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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안누리길 여행]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이국적인 바닷길, 제주 서귀포시 환해장성로
[해안누리길 여행]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이국적인 바닷길, 제주 서귀포시 환해장성로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3.01.2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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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치기해변에서 본 성산일출봉의 모습. 사진/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제주>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해안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 이름 하여 ‘환해장성’이다. 현재 제주에는 14곳의 환해장성이 남아있는데, 해안누리길 코스인 환해장성로는 온평리 환해장성을 지나는 길이다. 시작부터 바닷길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걷는 길로, 옥빛 바다가 수놓은 이국적 풍경과 함께 해돋이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환해장성로를 걷기에 앞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코스에는 벗어나 있지만 인근 성산일출봉을 둘러볼 것인가이다. 또는 성산일출봉과 함께 일출 장면을 담기 좋은 광치기해변에서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빛이 흠뻑 비친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광치기해변에서 성산일출봉과 바다의 조화로움을 즐기고 30분 정도를 걸으면 환해장성로의 출발점에 도착할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길을 걷기 앞서 섭지코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사진/ Ⓒ제주관광공사

섭지코지부터 즐기는 빼어난 제주 동쪽의 바다
환해장성로의 출발점인 신양섭지코지해변. 해변 자체도 고운 모래와 푸른 바다가 어울려 보기에 좋고, 둥근 반원형의 해변이 바다 쪽으로 톡 튀어나온 섭지코지까지 연결돼 있어 제주의 대표 여행지이자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섭지코지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하얀 등대와 짙푸른 바다가 이국적인 정취를 연출하는 섭지코지의 명물은 ‘선돌바위’다. 이 바위에 담긴 전설이 사뭇 애처롭다.

옛날 옛적에 용왕의 막내아들이 목욕을 하러 땅으로 내려온 선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를 딱하게 여긴 점쟁이가 “선녀를 만난 섭지코지에서 백일기도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일러줬다. 용왕의 아들은 그 말을 믿고 99일째까지 성심성의껏 기도를 올렸지만, 대망의 마지막 날에 거센 태풍을 만나 동이 틀 무렵에야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결국 백일기도에 실패한 용왕의 아들은 저무는 달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선 채로 돌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선돌바위의 유래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의 시작점 위에 서면 투명한 하늘빛 바다 아래 까만 현무암 갯바위가 빠끔 고개를 내민다. 이곳은 수심이 얕아 물이 빠지면 찰박하게 물이 남아있는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지기도 한다. 그 시기에는 물이 빠져나간 백사장 위를 유유히 거니는 사람들, 그리고 신양해변에서 바라보이는 성산일출봉의 모습이 더해져 더욱 근사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사진은 물 빠진 신양해변. 사진/여행스케치

신양해변을 등지고 왼쪽으로 가다보면 길가에 정자가 하나 있다. 그 정자를 끼고 마을 돌담길을 지나 바다와 가까운 해안도로로 계속 걷다 보면 신양포구가 나온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해안길이 시작된다. 해안길은 바다와 가까워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을 선사한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갯바위에 파도가 부딪혀 부서지는 모습도 일반 해변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걷는 동안 바다의 풍경을 계속 보며 갈 수 있어 좋다.

제주 최초의 혼례가 이루어진 혼인지마을
신양포구에서 약 1시간을 걸으면 온평리 혼인지마을이 나온다. 혼인지마을 초입에는 연혼포라고 적힌 비석이 서있는데, 이 비석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구전에 따르면 태초의 제주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범한 외모를 가진 세 명의 선인이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삼성혈)이라는 곳에서 솟아올랐다. 이들이 바로 제주의 시조가 되는 고부양(고 씨, 부 씨, 양 씨) 삼선인인데, 사냥을 하던 삼선인이 온평리 바다에 이르러 잠시 쉴 적에 나무궤짝 세 개가 떠내려 왔다고 한다.

사진/여행스케치
신양포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해안길이 시작된다. 사진/여행스케치
사진/여행스케치
제주의 대표적인 상징물 돌하르방. 사진/여행스케치

삼선인이 궤짝을 열어보니 그 속에서 세 명의 공주와 함께 말, 소, 오곡백과 등이 나왔다. 동해 벽랑국의 왕이 하늘의 계시를 받아 자신의 딸들을 보낸 것이었다. 이에 삼선인은 정화수를 받아놓고 세 공주와 각각 혼례를 올렸다. 이후 세 공주가 도착한 장소를 연혼포라 명하고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는 것이며, 삼선인과 세 공주가 혼인을 한 곳은 혼인지마을, 신방을 차렸던 굴을 신방굴이라 불렀다.

정화수를 떴던 샘물을 제주 방언으로 산물통(살아있는 물)이라고 하는데, 온평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천제를 지내기 전에 산물통을 깨끗이 관리하고 있다. 제주의 시조와 관련이 있는 곳인 만큼 잠시 환해장성로를 벗어나 혼인지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사진/여행스케치
혼인지마을에 있는 연혼포 비석. 사진/여행스케치

마을을 지나 온평포구에 다다르면 포구 끝에 바다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거북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데, 벽랑국의 세 공주를 따라온 거북이 온평리의 온화함과 평화로움에 반해 머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온평리에서는 이 거북바위도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다.

INFO 혼인지마을 종합센터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환해장성로 549


온평 환해장성 걷고 신산 환해장성까지
온평리의 초입에 다다르면 환해장성을 따라 걷는 길이 시작된다. 온평리 환해장성은 2km 정도로 제주에 남아있는 환해장성 중 가장 긴 거리를 지니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9호인 환해장성은 해안선이 완만해 적의 침입이 쉬운 약점을 대비하기 위해 쌓은 것이지만, 그 시작은 아이러니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몽고와의 강화에 반대한 삼별초군이 강화도에서 항전을 벌이다 진도를 거쳐 제주로 들어가려 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조정에서 영암부사 김수와 고여림 장군을 보내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쌓은 것이 제주도 환해장성의 시초다.

그러나 성을 넘어 제주 진입에 성공한 삼별초군이 오히려 이를 활용해 최후까지 대몽항쟁을 벌였으니, 장성을 쌓은 고려군은 남 좋은 일만 해주고 만 셈이다. 그래도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어냈던 환해장성은 조선시대까지 보수ㆍ정비 과정을 거치면서 왜구 침입을 방어하는 데 꾸준히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진/여행스케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환해장성의 모습. 사진/여행스케치

장성을 보며 걷는 환해장성로는 한가로이 걷기 좋은 길이다. 이따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손에 꼽을 정도이고, 지나다니는 차도 가끔 보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수수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들기에 모자람이 없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그 아래로 펼쳐진 짙푸른 바다에는 멀리서 찾아온 바람이 시꺼먼 현무암을 쉼 없이 두드리며 철썩거린다. 

물질하는 해녀도 몇 번씩 마주치면서 비슷한 풍경이 지루해질 때쯤 환해장성로의 종착지인 신산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 바닷가마을 포구에서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히는 옛 등대 ‘도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성산읍 신산리와 신풍리 경계 부근의 남쪽 해안에서는 신산리 환해장성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해안누리길 환해장성로는 신산포구를 지나며 마무리되는데, 해안도로 드라이브로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다채로운 제주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니 꼭 걸어보길 바란다.  

사진/여행스케치
길을 걷다 마주친 해녀상들. 사진/여행스케치
포구마을에서 물회 등으로 식사를 즐기는 것도 좋다.
포구마을에서 물회 등으로 식사를 즐기는 것도 좋다. 사진/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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