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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구촌기행] 전기, 수돗물, 전화가 없는 원시 마을, 바이칼호-알혼 섬
[지구촌기행] 전기, 수돗물, 전화가 없는 원시 마을, 바이칼호-알혼 섬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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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알혼 섬의 바다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의 풍경.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러시아]  내 집 나서면 고생이다! 는 말이 있다. 사회주의 나라나 세계적인 오지를 여행할 때는 더더욱 실감나는 말이다. 전기와 전화, 수돗물이 없는 곳 - 시베리아 바이칼 호에 있는 알혼 섬. 몽골리안의 한 줄기가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자유와 느림과 자연을 체험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은 크게 세 갈래다. 여행객들은 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호수의 남부 도시인 슬루잔카로 가는 남부 길과,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중부 도시 라스비얀카로 가는 길을 이용한다. 호텔 마당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오르는데 낯이 익은 로고가 시선을 당긴다. 아시아 자동차! 아마 기아 자동차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중고 버스가 한국 여행객을 기다리다니. 낡았지만 반가움에 몸을 맡긴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달리는데 한국 유치원이나 교회 이름표를 단 버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수유리 가는 시내버스도 있고! 이르쿠츠크에서 알혼 섬으로 가는 길은 그런 대로 잘 닦여 있다. 대부분 포장도로이고, 도로 폭이 왕복 2차선이지만 갓길이 넉넉한 편이다.

알혼 섬에서 섬의 전통문화를 취재 중인 프랑스 방송사 카메라맨.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에서 섬의 전통문화를 취재 중인 프랑스 방송사 카메라맨.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도로 주변 경관은 수려하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르쿠츠크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자작나무 숲길을 한 시간 여 달린다.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기자가 취재 여행을 간 때는 여름의 끝물, 야생화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잃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하늘 색깔이 경이롭다. 파란 하늘이니, 옥빛 하늘이니 하고 서둘러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까마득히 먼 하늘에 아스라이 떠 있는 한 점 구름이 눈부시다. 시베리아의 늦여름 햇살은 따갑다. 모자나 선글라스를 준비하지 않으면 직사광선에 피부를 그을리게 된다.

알혼 섬에는 민둥산이나 초지가 많다. 자동차들은 길과 상관 없이 초지로 돌아다닌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에는 민둥산이나 초지가 많다. 자동차들은 길과 상관 없이 초지로 돌아다닌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 주변 유람선에서 본 바이칼 호의 일몰.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 주변 유람선에서 본 바이칼 호의 일몰.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베리아 브리야트 공화국의 작은 마을에서 배를 타야 한다. 배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철선이다. 배를 타는 데 비용이 없는데, 때문에 예매도 없는 선착순이다. 부두에는 작은 포장마차와 간이 공중변소가 있다.

포장마차에서는 물과 음료, 바이칼 호에서 잡았다는 생선, 훈제 된 ‘오물’을 판다. 오물은 처음 맛보기에는 은근한 맛이 있다. 비린내도 나지 않고, 맥주 안주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중 변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곳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이 미리 준비하고 각오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공중변소는 뒤쪽에 거대한 통풍구가 있는데 소변을 누면 통풍구를 통과한 거센 바람 때문에 오줌이 거꾸로 날린다. 남자들이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설 정도면 여자들은 어느 정도였을지? 가능한 한 참고, 휴지를 충분히 준비해야 할 터. 배를 타고 섬에 오르면 다시 버스를 탄다. 알혼 섬은 작은 섬이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야 여행객들이 쉴 수 있는 마을이 나오고 다시 한 시간을 더 가야 섬의 끝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섬에도 시베리아에서 보았던 구릉과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다. 산 꼭대기에 드문드문 서 있는 소나무나 가문비나무들은 하나같이 한 폭의 그림이다.

봉고 차를 운전해준 현지 가이드들이 장작불로 점심을 준비한 바케스와 냄비.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봉고 차를 운전해준 현지 가이드들이 장작불로 점심을 준비한 바케스와 냄비.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 여행객들은 섬 고나광 중 야외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 여행객들은 섬 고나광 중 야외에서 점심을 먹어야 한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객들이 주로 머물게 되는 마을은 70년대 강원도 산골 마을을 연상케 하는 판잣집과 너와지붕이 있는 동네이다. 집집마다 울타리도 판자나 나무토막으로 되어 있다. 여행사에서는 통나무집에서 숙박할 거라고 했다. 가이드 역시 통나무집으로 간다며 앞장을 선다. 골목길을 통과하자 언덕 위에, 바이칼 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통나무집이 띄엄띄엄 10여 채 자리를 잡고 있다. 통나무집.

주인의 안내에 따라 열쇠를 받아들고 정해진 통나무집에 다다른 여행객은 몸을 움츠린다. 강원도에 있는 최신식 통나무집이나 펜션을 떠올린 여행객은 낭패감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침대는 각목으로 만든 작은 평상 같다. 비좁고, 추레하다. 냉장고나 실내 화장실은 언감생심이다. 이들의 생활 문화를 모르고선 이해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다.

알혼 섬에 있는 토나무집. 집의 규모에 따라 싱글 침대 2개나 더블 침대가 있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알혼 섬에 있는 토나무집. 집의 규모에 따라 싱글 침대 2개나 더블 침대가 있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통나무 집 앞마당에 있는 공중 변소.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통나무 집 앞마당에 있는 공중 변소.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긴 여정에서 여행객이 꼭 들러야 할 곳이 화장실이다. 여러 채의 통나무집 마당 한켠에 판자로 지은 변소간(혹은 측간)이 셋 있다. 물론 재래식이다. 다행히 휴지는 걸려 있다.  

통나무집(민박집이 옳지만)에서 준비해준 저녁 식사는 현지식이다. 보리빵과 치즈, 잼, 야채 사라다, 삶은 감자, 우유. 한국 여행객들이 왔다고 밥을 삶아서 큰 접시에 퍼놨는데 물이 불어 있는 식은 밥이다. 주인에게 물으니 주인이 쌀밥을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논도 없고, 쌀농사를 짓지 않으니까. 쌀밥은 한번도 못 먹어본 사람이 지어준 쌀밥이란다.

날마다 샤워를 해야 편히 잠을 자는 사람들은 샤워가 얼마나 사치스런 일인지 깨닫는다. 마음대로 머리를 감을 수도 없다. 지하수가 없는 동네 사람들이라 물을 아껴 쓰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호수에서 떠온 물을 물통에 모아 두고 한 바가지씩 떠서 쓰거나 양철 물통에 꼭지를 달아 매달아놓고 졸졸 흐르는 물을 받아 써야 한다.

집집마다 판자나 나무토막으로 울타리를 쳤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집집마다 판자나 나무토막으로 울타리를 쳤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이칼 호 주변 마을 앞에서 산딸기와 딸기를 파는 사람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이칼 호 주변 마을 앞에서 산딸기와 딸기를 파는 사람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동네 목욕탕이 있긴 하다. 가이드는 사우나라고 하지만 한국 어느 달동네를 가도 이런 작은 목욕탕은 없다. 어른 서넛이 들어가면 꽉 차는데 벽난로 장작불의 훈기를 쪼이다가 땀이 나면 바가지로 물을 끼얹고 나오는 수준이다.

유람선이 제시간에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어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직전 항구 마을에 가서 출발을 확인하고 온 후에나 유람선이 온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곳. 서너 대의 지프가 여행객들을 태우고 가다 숲길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차를 돌려 앞차의 바퀴 자국을 찾아 뒤를 쫓아가야 하는 곳.

성질 급한 사람들,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여행지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의 보폭에 발을 맞추고 생활상에 눈높이를 맞추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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