달콤 상쾌한 뒷맛이 젓가락을 든 손을 분주하게 만든다. 소면과 밥을 말아 먹으니 “정날 잘 먹었다”란 기분 좋은 포만감에 사로잡힌다. 택배도 가능하다니 설렘 가득했던 묵호에서의 일정이 생각날 때마다 시켜먹어야겠다.

INFO. 오부자횟집
가격
냄비물회, 회덮밥, 문어회덮밥 1만2000원. 전복과 해삼이 들어간 스폐셜 냄비물회 2만원.
주소 강원도 동해시 일출로 151 삼양비취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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