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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마을따라 마음따라] 섬진강 물길 따라 풍류가 흘러, 순창 동계
[마을따라 마음따라] 섬진강 물길 따라 풍류가 흘러, 순창 동계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3.05.16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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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섬진강과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순창 동계.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순창] 풍류가 무엇인가! 멋과 운치를 알고 즐기는 일이다. 멋과 운치를 즐기는 일은 넉넉한 마음의 여유에서 온다. 또한 청정한 물과 바람과 하늘과 주위의 선한 기운들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섬진강 물길따라 떠난 마음 치유 여행.

평화롭고 조용하고 따뜻한 순창군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그중에서 동계면은 순창의 동쪽에 있는데 옛날에는 남원부에 속했다. 호남정맥 지맥인 용궐산(645m)과 무량산(586m) 등이 솟아 있는 데다가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평화롭고 고즈넉한 산촌과 강촌의 이미지를 자랑하고 있다. 강변길이 아름다워 걷기 여행과 자전거 라이딩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걸어도 좋고 달려도 좋은 곳, 순창 동계다.

순창 동계와 적성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섬진강 장구목으로 마실 나온 학생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구준암에 전해지는 천하제일 풍류 놀음
현지인들이 적성강 또는 만수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섬진강 변에 꽤 유서 깊은 마을이 있다. 남원 양씨 집성촌으로 입촌사 600년을 넘긴 귀미마을이다. 일부에선 구미마을로도 나오는데 귀미마을이 맞다고 마을 주민들이 힘주어 강조한다. 거북을 뜻하는 한자 ‘귀(龜)’를 ‘귀’로도 읽고 ‘구’로도 읽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마을 지형이 금구예미형(金龜曳尾形/ 금거북이가 꼬리를 끌며 들어감) 형상의 명당이라는데 마을 입구에 작은 거북바위도 세워져 있다.

그런데 거북바위의 머리가 잘려있어 의아심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에 있었던 취암사라는 사찰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거북은 풍요와 안녕을 지켜주는 영물인데 그 꼬리가 향한 곳이 풍수적으로 재물이 새어 나가지 않는 명당이란다. 그러다 보니 절의 승려들과 마을 주민들이 거북바위 꼬리의 방향을 놓고 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승려들이 그만 거북바위의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그랬더니, 전각이 9채나 될 정도로 번성했던 취암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단다. 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오래 전의 일이다.

바위 구멍에 술을 부어 마셨다는 구준암.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귀미마을 입구 보호수와 정자.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귀미마을 이씨부인 정려비.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귀미마을 입구에는 운치있는 정자와 함께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가 마을 랜드마크처럼 버티고 있다. 느티나무 넓은 가지 밑에는 열부 이씨의 정려비도 있어 그 행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씨 부인은 귀미마을에 처음 정착한 사람으로 유복자이자 마을 시조인 양사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1379년 한 해 사이에 남편과 시아버지를 연달아 잃었는데 재가를 권하는 주위 유혹을 뿌리치고 홀로 아들을 키웠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다. 양사보는 훗날 함평 현감까지 오르며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귀미마을에서 장구목을 향해 섬진강 길을 걷다 보면 새로 지은 정자 육로정과 함께 ‘종호’라는 글씨가 새겨진 큰 석벽이 나온다. 양운거(1613~1672)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이 풍류를 즐겼던 현장이다. 지역의 부호이기도 한 양운거는 학식은 높았지만 벼슬에는 뜻이 없고 자연을 벗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가산을 아끼지 않아 지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걷기 좋은 섬진강길.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구준암에 새겨진 글씨.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양운거는 강변에 정자를 여럿 지어놓고 벗들과 함께 시문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는데 육로정이라는 정자의 이름도 여섯 명의 노인들이 수시로 강변 바위에 모여 시를 짓고 술을 마시던 육로암에서 따왔다. 종호 주위에는 모두 9점의 바위글씨가 남아있는데 그중에서도 ‘아홉 개의 술동이’를 뜻하는 ‘구준암’이 새겨진 강 가운데 바위가 인상적이다. 이 바위 역시 마을 노인들이 시문을 짓고 가무악을 즐기며 술을 마시던 풍류 놀이터다.

강 한가운데라 술 주전자를 자주 보충할 수 없으니 바위 가운데 큰 구멍에 술을 부어놓고 마셨는데 넘치는 술은 강물로 흘러 일부는 섬진강이 마시고 또 일부는 자리에 모인 풍류객들의 시와 노래가 들이마셨다. 그러다 안주가 부족하면 공중에 매달린 줄을 당겨 강가의 종을 울리게 해 대기하고 있던 하인들로부터 안주를 공급받았다.

종이 한번 울리면 안주, 두 번 울리면 지필묵, 세 번 울리면 기생을 대령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천하제일 풍류 놀음이다. 바위에 새겨진 종호란 이름처럼 당시 시객들의 노랫소리는 종소리처럼 섬진강 일대에 메아리쳤다.

기묘한 형태의 장구목 요강바위.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수심이 얕아도 낚시는 잘 된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장구목과 용궐산 하늘길
섬진강은 동계면과 적성면 경계를 타고 흐르는데 적성면 쪽 강변길은 자전거 라이딩 코스로 이름난 곳이고 동계면 쪽은 걷기여행에 알 맞다. 비록 콘크리트 포장된 길이라 아쉬워도 타박타박 걷다 보면 마음이 절로 평화로워지고 가지런해진다. 게다가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볼거리도 있다. 장구목과 용궐산 하늘길이 대표적이다.

장구목은 장군목이라고도 하는데 강변 바위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은 요강바위다. 요강처럼 둥근 구멍이 파였는데 자연현상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정교하여 들어가 인증 사진을 찍는 커플도 많다. 한국전쟁 때에는 요강바위에 몸을 숨겨 화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이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더 재미있게 전해지는 이야기는 약 15톤가량이나 되는 이 바위를 훔쳐 간 간 큰 도둑들 이야기다.

1993년 2월에 벌어진 실제 사건인데 도난당한 후 언론매체를 통해 요강바위를 찾는다는 뉴스를 계속 내보냈다. 그랬더니 제보가 들어와 경기도 광주의 한 비닐하우스에 있던 요강바위를 되찾아 올 수 있었다. 주민들의 끈질긴 집념과 노력 덕에 집 나갔다 무사히 돌아온 요강바위다.

용궐산 하늘길,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용궐산 하늘길 암벽에 새겨놓은 글씨. 하늘길을 조성하면서 새긴 글씨인데 너무 많은 글씨를 새겨놓아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용궐산자연휴양림 전경.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요강바위 일대에선 낚시나 가벼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수심은 깊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는,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섬진강이다. 귀미마을과 장군목 사이에 용궐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용궐산산림휴양관 간판이 걸린 큼지막한 2층짜리 건물과 그 2층에 있는 백두대간 전시실이 개방되어 있지만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건물 뒤편의 용궐산 하늘길이다.

용궐산 중턱 거대한 암벽에 잔도를 설치하여 여행객들이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중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으로 입소문 나면서 단숨에 핫플 반열에 올랐다. 특히 잔도에선 섬진강과 일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멋진 전망대 역할까지 하고 있다.

아쉬움이라면 올해는 6월30일까지 보수공사로 인하여 임시 폐쇄되었다는 점이다. 공사가 끝나면 잔도 구간이 지금보다 2배가량 늘어난 1km 정도에 달하고 낙석 등의 안전 대비책도 강화된다. 인근의 채계산 출렁다리도 3년 전에 개통되어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라 연계 여행지로 묶을 만하다.

<여행쪽지>

농가맛집 장구목의 도토리밥 상차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농가맛집 장구목의 도토리밥 상차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농가맛집 장구목 장구목에 자리한 식당으로 도토리묵밥과 도토리묵전, 도토리 묵무침 등의 식사와 간단한 음료를 취급한다. 문의 010-4139-3988
용궐산자연휴양림 징검다리 건너 맞은편에는 캠핑이 가능한 섬진강마실휴양 숙박시설단지가 있다. 문의 0507-1356-6785, 063-65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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