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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름 야행] 역사를 품고 밤을 누비다, 군산
[여름 야행] 역사를 품고 밤을 누비다, 군산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6.07.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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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피하는 여름 야행(1)
문화·예술의 시간으로 이끄는 여름의 밤
시간 여행자의 군산 거리 탐방
사진 / 김샛별 기자
군산에서 근대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자가 되어보자. 사진 / 김샛별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군산] 여름의 밤은 길다.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속내를 드러낸 밤은 우리를 문화·예술의 시간으로 이끈다. 더위를 피해 밤의 시간을 기다린 이들이여, 한여름 밤의 꿈을 거닐러 갈 시간이다.

시간을 넘나드는 낭만적인 야행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 파리로 여행 온 소설가 길이 우연히 1920년대의 파리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담고 있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과거라는 마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이 8월 13일~14일, 이틀간 군산에서 펼쳐진다. 

3개의 시대를 통과하는 길
군산은 근대 문화유산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다. 그래서 흔히 1930년대의 근대사를 간직한 군산만을 떠올리지만, 군산은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시다. 서해안 뱃길의 요충지인 군산은 ‘군산세관’을 통해 개항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다. 청나라가 18세기 외국과의 무역을 위해 항구에 해관을 설치한 이후 조계지를 거쳐 구 군산세관에 이른다. 구 군산세관은 1908년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 지어진 세관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물이다. 

군산에서는 근대문화유산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3개의 시대를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도록 구간별로 나누어 거리를 조성하였다. 청나라 시대의 군산을 엿볼 수 있는 거리를 통과하면 일제 수탈의 역사가 담겨 있는 근대를, 그곳을 지나 현대의 군산을 만나볼 수 있다. 하나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 3개의 시대를 통과하는 셈이다. 

김봉곤 군산시청 문화예술과장은 “단순히 밤에 문화재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상과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시대별 당시의 사진과 신문기사 스크랩은 물론, 다양한 복식체험과 과거를 재현한 공간을 준비해 한층 더 즐겁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특히 이번 한여름밤 군산 여행은 내부 관람을 할 수 없던 신흥동 일본식가옥을 비롯해 9개의 문화시설을 야간 개방해 더욱 특별한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고즈넉한 동국사의 전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대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이 또한 일본 대나무를 심어둔 것이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먼 이국의 댓잎소리의 정취, 동국사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는 에도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옛 일본의 불교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치솟은 처마에서부터 한옥과는 다른 생김새를 보인다. 한옥이 소나무로 짓는 것과 달리 삼나무로 지어졌으며, 한옥 기와와 다르게 얇고 가벼운 일본식 기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덕순 문화관광해설사는 “일본은 정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원수도 함께 들여와 대나무 숲까지 조성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석과 키가 작은 관목, 꽃들을 조형적으로 배치한 일본식 정원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신흥동 일본식가옥과 사가와 가옥을 둘러보길 추천했다.

크게 난 창 너머로 정원의 사계절을 감상하는 신흥동 일본식가옥 
신흥동 일본식가옥은 과거 지어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의의가 높은 건물이다. 신흥동 일본식가옥이 위치한 월명동은 과거 부유층들의 거주 지역으로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케이샤브로의 주택이었던 신흥동 일본식가옥의 규모와 정원의 크기가 그 명성을 짐작케 한다. 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 양식을 띄고 있는 2층 목조 주택으로 정원뿐 아니라 지붕, 외벽 마감, 내부 모두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두꺼운 철문과 정갈한 정원이 대비되는 사가와 가옥
군산에서 일본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전당포로 운영되었던 ‘사가와 가옥’이다. 일본의 금고회사인 ‘사가와’의 금고가 집 안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2층이 전부 금고로 사용되어 집안 내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외부 2층 창문 모두 두꺼운 철문이 덧대어져 있다. 

정원이 크고 아름답지만 사람이 살지 않아 구석구석 손길이 닿지 않은 신흥동 일본식가옥과 달리 사가와 가옥의 정원은 현재 부부가 살며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소담하고 정갈한 정원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사가와 커피’에서 바라다볼 수 있는 사가와 가옥의 정원은 여름이면 나팔꽃이 가득 핀다. 일본의 여름을 대표하는 나팔꽃이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 핀 것을 보고 있으면 일본식 정원의 아름다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아름드리 나무와 소담스럽게 피어난 꽃들이 운치 있는 정원을 이루고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촘촘하게 배치되어 마치 오브제를 감상하는 듯한 사가와 가옥. 사진 / 김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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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가운데에는 신을 모시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그 옆으로 사가와 금고를 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뼈아픈 군산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
군산은 뼈아픈 역사를 지녔지만 그 아픔을 숨기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꺼이 감싸안는다. 군산 근대거리의 문화재들을 보면 입구마다 태극기가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태극기를 잡아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도 보인다. 어쩌면 군산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이것이 아닐까? 역사는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아니며 창피해야 할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군산은 아픈 역사를 이제 ‘제 것’으로 만들어 우리를 손짓한다. 

군산의 근대거리가 아픈 문화 잔재를 이용한 관광지일 뿐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군산의 역사 한 켠에는 ‘항쟁’의 역사가 빛과 그림자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나흘 뒤인 3월 5일, 전라북도 지역 최초로 3·5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도시였다. 

군산 항쟁관에서는 이러한 군산의 슬픔과 고통의 역사를 소개한다. 특히 2층은 1인 감옥과 각종 고문대가 전시되어 있어 서대문 형무소를 떠올리게 한다. 한쪽에는 유관순을 비롯한 열사들의 얼굴 탁본을 뜰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시간이 멈춘 도시가 아닌 오래된 미래의 도시
누군가는 군산을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군산 근대거리의 풍경은 문화유적들뿐 아니라 카페, 편의점, 음식점 등 대부분의 건물들에 일제식 흔적이 남아 있다. 오래된 건물들은 세월이 흘렀어도 유지·보수·증축한 것이라 고스란히 시간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멈춰 있다 단언할 수는 없다. 군산 야행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상상력의 작업임과 동시에 오늘과 내일의 지표로써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며 ‘오래된 미래’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일제 시대의 건축물을 활용해 일본식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고우당. 사진 / 김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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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당 바로 인근에 위치한 항쟁관.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초원사진관. 사진 / 김샛별 기자

이성당 빵에 담긴 근대거리의 기억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의 인기제품은 단팥빵(앙금빵)으로 나오는 시간에는 건물을 돌아 줄이 생길 정도로 순식간에 빵이 동난다. 그런데 단팥빵의 유래를 떠올리면, 이성당 역시 군산 근대거리의 기억조각 중 하나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어로는 안판(あんパン)이라 불리는 단팥빵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1920년에 문을 연 이성당은 원래 ‘이즈모야’라는 이름의 일본인이 25년 동안 운영하다 해방 직후 ‘이 씨’ 성을 가진 이가 인수하면서 오늘날의 이성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 이성당의 단팥빵에는 군산의 역사가 고스란이 녹아 있는 셈이다. 군산 야행 기간 동안 <군산 맛의 거리 투어> 프로그램과 <먹거리 체험 코너> 등을 통해 이성당 빵을 시식하고 먹을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전국 3대 빵집 중 하나인 군산 이성당. 사진 / 김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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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마다 다락방이 있는 군산 나비잠 게스트하우스. 조식으로 이성당 빵을 맛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근대거리 내 다양한 정보와 맛집 추천을 받을 수 있으며 500원만 내면 물품을 보관해준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잠자리 걱정 뚝! 각양각색 매력의 게스트하우스 
군산을 특별한 매력을 경험하려면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한다. 게스트하우스라고 해서 모두 도미토리만 있는 게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방 안에 화장실까지 있는 독립된 형태의 방들이 있기 때문이다. 근대거리에 알맞게 군산의 게스트하우스들은 다다미방이 있거나 일본 가옥의 특징인 다락방이 있는 등 다른 지역의 여느 게스트하우스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방학 기간은 내일로를 여행하는 청춘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다. 그 중에서도 기자가 머문 ‘나비잠’은 방마다 다락방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식으로 이성당 빵을 챙겨주는 것은 덤이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6년 8월호 [문화재 야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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