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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오름 사이 숲길을 걷는 특별한 산책 노꼬메오름&궷물오름 숲길 트레킹 
오름 사이 숲길을 걷는 특별한 산책 노꼬메오름&궷물오름 숲길 트레킹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11.11 0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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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과 숲] 노꼬메오름&궷물오름
노꼬메오름에서 내려다 본 숲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노꼬메오름에서 내려다 본 숲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애월읍 산간에는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궷물오름 세 개의 오름이 사이좋은 형제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름들 사이에는 자박자박 걷기 좋은 숲길이 이어져 있다. 오름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노꼬메오름과 족은(작은)노꼬메오름은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서도 화산 지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오름으로 꼽힌다. 노꼬메는 녹고뫼로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두 개 오름은 형태나 경관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멀리서 보면 하나의 오름처럼 보이기도 해 형제 오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꼬메오름은 높이가 234m에 달할 만큼 높아 오르기가 꽤 힘든 편이며, 족은노꼬메오름도 이름과 달리 만만치 않은 몸집을 갖고 있다. 이들과 비교하면 궷물오름은 아주 작은 꼬마처럼 느껴진다. 

궷물오름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시야가 탁 트인 구간이 나타난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궷물오름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시야가 탁 트인 구간이 나타난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세 개 오름을 잇는 숲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세 개 오름을 잇는 숲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오래된 나무마다 두텁게 이끼가 끼고 덩굴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오래된 나무마다 두텁게 이끼가 끼고 덩굴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분화구에서 물이 솟아난다는 궷물오름
궷물오름은 평화로와 연결된 산록서로 변에 인접해 있다. 궷물오름 뒤쪽으로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이 나란히 자리하며 각자 늠름한 산체를 뽐낸다. 숲길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궷물오름부터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궷물오름은 높이가 57m 정도인 비교적 낮은 오름에 속한다. 그에 비해 표고가 597m에 달해 정상에 오르면 서부 지역 해안까지 넓게 펼쳐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궷물이란 이름은 분화구 안에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샘물을 궷물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주변에 장전리 마을 목장이 있어 오래전부터 이곳에 소와 말을 방목해 왔는데 옛적에는 매년 음력 7월 보름마다 오름 정상에서 백중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궷물오름과 이어진 숲길을 걷다 보면 옛 목축문화의 흔적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궷물오름 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된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족은노꼬메오름과 궷물오름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먼저 궷물오름을 탐방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갈림길을 벗어나면 포장도로 대신 야자 매트가 깔린 오솔길이 이어진다. 비교적 푹신한 느낌이라 걷는 것이 힘들지 않다. 경사가 완만한 궷물오름은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제주의 목축문화를 엿보는 테우리막사(우막집).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의 목축문화를 엿보는 테우리막사(우막집).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의 목축문화를 엿보는 테우리 
여전히 초록빛이 흐르는 울창한 숲길은 콧노래를 절로 흥얼거리게 한다. 멀리서 새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고 소나무와 키 작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풍경이 아름답다. 숲길에 푹 빠져 걷는 동안 궷물오름 입구에 닿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테우리 막사가 나타난다.

테우리는 제주도의 목축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제주어로 테우리는 소와 말을 들판이나 오름에 풀어 놓고 키우는 사람을 일컫는데 육지의 목동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테우리들은 마소를 돌보는 일 외에 농사일도 거들어야 했는데 주로 거름을 뿌린 밭에 소나 말을 몰고 가며 땅이 잘 다져지도록 했다고 한다. 테우리는 마소를 잘 부리고 아우를 뿐 아니라 밧줄을 걸어 묶거나 잡아들이는 등 여러 가지 기량을 갖춰야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테우리들이 방목에 나서면 몇 날 며칠을 밖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야외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이런 곳을 우막집이라 불렀다. 둥그렇게 담을 쌓은 후 나뭇가지를 이용해 지붕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억새나 띠풀을 덮어 비바람을 막았다. 궷물오름에서 만난 우막집은 실제 이용했던  곳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전시용처럼 보인다. 그래도 제주도 전통 생활 풍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니 한번 둘러보며 쉬어가 보자.

한라산 지대에 쌓은 상잣성.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한라산 지대에 쌓은 상잣성.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무서운 독을 품은 천남성.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무서운 독을 품은 천남성.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사계절 푸른 기운이 흐른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사계절 푸른 기운이 흐른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작고 귀여운 정상 표석 
테우리 막사를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며 파노라마와 같은 장관이 펼쳐진다. 앞쪽에는 애월 앞바다와 렛츠런 파크가 내려다보이고 뒤로 돌아서면 노꼬메와 작은노꼬메 오름이 나란히 서 있다. 길 옆으로 살랑대는 바람을 따라 마른 억새가 풀썩이며 춤을 춘다. 덩달아 어깨가 들썩여진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아 궷물오름 정상 표석이 눈에 띈다. 여느 오름들과 달리 표석이 너무 작아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오름이 작아서 표석도 작은 걸까. 궷물오름 정상은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딱히 이렇다 할 풍경이 없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표석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후 다시 길을 나선다. 

궷물오름을 내려오는 길에 살짝 샛길로 빠지면 한때 SNS에 하루에 멀다 하고 사진들이 올라왔던 너른 들판이 보인다. 피크닉 차림으로 화보 같은 사진을 찍던 곳인데 사실 이곳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목장이다. 지금은 출입 금지 푯말이 붙어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상잣질(길)이 나타난다.

고사리밭에서 궷물오름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삼나무 숲길이 이어져 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고사리밭에서 궷물오름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삼나무 숲길이 이어져 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재미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숲 터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재미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숲 터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는 숲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는 숲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상잣성이 이어진 숲길 
세 개 오름을 잇는 상잣질(길)은 한라산 지대에 남아 있는 상잣성을 따라가는 길이다. 잣성은 조선시대에 말을 키우던 중산간 목초지에 목장 경계용으로 쌓았던 돌담으로 테우리와 더불어 제주의 목축문화를 대표하는 요소이다. 해발고도에 따라 150~250m 일대는 하잣성, 350~400m 지대는 중잣성, 450~600m 지역은 상잣성이라 불렀다. 

상잣질은 숲길을 따라 얼기설기 쌓인 돌담들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오래된 돌담은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고, 복원 사업을 통해 새로 쌓아 올린 돌담들은 윤기가 흐른다. 돌담뿐 아니라 아름드리 고목에도 이끼가 두텁게 자라고 있다. 살짝 손가락을 대었더니 도톰한 카펫 같은 촉감이다. 

옛 흔적을 되짚어가며 걷는 길은 숲의 정취가 가득하다. 바닥에 꽃잎처럼 흩어져 있는 낙엽들이 운치를 더한다. 수풀 사이로 붉은 열매들이 한가득 붙어 있는 천남성이 눈에 띄었다. 새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보이지만 실은 무서운 독을 품은 식물이다. 옛적 중죄인들에게 내리던 사약을 천남성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곳곳에서 보이는 산수국 군락은 내년 여름을 기대하게 한다. 철이 지나 종이꽃처럼 말라버린 엷은 꽃잎들이 다시 신비한 보랏빛으로 피어나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는 동안 족은노꼬메오름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사리밭을 지나 다시 처음으로
통나무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족은노꼬메오름 둘레를 돌아 출발점이었던 궷물오름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동선이다. 오솔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어진 길을 걷는 기분이 색다르다. 한낮의 햇살을 받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코스의 절반에 해당하는 고사리밭까지 쉬지 않고 바짝 걸었다. 경작지도 아닌 곳을 왜 고사리 밭이라 불렀을까. 누군가 정성껏 키운 밭처럼 봄철에 야생 고사리들이 많이 자라기 때문인 것 같다.  

이곳부터는 다시 울창한 숲길이다. 허리 높이까지 자란 조릿대가 푸른 물결을 이루고, 곧게 뻗은 삼나무들이 근사한 풍경을 펼쳐낸다. 숲길 중간에는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름 정상은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출발할 때 걸었던 오솔길이 앞쪽에 나타났다. 깊은 산속을 헤매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떠날 때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머리도 한층 더 맑아졌다. 3시간에 걸친 숲길 트레킹에서 받은 고마운 선물이다. 

노꼬메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노꼬메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노꼬메오름 
주소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산 138

궷물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궷물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INFO 궷물오름 
주소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36-2

TIP 오름 사이에 자리한 제주경찰특공대
궷물오름 주차장 뒤편에는 제주지방경찰청 소속인 제주경찰특공대 건물이 자리해 있다. 흰색의 아담한 건물 외관에 ‘SWAT’이라고 쓴 글씨가 뚜렷하게 보인다. 때때로 특공대에서 사격 훈련을 진행하는데 주변에 총소리가 크게 울리기 때문에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깜짝 놀랄 수 있다. 경찰견 훈련 시기에는 개들이 컹컹대는 소리에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물론 특공대 훈련들은 모두 오름 탐방과는 무관하게 안전한 범위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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