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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제의 달빛 속을 거닐다. 여름밤, 부여 야행
백제의 달빛 속을 거닐다. 여름밤, 부여 야행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2.06.10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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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비의 궁궐을 재현한 백제문화재단지. 사진/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부여] 백제의 마지막 도읍인 사비(부여). 처마 위로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도시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뒤바뀐다. 마치 백제의 마지막 이야기가 되살아나는 느낌. 달빛 아래, 부여의 여름밤을 걸었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

백제는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 그리고 사비(부여)로 세 번이나 도읍을 옮겼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남하정책으로 눈을 돌린 장수왕은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한다. 백제는 7일 만에 함락된 한성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오늘날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게 된다.

이후 수도를 현재의 부여, 사비로 옮긴 것은 성왕 16(538)에 이르러서다. 당시 방어를 위해 웅진으로 천도했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서는 그 규모가 협소했던 것. 사비는 원활한 해상교통로와 넓은 평야 지대, 그리고 부소산으로 인해 침략에 대한 방어에도 수월했다. 성왕은 사비 천도와 함께 지배 체계와 불교 교단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체제를 완전히 재정립하고 새로운 시대를 알렸다. 이후 사비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로서 220여 년 동안 화려한 백제 후기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 시기에 건축된 정림사지 오층석탑. 사진/ 민다엽 기자
백제문화재단지의 능사. 사진/ 민다엽 기자

사비백제의 왕도가 있던 부여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웅진)와 함께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정림사지와 궁남지,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 등 백제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사비의 역사는 비단 한반도만의 역사가 아니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뜨거웠던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니 도시는 한층 낭만적으로 변모한다. 노란 불빛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형형색색 호롱이 활짝 불을 밝힌다. 돌담길을 따라 사부작 사부작 산책을 나서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지난 5월부터 백제문화재단지를 비롯해 정림사지, 궁남지, 부소산성 등 부여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야간 개장을 시작했다. 각 시설에 따라 일정은 상이 하지만, 보통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장해 문을 열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에 한해, 문화관광해설사나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재 야행 프로그램도 있으니 여행 전에 미리 확인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백제문화제단지 입구. 수많은 여행자들이 여름 밤을 즐기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해가 지면 한층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사진/ 민다엽 기자

사비의 밤을 가장 확실히 느껴볼 수 있는 곳은 바로 백제문화재단지다. 백제문화재단지는 사비에 세워졌던 궁궐과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왕실의 사찰인 능사, 그리고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고분군을 살펴 볼 수 있는 고분 공원 등을 재현한 테마파크다. 아쉽게도 실제 건축물이 남아있진 않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보기엔 부족함이 전혀 없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백제의 문화재가 극히 적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고즈넉한 달빛에 물든 사비궁의 모습은 웅장하기 그지없다. 화려하게 조명을 밝힌 왕궁과 능사 탑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청사초롱을 손에 꼭 쥔 채 왕궁을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규모가 생각보다 크니 전기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이 밖에도 공포체험이나 사비로 열차 등 다양한 야간 프로그램과 각종 공연도 진행되니 놓치지 말 것.

달 모양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여행객들의 모습. 사진/ 민다엽 기자
사비로 열차를 타고 백제문화재단지 구석구석을 누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시내에 있는 부여 시장 광장에서는 저녁 늦게까지 한바탕 흥겨운 축제가 이어진다. 야심한 밤까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곳. 오는 8월 말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부여백마강달밤야시장이 열린다. 중앙에 있는 메인 무대에서는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푸드코트에서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시장 구석구석을 뛰놀고 젊은이들은 뜨거운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한다. 저마다 신나게 여름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는 자유분방한 모습. 먹음직스러운 닭 꼬치와 맥주, 그리고 달빛과 함께 여름밤의 열기에 흠뻑 취했다.

매주 금·토요일 저녁 11시까지 부여백마강달밤야시장이 열린다. 사진/ 민다엽 기자
야시장의 묘미. 푸드 트럭에서 불 쇼를 하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먹음직스런 길거리 음식은 언제나 사랑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부여 시내에 있는 정림사지도 들를 만하다. 정림사지는 사비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로, 중앙에 백제의 건축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 남아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얼마 남아있지 않은 백제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주변으로 돌담길이 조성돼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기에도 좋다.

새콤달콤한 메밀 막국수와 편육은 환상의 조합. 사진/ 민다엽 기자
부여맛집인 장원막국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저녁 늦게까지 흥겨운 분위기에 빠져있었다면, 다음날 아침 식사는 상큼한 막국수로 속을 달래보자. 부소산성 근처에 있는 장원막국수는 항상 손님들로 붐비는 부여 대표 맛집이다. 새콤달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메밀 막국수와 함께 촉촉한 편육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에 제격인 메뉴. 보기와는 달리, 자극적이지 않고 깊은 맛을 내는 육수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오픈 시간인 오전 11시 전부터 길게 대기 줄이 늘어서 있으니, 최소한 30분은 먼저 가서 기다려야 제때 먹을 수 있다. , 회전율이 상당히 빠른 편이니,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면 생각보다 금방 차례가 돌아온다.

 

낮에는 숲과 박물관으로!

이른 아침,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성에 올랐다. ‘사비길이라 불리는 부소산성 산책로는 30분 남짓이면 돌아볼 수 있는 가벼운 코스다. 초록이 물결치는 태자골 숲길과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의 눈부신 풍경이 인상적이다.

낙화암 전망대에서 바라 본 백마강의 풍경. 사진/ 민다엽 기자
낙화암 위에 있는 정자 백화정. 사진/ 민다엽 기자

부소산성은 평소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비상시에는 사비도성을 지키는 왕궁의 방어 시설로 이용되었다. 그 중 낙화암의 백화정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때 이곳에서 목숨을 버린 궁인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정자로, 부여를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다.

사실, 부여에 왔다면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은 바로 국립부여박물관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백제의 문화재를 살펴보기에 앞서, 부여의 마지막 왕도였던 사비의 역사를 아는 것이 필수다.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백제 후기의 역사와 각종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부소산성 태자골 숲길. 사진/ 민다엽 기자
백제 사비의 별궁 연못이었던 궁남지.  사진/ 민다엽 기자

그중 가장 눈여겨 볼 만 한 유물로는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93호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꼽을 수 있다.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연꽃 위에서 그 위용을 뽐내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모습은 특히나 압도적이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연꽃잎 한 장 한 장마다 각기 다른 모습이 조각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사진/ 민다엽 기자
국보 제293호 금동관음보살입상. 사진/ 민다엽 기자

다음으로 금동관음보살은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백제 불교 조각의 미적 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불상의 인자한 표정이 인상적. 지그시 감은 눈과 앙다문 입술, 보일 듯 말듯 한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TIP. 사랑 나무에서 인생 사진 ‘찰칵’

성흥산성 사랑나무. 사진/ 민다엽 기자
해질 무렵 활홀한 일출은 덤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부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성흥산성에는 ‘사랑 나무’로 불리는 유명한 포토 스폿이 있다. 휘어진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은 뒤, 사진 두 장을 좌우 반전시켜 합성하면 ‘하트’ 모양 완성. 해 질 무렵 황홀한 일몰은 덤이다.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산 7-10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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