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시장 탐방] ‘세월이 흐른다고 그 정이 변할까’ 남원 5일장
[전통시장 탐방] ‘세월이 흐른다고 그 정이 변할까’ 남원 5일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2.11.16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열렸다는 남원의 춘향골공설시장.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남원] ‘호남의 남원이라 하는 고을은 옛날 대방국이었다. 동으로 지리산, 서로 적성강, 남적강성하고 북통운암 허니 곳곳이 금수강산이요, 번화 승지로구나’ 판소리 ‘춘향가’ 첫 대목은 남원이 화려하고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이라며 시작된다.

그 남원 한 복판에는 춘향과 이도령이 살던, 조선시대 때부터 열렸다는 시장이 있다. 이름도 ‘춘향골공설시장’이다. 시장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사연과 정으로 가득하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시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 끈끈한 정이 어디 가겠는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광한루 가까이 큰 밤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밤나무들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장이 서기 시작한 것이 춘향골공설시장의 시초라고 한다. 그렇게 생겨난 시장이 오랜 세월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남원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인 데다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와 더불어 평야도 발달해 물산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남원부각만큼이나 구운김도 잘 팔린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다른 시장에선 보기 힘든 밤채.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남원 할매들 다 나오셨네!
춘향골공설시장 간판이 내걸린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상설점포와 노점이 어우러진 5일장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장날은 매 4일과 9일인데 상설시장도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라 장날이면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남원이 옛날에 비해 인구가 많이 줄긴 했지만 일대에선 유일한 시(市) 단위 지방으로 여전히 맏형 같은 느낌이 있어서 명불허전 소리가 나올 만하다.

특이하게 상설 점포를 양옆으로 두고 시장 안길 바닥에 구획선이 그려져 있는데 노점 좌판은 이 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그 좌판의 주인들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일렬로 길게 늘어진 좌판 행렬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남원 할매들이 모두 나온 것처럼 보인다. 다른 시장에선 볼 수 없는, 남원 할매들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상품도 보이는데 바로 채로 썬 밤이었다. 깐 밤을 정성껏 채로 썰어 놓으니 이를 처음 본 사람은 도무지 정체가 뭔지 알 재간이 없다. 이렇게 밤을 채 썰어놓으면 다양하게 요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지리산 자락이라 여러가지 약초와 건나물도 많이 나온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보기 힘든 토종감이 나왔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남원하면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목기를 들 수 있지만 번성했던 도시답게 그 밖에도 입소문 난 명물들이 많다. 남원 부각이 그중 하나다. 김 양식을 하는 바닷가 마을도 아닌 남원에서 김부각이 특산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예로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풍부한 산물이 있었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풍류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각은 다양한 농수산물로 만들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김부각의 인기가 높아 오늘날 집중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어물전 골목으로 들어서면 김부각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요즘은 김부각 뿐 아니라 조미 구운 김의 수요도 많아서 즉석에서 김을 구워 함께 판매하고 있는 추세다. 시장 골목을 돌다 보니 ‘남성식도’라는 간판이 보인다. ‘식도(食刀)’는 식칼을 말한다. 남원이 식도도 유명하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한 칸짜리 작은 가게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한때 남원 식도 명인으로 명성을 날렸던 곽용섭(81) 씨다. 그는 이름난 외국산 칼만 쓰던 유명 셰프들도 앞다퉈 찾았던 그런 칼을 만들었다. 옛 명성에 비해 지금의 가게는 초라한 모습으로 남았다. 세월 탓일 수도 있고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의 발달로 손으로 두드려서 만드는 수제 칼이 설 자리가 줄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칼 만드는 대신 칼이나 가위를 갈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남원특산품 남원식도.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옛 명성이 남아있는 남성식도 간판.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곽 씨로부터 남원식도에 얽힌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전해 듣는다. 남원 식도가 유명해진 건 일제강점기부터다. 오늘날로 치면 전국기능경진대회 격인 조선부업품공진회가 열렸는데 그 대회에서 남원사람 한영진 씨가 금상을 탄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 밑에서 기술을 배운 곽 씨는 일찍부터 독립을 하여 1970년대 최고 호황기를 누렸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칼을 만들지 않는다. 가끔 찾아오는 이들에게 칼이나 가위를 갈아주고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만든 칼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정도다. 곽 씨는 손을 놨지만 여전히 몇몇 장인들에 의해 남원식도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최신 기계에서 좋은 칼을 찍어내는 세상이라고 해도 우직하게 정성껏 망치로 두들겨 만든 칼이 최고 명품으로 대접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외 유명 셰프들도 앞다퉈 남원식도를 찾는 날이 오지 않을까? 너무 동화같은 생각일까?

“뻥이요.” 광경.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공설튀밥집.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뻥이요!” 시장구경에서 빠지면 섭섭하지

장터에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 튀밥이다. 군것질거리가 귀했던 옛날에는 형편에 맞게 쌀이나 보리쌀, 강냉이 등을 고온고압으로 튀겨내서 간식으로 먹곤 하였다. 그래서 튀밥장수 앞은 애나 어른이나 항상 사람이 몰렸다. ‘뻥이요!’ 하고 터지던 그 굉음도 장터를 상징하는 소리가 되었다. 요즘은 쌀튀밥 보다는 각종 곡물을 볶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건강을 생각하여 차로 마시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리, 둥굴레, 콩 같은 것들을 주로 볶고 겨울이 되어야 쌀 튀밥을 많이 하죠.”
뻥튀기 기계 넉 대가 연신 돌아가고 있는 골목 모퉁이의 공설튀밥집. 서양열(69), 배석순(65)부부가 함께 꾸려가는 사업장이다. 시장에서는 50년된 튀밥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부가 인수하여 운영하기 시작한 건 20년 전부터다. 그래도 강산이 두 번 바뀌었을 세월이다.

쌀만 튀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곡식을 볶기도 하는 튀밥집.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장터의 다양한 군것질거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이게 3~4년은 해야 노하우가 생겨요. 재료에 따라, 같은 재료도 철에 따라 수분 함량이 다르고 자연 건조인지 건조기 건조인지에 따라 또 볶는 시간이 달라져요.”
4곳이나 되는 시장 튀밥집들 중에서도 가장 손님이 많은 건 이런 노하우 때문일까. 그러나 이 부부의 본업은 농사라 다른 튀밥집과 달리 평소엔 문을 닫고 장날만 나오고 있다. 부부가 함께 호흡을 맞춰가면서 찰떡같이 일을 하지만 온종일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가끔은 사인이 안 맞아 투덜거리는 일도 생긴다. 그래도 워낙 오래 산 시간이 아니던가.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어 서로 믿고 의지하는 든든한 동반자다.

“남편이 젊었을 때에는 이십여 가지 직업이 있었어요. 참 열심히 살았죠. 지금도 남편이 없으면 혼자서 못해요. 스텐 철망에 곡물이 들어가면 40kg 가까이 무게가 나가기도 하는데 여자들은 들지도 못하죠.” 부부의 작업과정을 지켜보니 이 집 튀밥과 볶은 곡물이 맛있을 수밖 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래도록 쌓아온 부부의 정이 함께 튀겨지고 볶아지고 있었다. 부부의 삶과 춘향골공설시장의 모습이 서로 닮았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도 시장은 그 자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안에 정이 있으니까.

공설새식당은 백반도 맛있지만 물국수가 별미.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쪽지] 시장 맛집
공설새식당은 백반과 국수가 대표 메뉴이다. 특히 진하게 고아낸 멸치육수로 맛을 낸 물국수는 별미다. 시장 음식답게 양도 푸짐한데다가 가격까지 착하다. 남원 막걸리를 곁들여야만 할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국밥집으로는 송동식당이 많이 알려졌다. 춘향골공설시장이라고도 하고 남원공설시장이라고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