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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6월호
[건축 기행] 제주의 근현대 담은 건축물 돌아보기…알뜨르비행장‧강병대교회와 모슬포성당‧서귀포관광극장까지
[건축 기행] 제주의 근현대 담은 건축물 돌아보기…알뜨르비행장‧강병대교회와 모슬포성당‧서귀포관광극장까지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1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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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 남은 알뜨르비행장
1950년대 지어진 강병대교회와 모슬포성당
60~70년대 문화의 중심지 서귀포관광극장
제주에는 군사시설물을 비롯해 근현대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서귀포의 알뜨르비행장에서는 태평양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은 알뜨르비행장의 설치 작품 <애국기 매국기>.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스케치=제주] 제주에는 유독 군사시설물이 많이 남아 있다. 국토 최남단, 평화의 섬 제주에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은 의외이다. 이는 전범국 일본이 제주를 전진기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군사시설물과 그 이후의 근현대 건축물을 살펴보며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를 짚어보자. 

양민의 노동으로 일군 비행장과 지하벙커
서귀포 대정읍 일대에서는 일제가 남긴 군사 시설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이외의 지역 중 태평양전쟁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으로 알뜨르비행장이 대표적이다. 송악산 근처 넓은 벌판은 현재 주민들이 밭농사를 하는 곳인데, 태평양 전쟁 시 일제는 이곳에 비행장을 지었다. ‘알뜨르’는 제주말로, 알은 ‘아래’, 뜨르는 ‘벌판’이라는 뜻이다. 즉, ‘마을 아래 너른 벌판’을 의미한다.

1936년 1차 완공 시 넓이는 약 20만평으로, 목적은 중일전쟁의 중간 기착지 역할이었다. 실제로 난징 출격횟수는 36회, 폭탄투하는 총 300t 분량이었다고 한다. 이후 확장공사를 하여, 1945년에 80만평까지 규모를 늘렸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며 미군의 공습에 대비했던 ‘결 7호 작전’의 일환이었다. 결 7호 작전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본토를 지키기 위해 일본 내에 6개 지역과 일본 외에 1개 지역을 방어지역으로 삼고 총력전을 준비했던 것으로, ‘일본 외 지역 한 곳’이 하필이면 제주도였다.

서귀포 알뜨르비행장의 풍경. 격납고가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벌판 너머로 산방산이 보인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비행기를 세워 두던 격납고. 총 20기 중 19기가 남아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벌판을 살펴보면 띄엄띄엄 콘크리트 무덤 같은 것이 보인다. 이는 비행기를 세워 두던 ‘남제주비행기격납고’이다. 폭이 18.7m, 높이가 3.6m, 길이가 11m인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크기가 모두 같고 총 20기 중 19기가 남아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격납고가 이렇게 원형 그대로, 한꺼번에 많이 남아 있는 곳 역시 제주가 유일하다고 한다. 1944년 완공하여, 일본의 최신 전투기였던 ‘제로센’과 ‘아카톰보’를 보관하였는데, 아카톰보는 일제가 ‘빨간잠자리’라 부르던 연습용 비행기이다. 현재 격납고 한 기에는 제라센 폭격기를 실물 크기로 형상화한 설치작품인 <애국기 매국기(박경훈, 강문석 작)>가 전시되어 있다.

알뜨르비행장 활주로의 길이는 1400m, 너비 70m로 1980년까지 실제 군사 공항으로 사용되었다. 활주로 중앙에는 관제탑으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시설물이 보인다. 길이 3m, 높이 17m이고, 여기서 북쪽을 보면 30m쯤 떨어진 낮은 구릉 위에 환기구 같은 것이 4개 있다. 이는 일제가 지하벙커를 만들고 흙과 풀로 위장한 것이다. 지하벙커는 폭이 약 28m, 길이 약 35m로 두 개의 공간이 맞붙어 있고, 관제탑에서 보았던, 4개의 창이 천장으로 뚫려 있다. 콘크리트로 지은 이 시설물은 마치 지난 주에 완공된 듯 깨끗하고 튼튼하다. 활주로와 관련된 통신시설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등록문화재 제312호이다.  

활주로에서 30m 가량 떨어진 낮은 구릉 위로 환기구 같은 물체가 4개 보인다. 일제가 지하벙커를 만들고 흙과 풀로 위장한 것으로, 4개는 하늘을 향해 뚫린 창이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일제는 전투사령실, 병사, 의료시설,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정비공장, 어뢰조정고, 통신실, 발전소 등을 모두 지하에 감추고 비행기 격납고는 흙과 풀로 위장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알뜨르비행장과 이 대단한 공사는 일대 양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이룬 것이다. 알오름동, 저근개, 골못, 광대원 등의 주민들은 강제 이주 당했고, 하루에 5000명 정도가 노역에 시달렸다. 나라를 빼앗기니 땅도 빼앗겼고, 심지어 자신이 쫓겨난 땅에서 강제 노동까지 해야 하는 처참한 시절이었다. 전쟁 막바지였던 1945년에는, 이전에 1000명을 넘지 않았던 제주 주둔 일본군이 8월에 7만명까지 늘어났다. 일제는 전투사령실, 병사, 의료시설,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정비공장, 어뢰조정고, 통신실, 발전소 등을 모두 지하에 감추고 비행기 격납고는 흙과 풀로 위장했다. 

아름답기만 한 제주의 풍경 아래에는 양민의 피땀으로 만든 시설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 땅 제주에 남아 있는 일본의 흔적은 차갑고 삭막하기만 하다. 굳이 다크투어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한 군데쯤 들러 보면 좋겠다.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Info 알뜨르비행장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670

Info 남제주비행기격납고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489 일대 

6.25전쟁의 역사 품은 교회와 성당
모슬포를 지나다 발견하는 강병대교회는 언덕 위 그림 같은 모습이다. 제주의 검은 돌과 어울린 하얀 창틀이 이색적이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교회라는 생각에 잠시 멈춰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어진다.

제주 강병대교회. 6.25전쟁의 대표 유적으로 등록문화재 제38호이고, 지금은 공군8546부대의 기지교회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강병대교회의 옛 모습. 좁은 폭과 뾰족한 탑은 그 당시 군대 막사의 표준 규격을 적용한 목조 지붕을 올린 것이다. 즉, 교회의 폭이 훈련소 막사와 똑같았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이 교회는 1952년에 군사 훈련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강병대’는 6.25전쟁 발발 이후 이곳에 세워진 육군 제1훈련소의 이름으로 ‘강한 군사를 키워낸다’는 뜻이다. 현재 논산 훈련소의 전신으로, 한국 최초의 육군 신병훈련소가 제주 섬에 있었다는 것도 의외의 사실이다. 이것은 해방 후 바로 이어진 전쟁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는 식민 시대를 추스르고 무언가 만들어 나갈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때문에 일제가 남기고 간 건축물을 그대로 사용한 예가 많다. 일제는 항복과 함께 전쟁 막사 등 전쟁 시설을 남기고 갔다. 이것을 6.25전쟁 신병훈련소로 쓴 것이다. 3주 간의 신병훈련은 육지에서 온 군인들에게 지옥훈련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낯선 환경과 풍토병, 흉년까지 겹쳐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때 제7대 소장으로 부임한 장도영이 교회 건립을 추진하였다. 좁은 폭과 뾰족한 탑은 그 당시 군대 막사의 표준 규격을 적용한 목조 지붕을 올린 것이다. 즉, 교회의 폭이 훈련소 막사와 똑같았다. 6.25전쟁의 대표 유적으로 등록문화재 제38호이고, 지금은 공군8546부대의 기지교회로 역할을 하고 있다.

강병대교회와 멀지 않은 곳에는 모슬포성당이 있다. 지금 별관으로 쓰이고 있는 ‘사랑의 집’ 역시 6.25전쟁 때 지어진 것으로 1950년대 성당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서쪽에 출입문 하나, 창문 다섯 개, 현무암으로 튼튼하게 멋을 부리지 않고 지어 오히려 믿음직하다.

모슬포성당에서 별관으로 쓰이고 있는 ‘사랑의 집’ 역시 6.25전쟁 때 지어진 것으로 1950년대 성당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모슬포성당의 풍경. 교회와 성당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공사는 1951년 성 프란치스코수도회 소속 설리반 신부가 종군신부로 부임한 후 시작되었고 1952년에는 송악산에 있던 중공군 반공포로 중 일부가 공사에 투입되기도 했다. 1953년에는 해체된 포로수용소 자재를 기증 받아 공사에 활용하였다고 한다. 1954년에 축성식을 갖고 서귀포본당 소속 모슬포 공소가 되었다.

교회와 성당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다.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잠시 뒷자리에 앉아 여행의 안전과 평안,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도해 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Info 남제주강병대교회 
제주 구 육군 제1훈련소 지휘소,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 등도 보존되어 있으나 해병대 지역 안에 있어 사전에 문화재 관람신청을 해야 한다. 일반 개인 관람은 다소 번거롭고, 단체 견학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편이 좋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대서로 43-3

Info 모슬포 사랑의 집 
주소 제주 서귀포시 영서중로 22 

서귀포 사람들의 추억 깃든 서귀포관광극장
이중섭거리, 이중섭미술관 옆에는 오래된 극장 건물이 있다. 서귀포관광극장이다. 지금도 간판과 출입구와 매표소 등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1963년 면적 240㎡, 정원 667명 규모로 완공된 영화관이었다. 영화 상영 뿐 아니라 초등학교 발표회, 웅변대회, 대중가수나 악극단 공연,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초청 공연 등이 열린 이 지역 문화의 중심지였다. 1973년에는 전기 누전으로 100명의 관객이 부상당하면서 무기한 영업 정지 처분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1999년까지 현역 극장으로 자리를 지키다 폐업하였다. 

1963년 지어져 서귀포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다 지난 1999년 폐업한 서귀포관광극장. 2012년 리모델링 후 지금은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무너진 천정을 살려 노천극장으로 개관한 서귀포관광극장. 그리스 로마도 아닌 국내 여행에서 지붕이 날아간, 무너진 극장을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경험이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서귀포관광극장의 로비와 내부 공간에는 영사실 자리와 매표대, 대들보와 천정의 얼룩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 송세진 여행칼럼니스트

건물은 지붕이 무너지면서 한때 철거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2012년 리모델링 후 예술전용 공연장이 되었다. 무너진 천정을 살려 노천극장으로 개관하였는데, 창 없는 창문을 통해서는 가까이 이중섭미술관이, 멀리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이 보인다. 그리스 로마도 아닌 국내 여행에서 지붕이 날아간, 무너진 극장을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경험이다. 로비와 내부 공간에는 영사실 자리와 매표대, 대들보와 천정의 얼룩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잠시 머물다 보면 이 안에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여행자에게 이색적이지만 서귀포 사람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중년의 토박이로부터 들어보니 주말에 근처 온천탕에서 목욕을 하고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면 최고였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무대에서 첫 발표회를 했고, 언젠가 극장이 문을 닫을 때 꽤 쓸쓸했다고도 한다. 잠시 들러 가는 여행자는 그 많은 사연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때를 상상하며 따뜻한 기운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갈 뿐이다.

Info 서귀포관광극장
주소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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