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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눈꽃 산행] 겨울에 피는 지리산의 꽃, 남원 바래봉
[눈꽃 산행] 겨울에 피는 지리산의 꽃, 남원 바래봉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3.01.15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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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겨울왕국'을 연상케하는 환상적인 설경이 펼쳐지는 바래봉.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원] 남쪽은 지난해보다 한 달이나 늦게 첫눈이 내렸다. 처음엔 좀 야박하다 싶더니 보상이라도 하듯 도심 한가운데 소복소복 쏟아진 눈. 해발 1,000m고지의 높은 산중은 오죽할까. 도로에서도, 산길에서도 사람들은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지금이야말로 발끝에 힘을 주고 설경 속으로 들어설 때이다.

지리산(1,915m)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어서 산행 경험이 없다면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찻길이 뚫린 노고단(1,507m)마저 겨울엔 차량 통행이 어려워 화엄사부터 14km을 오르내려야 한다. 하여 지리산의 겨울을 꼭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바래봉(1,165m)만큼 좋은 곳도 없다. 초등학생도 오를 수 있는 임도인데다 겨울왕국 급의 설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바래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서북능선.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마른 가지에 새로 핀 겨울꽃.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바래봉, 봄에는 철쭉 겨울엔 눈꽃

둥그런 모양의 이 봉우리는 스님의 공양 그릇인 바리때를 엎은 것과 닮아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국립공원, 그것도 해발 1,000m가 넘는 정상부까지 임도가 뚫렸단 게 의아한데 1970년대만 해도 이 일대에 국립종축원이 있었고, 호주에서 지원받은 2,000여 마리의 양들이 방목됐었다고 한다.

바래봉이 철쭉으로 유명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당시 양떼 이동에 방해가 된 나무는 철쭉을 빼곤 모두 뽑아서, 혹은 양들이 독성 강한 철쭉만 먹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고향을 떠나 타국의 먼 산으로 옮겨온 양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진 잘 모르겠다. 양이 떠난 자리는 여전히 지리산이고, 봄이면 붉게 겨울엔 하얗게 변한단 사실만 변함없을 뿐.

팔랑치 갈림길 이후론 멋진 전나무숲이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등산객들은 서로 찍고 찍히기를 반복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든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지리산 서북릉 끝자락이 바래봉이라 능선과 연결된 길이라면 어디서든 산행이 가능한데, 겨울엔 지리산허브밸리가 있는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에서 출발해 용산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가 제일 짧고 안전하다. 마실 물, 간식, (설령 배낭에서 꺼낼 일이 없더라도) 아이젠, 스패츠, 장갑과 모자 등등 보온 장비도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일기예보를 보고 눈 온 다음 날 가는 게 좋다. 며칠씩 눈이 안 오면 바래봉조차도 종종 앙상하게 말라붙곤 한다.

 

산 정상부까지 너른 임도

꽃철엔 대형버스로 꽉 찬 주차장이 겨울엔 안쓰러울 만큼 휑하다. 설경이 예쁜 건 사실이지만 따뜻한 이불 속을 나서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콧속이 쩍쩍 달라붙는 추운 날조차도 30분쯤 걸으면 온몸에 열이 돋는다. 누군가의 책 제목 <모험은 문밖에 있다>처럼 문을 나서지 않으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너무도 많다.

초행이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눈꽃 산행은 눈 온 다음 날 가는 게 좋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주차장을 나와 올라서면 사찰 운지사가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운지사 뒤쪽 산길로도 갈 수 있는데 현재는 샛길로 묶여 공식 탐방은 금지됐다. 그다음 갈림길은 바래봉둘레길(화신마을)로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초행이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저 높은 곳을 향해 오르기만 하면 된다.

눈은 등산로와 나무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햇살이 드는 곳엔 빛이 반사돼 금세 광대가 붉게 달아오른다. 양들은 그 짧은 다리로 어떻게 이 길을 올랐을까. 아무리 길이 넓어도 해발 1,165m까지 닿아야 하므로 다리도 아프고 숨도 차다. 열 걸음 걷다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쉰다.

바래봉4’ 쉼터에 앉아 배낭을 내린다. 걸어온 길이 3.2km이고 가야 할 길은 1.6km이다. 단팥빵 하나와 보온병에 담아온 생강차를 꺼내 허기진 배를 채운다. 25km의 주능선 종주를 하루에 끝내는 사람도 있지만 산행은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해선 안 된다.

겨울왕국 급의 설경을 선보인 지리산 바래봉.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온통 두툼한 솜옷으로 갈아 입은 나무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하늘은 파란데 어디선가 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등산로 좌우의 나무가 빗줄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뿌리와 뿌리 사이로 계곡 물소리도 들린다. 눈이 녹고 있었다. 높아진 해는 얼굴만 익힌 게 아니다.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낀 것까진 좋은데,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눈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녹지 마, 제발. 녹지 마!” 배낭을 추슬러 자리를 턴다.

막판 오르막을 올라서면 왼쪽으로 작은 간이건물이 보인다. 이 초소 앞에 팔랑치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틀면 노고단까지 가닿는 20km의 서북릉이고, 노고단에서 동쪽 끝 천왕봉까지가 위에 언급한 지리산 주능선이다. 바래봉은 직진, 지루했던 임도가 끝나고 새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하산길에 탈 썰매를 메고 오는 등산객도 더러 있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하트 모양 너머로 보이는 파란 겨울 하늘.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온통 하얀색, 바래봉은 지금이 절정

바래봉의 진면목은 지금부터다. 평평한 오솔길 좌우로 빼곡한 전나무 숲이 펼쳐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록이었을 나무는 온통 두툼한 솜옷으로 갈아입은 채 먼 길 달려온 등산객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폭신하고 곧은길 위에서 사람들은 서로 찍고 찍히기를 반복한다.

와와, 이 길에서 감탄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높은 나뭇가지 하나를 잡았다 놓으면 무거운 눈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재미난 놀이 앞에선 추운 줄도 모르고, 아픈 다리도 멀쩡하다. 이 풍경 하나면 그곳이 집이든 숙소든 차 안이든 아침 일찍 문을 나선 일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꽃도 예쁘고 단풍도 예쁘지만 겨울 눈 꽃만큼 경이롭진 않다.

샘터를 지나면 세상은 또 달라진다. 전나무 숲은 일순간 사라지고 둥근 산 하나가 바람 속에 홀로 서 있다. 휘잉휘잉, 몸이 휘청일 만큼 강한 바람이 텅 빈 봉우리를 할퀴고 지난다. 모자를 썼는데도 재킷에 달린 모자를 다시 한번 눌러쓴다. 바람은 소리와 추위로 양쪽 귀를 괴롭혔다. 그러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잠잠해지기도 한다.

스틱, 장갑, 모자 등 겨울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챙겨야 한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정상까진 꾸준한 오르막이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바래봉에 서면 멀리 무등산부터 가깝게는 지리산 주능선이 잘 보인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산은 바다처럼 변덕이 심하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어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땀을 제때 관리하지 못하면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다. 아무리 두꺼운 패딩을 입었다 해도 속옷이 젖으면 소용이 없다. 속건성 소재의 등산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상까진 꾸준한 계단이다.

꽃을 보낸 철쭉나무엔 하얀 눈덩이가 열매처럼 맺혔다. 바람은 파도처럼 불었고 키 작은 나무는 산호처럼 흔들렸다. 돌아서면 왼쪽의 천왕봉부터 오른쪽 끝 노고단이 한품에 안긴다. 멀리 광주 화순의 무등산도 보인다. 거대한 능선은 벽처럼 앞을 막고 있었다. 굽이굽이 휘어진 길은 건강한 근육처럼 꿈틀거렸다.

설령 꽃이 없고 눈이 없더라도 바래봉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장엄하다. 동그란 정상석을 어루만지고 왔던 길 그대로 내려선다. 마치 시간을 되감는 영화처럼 조금 전에 보았던 풍경들이 하나둘 등 뒤로 사라진다. 지금은 겨울의 절정, 만개한 눈꽃이 찬숨을 내뿜는 계절이다.

해발 1,165m 바래봉 정상석.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INFO 바래봉

최단 코스는 남원시 운봉읍 지리산허브밸리주차장에서 출발해 그 자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이다. 왕복 9.6km로 휴식 포함 5시간이면 충분하다. 주차장에서 4.2km는 꾸준한 오르막이지만 너른 임도여서 길을 잃거나 위험하진 않다. 이후 전나무 숲을 지나 바래봉 정상에 닿는다. 아이젠과 따뜻한 물 등 겨울 산행에 필요한 물품을 반드시 챙긴다.

주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265-4(주차장)

 

주변 가볼만한 맛집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추어탕이 먹음직스럽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새집추어탕

연중무휴인데다 브레이크타임도 없어 언제든지 식사가 가능하다. 추어탕 12,000, 추어숙회 중() 4만 원 등이다. 추어탕은 남원의 대표 음식으로 새집 외에도 현식당, 부산집, 정옥추어탕, 할매추어탕 등이 있다.

주소 전북 남원시 천거길 9

문의 063-625-2443

시그너처 메뉴인 서리태라떼.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미안커피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안에 있다. 미술관 무료 관람 후 들르기 좋은 카페다. 226일까지 <김병종 40, 붓은 잠들지 않는다 바보예수, 상선약수, 어락”> 특별전이 열린다. 미안커피의 대표 메뉴인 서리태라떼 6,300, 아메리카노 4,900. 매주 월요일엔 문을 열지 않는다.

주소 전북 남원시 함파우길 65-14

문의 0507-1334-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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