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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⑬] 고려와 조선의 바다를 지킨 관음포 - 제14코스 이순신호국길
[남해바래길 걷기여행⑬] 고려와 조선의 바다를 지킨 관음포 - 제14코스 이순신호국길
  • 황소영 여행작가
  • 승인 2021.12.15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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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14코스와 남파랑길 46코스
마을길, 숲길, 도로가 이어지는 풍경
유자와 굴 등 풍성한 남해의 먹거리도 눈길
관음포 이순신순국공원에선 숙연한 마음...

[여행스케치= 남해] 총 19개의 바래길 코스 중 9코스(구운몽길) 17.6km, 7코스(화전별곡길) 17km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거리다. 9코스를 걸을 땐 여름이었고, 7코스를 걸을 땐 봄이었다. 겨울은 춥기도 춥지만 해가 짧다. 너무 늦게 출발하면 어두워진 후에야 길의 끝에 닿는다.

이번 구간은 중현하나로마트(보건소)~선원마을~백년곡고개~고현~이순신순국공원~월곡마을~노량선착장까지 이어진 16.6km의 길로 휴식 포함 6시간쯤 걸린다. 이순신순국공원 일대에서 바다를 만나지만 전체적으로 마을길, 숲길, 도로가 주를 이룬다. 도로는 차량 통행이 적은 곳이어서 보행에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다. 기존의 이순신호국길구간 번호는 13이었다. 7.2km였던 거리는 전체 구간이 뚫리면서 고현면 일대가 추가돼 16.6km가 되었고, 번호도 14로 바뀌었다. 이 길은 남파랑길 제46코스이기도 하다.

남해바래길 14코스와 남파랑길 46코스의 출발점 중현보건소.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이번 구간엔 유독 유자가 많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고현면의 탐스런 유자

지난달 길을 끝낸 중현보건소 앞에 선다. 같은 장소지만 공기와 바람은 한 달 전과 달라져 있었다. 하늘은 맑은 것도 아니고 흐린 것도 아니었다. 길은 멀었지만 출발은 여느 때보다 늦었다. 마음이 급하다. 중현마을을 뒤로 하고 올라서 도로를 건넌다.

도로 너머의 마을도 중현, 그러니까 이 도로는 중현마을을 반으로 가른 경계선인 셈이다. 도로는 높고 양쪽의 마을은 낮게 내려앉았다. 올라온 만큼 내려간다. 여름이면 커다란 노거수가 그늘이 되어줄 길이다.

마을에서 처음 만난건 운곡사(경남문화재자료 41)였다. 운곡사는 조선시대 학자인 정희보 (1488~1547)를 모신 사당으로 조선 철종 4(1853)에 처음 세웠지만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고, 이후 고종 11(1874)에 다시 지어졌다. 영호남 선비의 절반이 그의 문인일 만큼 훌륭한 지방 교육자였다고 한다. 지은 책으로 당곡정선생실기가 있다.

도로로 나뉜 두 개의 중현마을. 이쪽으로 내려가면 운곡사가 있는 중현마을이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시금치를 가득 싣고있는 경운기.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허리 높이로 쌓은 담장 안엔 초록의 시금치가 낮은 키로 앉았다. 시금치는 겨울 남해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작물이다. 아직 김장을 하지 못했는지 배추며 열무까지, 조그만 텃밭을 지날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침이 고이기론 유자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번 구간엔 유독 유자가 많다. 왜 아직 안 땄지? 일손이 없나? 동네 분께 여쭤보니 이쪽은 서리가 내린 후에야 수확한단다. 창선면처럼 일찍 수확하는 곳도 있고, 고현면처럼 조금 늦게 따는 곳도 있다는 것. 물론 같은 면이라도 주인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가지가 늘어질 만큼 주렁주렁, 초록의 나무는 양팔이 무겁게 샛노란 열매를 달고 있었다.

서리가 내린 후에야 수확한다는 고현면의 유자 열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백년곡고개를 넘어와 만나는 선원마을과 포상마을 일대 풍경.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백년곡고개를 넘어 선원마을로 우물마을을 지나면서 길은 오르막으로 치닫는다. 뭍의 대다수 지역은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지은 후지만 남해는 겨울에도 바쁘다. 경운기 가득 시금치를 싣고 지나는 어르신, 양쪽으로 멀어져 밭일을 하는 부부, 나중 일이지만 지금 남해는 굴 까는 작업으로 분주하기도 하다. 마을이 멀어지면서 백년곡고개는 가까워진다. 거센 바람에 헐벗은 나무는 떨었고, 아직 잎을 단 소나무는 날카롭게 울어댔다.

저 앞에 한 사람이 걷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한눈에도 연세가 많아 뵌다. 여든둘의 어르신은 일주일에 두 번씩 이 길을 걷는다. 집에 있으면 눕는 게다여서 힘들어도 부러 나선 게 벌써 수년째. “쉬었다 가요.” “, 저는 좀 전에 시금치밭에서 쉬었어요.” “3분만 쉬었다 가요.” 어르신도 홀로 걷는 길이 심심한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열네 구간을 걷는 동안 바래꾼을 만난 건 몇 번 되지 않았다. 노량까지 간다는 말에 먼 거리라 당신은 지칠 거야.” 어르신 입에서 영어가 줄줄 나온다. “전에 영어교사를 했어요.” 어르신과 몇 마디 더 주고받고 먼저 자리를 턴다.

바람이 강해서 등을 돌려 거꾸로 걷기도 했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백년곡고개에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설 일만 남았다. 길이 좋아 룰루랄라, 덩달아 기분이 좋다. 길 왼쪽에 안내판이 있다. 고려시대 절터인 전 백련암지(경남기념물 제286). 언뜻 넘겨보니 지금은 밭으로 쓰이는 것 같다. 아래 선원마을엔 선원사터가 있다.

두 절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는데, 특히 선원사는 고려대장경 판각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개를 넘어 도착한 선원마을 벤치에 앉아 배낭 안에 넣어온 간식을 먹는다. 크게 힘든 길은 아니지만 출발한지 2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껍데기에서 방금 꺼낸 굴을 먹어보라고 건네준 남해의 어르신.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남해 굴, 정말 맛있습니다!

고현면 소재지를 지나 둑길로 올라선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관세음길의 일부다.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이 있기 200여 년 전, 이미 관음포에선 왜적과 맞서 싸운 전투가 있었다. 정지 장군의 관음포대첩(1383)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른 4대 대첩에 속할 정도다. 둑길에는 역사적 사실을 적은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바닥엔 예쁜 글귀가 쓰였다. 걷는 재미는 있지만 바람이 너무 강해 거꾸로 걷는다. 바람은 배낭을 뚫지 못하고 옆으로 흘렀다. 고개를 돌리면 따귀를 맞는 것처럼 얼얼하다.

관음포 첨망대. 바래길이 직접 지나진 않지만 바로 옆이므로 한번쯤 들러보는 게 좋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관음포 이순신순국공원 벽화엔 조선 수군과 왜의 전투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저 많은 수군들은 죽음 앞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낫과 칼과 총이 난무한 선상 전투, 도망갈 곳도 없는 배 위에서 사수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격군은 손에 피가 나도록 노를 저었다. 역사는 저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마음이 숙연하다.

INFO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사적 제232호로 관음포 바다에 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1832(순조 32) 장군의 8대손 이항권이 왕명에 의해 단을 모아 제사하고 비와 비각을 세워 이락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대성운해(大星殞海)’ ,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편액이 붙은 묘비각 안에는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가 비문을 짓고, 이조참의를 지낸 이익회가 쓴 유허비가 있다.

낮은 산을 넘는다. 사람은 없었다. 멀리 구간 종점인 노량대교와 남해대교가 보였다. 다리는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1시간도 넘게 남았다. 숲은 어둡고 쓸쓸했다. 바람이 숲을 흔드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얼른 월곡마을로 내려선다. 지도대로라면 이락산과 구포미산을 넘은 것 같다. 해발 100미터도 안 되는 야산이다. 이 산을 넘어서면 풍경이 달라진다. 유자와 시금치 일색인 남해의 밭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관음포와 노량 사이의 어촌 풍경이 펼쳐진다.

남해대교에 도착했을 땐 어느덧 땅거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관음포와 노량 사이의 어촌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바닷바람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생선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뭍과 연결된 두 개의 다리가 더 크게 보였다. 바다 너머 화력단지는 SF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미 오후 430. 서쪽 하늘의 해는 뉘엿뉘엿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찰캉찰캉 쓰르륵, 옷을 겹겹이 입은 어르신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굴을 까는 중이다. 빈 껍질이 수북이 쌓였다. “하나 먹어보라며 할머니 한 분이 굴을 건넨다. 초고추장이 없어도 맛있는 바다의 맛이다. “맛있다고 하니까 하나 더껍데기에서 방금 꺼낸 굴을 건네는 할머니. 버스를 타고 오지 않았다면 3kg 쯤 사도 좋으련만. 구간 종점에 도착해 남해대교로 올라선다. 마침 섬을 떠나 뭍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남해의 바다에 어느덧 붉은 기가 가득하다.

 

36부터 46번까지 11개 코스가 남파랑길이다. 사진/ 황소영 여행기자

INFO 남파랑길

3코스(동대만길)부터 14코스까지는 남파랑길과 길이 겹친다. 단, 미조를 한 바퀴 도는 8코스(섬노래길)는 제외다. 지선 포함 남해바래길 19개 코스 중 11개 코스가 남파랑길인데 구간 번호로는 36부터 46번까지다. 바래길을 벗어난 남파랑길은 남해대교를 건너 뭍인 하동군으로 넘어가 47코스를 잇는다.

INFO 열두척반상

이순신순국공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바래길 걷는 도중 점심을 해결하기 좋은 곳이다. 갈낙해물짬봉 13000, 짬뽕비빔밥 9000, 해물짜장은 1만 원이다. 주재료는 남해특산물이며 화학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면엔 시금치 가루를 사용한다. 월요일 휴무.

주소 경남 남해군 고현면 남해대로 3829

문의 055-863-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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