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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역사기행] 가슴 떨리는 그 이름, 백두산과 고구려
[역사기행] 가슴 떨리는 그 이름, 백두산과 고구려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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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위용과 천지.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위용과 천지.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여행스케치=백두산] 연초에 황당한 뉴스가 바다를 건너 왔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켰다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더니 중국은 우리 선조를 데려간단다. 도대체 우리 이웃들이 무슨 꿍꿍이속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암튼 독도 지키기와 더불어 고구려 지키기에도 나서야 할 판이다.

우리가 역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틈만 나면 그 무대를 찾아가 발로 꾹꾹 밟아 주는 것이다. 학자들이 각종 사료와 증빙 자료를 통해 사실을 입증한다지만 그래도 직접 나서서 우리 것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하다.

압록강. 저 너머가 지금도 갈 수 없는 땅, 북한이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압록강. 저 너머가 지금도 갈 수 없는 땅, 북한이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분단이 반세기를 넘기면서 우리 머리 속의 지도는 임진강 아래 허리 잘린 반도에 머무르고 있나보다. 교통 지도도 남쪽만 나와 있다. 그러니 광활한 고구려 영토는 학생들의 지도책에서만 찾아보는 아득한 상상의 저편에 있을 수밖에. 그러나 우리가 기억을 하든 않든 고구려는 살아있다. 신라의 숨결이 숨쉬고 있는 경주처럼, 압록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고구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지안에 있는 고구려고분. 7백여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의 패자로 군림한 고구려는 숱한 유적을 남겼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지안에 있는 고구려고분. 7백여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의 패자로 군림한 고구려는 숱한 유적을 남겼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고구려는 부여족의 한 갈래인 예맥족이 세운 나라. 건국 설화는 신화에 가깝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물을 다스리는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낳은 아들이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다. 신라의 건국시조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와 부모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는 것과는 달리 그 출생신분이 뚜렷하다. 혼례를 치르기도 전에 아이를 잉태한 유화는 집에서 쫓겨나는데 동부여의 금와왕의 보살핌으로 주몽을 낳는다.

인물이 출중한 주몽은 금와왕의 아들들에게 시기를 받으며 성장하다 결국 부여를 떠나 졸본 지방에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다. 그의 나이 22세. 예수가 태어나기 37년 전인 BC 37년 이야기이다. 고구려는 한족이 설치한 한 4군과의 투쟁 속에서 성장하며 한반도 북쪽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호태대왕비. 중국인들 역시 광개토대왕을 호태대왕이라 부르며 숭상한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호태대왕비. 중국인들 역시 광개토대왕을 호태대왕이라 부르며 숭상한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 고구려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정복국가였다. 중국에서도 광개토대왕을 호태왕이라 부르며 숭상하는 걸 보면 당시 얼마나 강력한 국가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왕자 호동,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 숱한 영웅들 또한 고구려의 기상을 이 땅에 새겼다.

‘고구려’ 하면 가슴 설렌다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바로 그 강력한 힘과 패기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고구려 역사가 705년 지속되는 동안 중국에서는 35개 국가가 명멸했는데 1백년 이상 지속된 국가가 동진(103년), 북위(149년), 후한(196년), 한 (221년), 당(290년)에 불과했다.

백두산 서부능선을 오르다보면 오른쪽에 금강 대협곡이 있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백두산 서부능선을 오르다보면 오른쪽에 금강 대협곡이 있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수나라는 고구려와 싸우다 멸망하기도 했다. 그 오랜 기간 고구려가 남긴 발자취는 충주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를 비롯해 서울 구리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 평양과 중국 지안에 있는 고구려 성과 고분, 벽화 등 이 땅과 만주 지방 곳곳에 남아 있다.

고구려가 송화강 유역에서 발원하여 지금의 환인지방인 졸본성, 퉁거우 지역에 있는 국내성을 거쳐 평양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도읍을 옮기는 과정에서 남긴 문화유산들은 세계문화유산 등록신청 중이며 올 6월중이면 결정이 날 예정이다.

이렇게 살아 있는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은 어떻게 자기네 역사로 편입할 생각을 했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대부분의 유적들이 북한과 중국 땅에 있어 냉전과 분단의 굴곡을 거치는 와중에 가보지 못했다고 역사마저 슬쩍 가로채려 한다니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백두산에서 바라본 만주.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이 펼쳐진 무대이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백두산에서 바라본 만주.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이 펼쳐진 무대이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중국 오가는 길이 열리고 연변이 한국의 지방 도시처럼 가까워진 지금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고구려 문화유적 답사여행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대개 인천항을 통해 단둥을 거쳐 퉁거우와 지안, 연변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다녀오는데 고구려는 물론 일제시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선각자들의 발자취가 의외로 많이 남아 있어 놀라기 일쑤.

다녀온 이들은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찾은 기분이라고 한다. 한 여름철 백두산은 야생화들의 천국으로 산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 겨울철에는 엄청난 눈 때문에 오를 수도 없다. 백두산 짙푸른 천지에서 잠든 민족의 영혼을 깨우는 여행. 백두산과 고구려 문화유적 답사는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다녀와야 할 만한 성지가 아닐까?  

장군총. 고구려 문화유적은 세계문화유산 등록신청을 하였으며 오는 6월 결과가 나온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장군총. 고구려 문화유적은 세계문화유산 등록신청을 하였으며 오는 6월 결과가 나온다. 2004년 6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Tip. 고구려 문화유적답사 코스
올 여름 고구려 문화유적답사를 할 수 있는 여행상품이 나왔다.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신의주 옆 단둥에 도착해서 고구려 문화유적이 많은 지안을 거쳐 백두산까지 등정한 후 연변을 거쳐 속초로 내려오는 4박5일부터 8박9일까지 다양한 코스가있다.

쉽게 말해서 압록강을 따라 쭉 올라가서 두만강을 따라 내려오는 대장정이다. 가는 도중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 등 곳곳에서 고구려 문화유적을 만날 수 있고, 일제시대 만주에서 투쟁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도 더듬을 수 있다. 우리의 정체성과 기상을 다시금 새길 수 있는 뜻 깊은 여행이 될 듯.

고구려 문화유적답사를 추진 중인 제로쿨투어에서는 여행코스를 여행객들의 편의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상품을 제공할 예정이다.
1) 단둥 - 단둥 :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단둥에 도착한 후 퉁화, 지안, 백두산, 용정, 연길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단둥을 통해 인천으로 돌아오는 코스.
2) 단둥 - 속초 :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단둥에 도착한 후 퉁화, 지안, 백두산, 용정, 연길을 거친 후 러시아를 경유하여 속초로 내려오는 코스.
3) 단둥 - 심양 - 단둥 :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단둥에 도착한 후 북릉이 있는 심양을 돌아보고 단둥을 통해 인천으로 돌아오는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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