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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겨울산] 승천을 기다리는 용, 충남 계룡산
[겨울산] 승천을 기다리는 용, 충남 계룡산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2.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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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계룡산의 절경.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계룡산의 절경.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충남] 아마 계룡산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혹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계룡산에서 입산 수도하여~’로 시작되는 계룡산 도사들의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기운찬 산이다.

계룡팔경(鷄龍八景)

제1경 천황봉의 일출(日出)
제2경 삼불봉의 설화(雪花)    
제3경 연천봉의 낙조(落照)    
제4경 관음봉의 한운(閑雲)      
제5경 동학사 계곡의 신록(新綠)
제6경 갑사 계곡의 단풍(丹楓)  
제7경 은선폭포의 운무(雲霧)    
제8경 오누이탑의 명월(明月)
 

마이산에서 뻗어 올라온 금남정맥은 대둔산과 도솔산을 거쳐 계룡산을 지나 용을 낚았다는 백마강 낙화암 부근 조룡대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계룡산 산행은 능선타기가 일품이다. 주봉인 천황봉(845.1m)에서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 등 열 댓개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들은 산객들의 단골코스.

관음봉에서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릉.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관음봉에서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릉.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쉽게도 한국통신 중계탑이 있는 천황봉은 공사 중이라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겨울 산행으로 꼽은 길은 관음봉과 삼불봉 사이를 잇는 자연성릉. 1.8km 정도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길을 가는 내내 계룡산 능선들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고 일정해 마치 자연이 만든 성곽과 같다 해서 자연성릉이라 이름 붙은 능선이다. 어른 걸음으로 5시간  반정도  걸리는 코스. 삼불봉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하지만 좀 긴 계단 길, 관음봉 쪽으로 올라가면 급경사를 타고 오르는 길이다.

계룡산 품안에 자리잡은 동학사.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계룡산 품안에 자리잡은 동학사.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대개는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탄다고 한다. 동학사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거꾸로 관음봉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동학사 계곡을 타고 오르다보면 중턱에서은선폭포를 만나게 된다. 신선들이 놀았다는 폭포인데 겨울철이라 물이 없으니 기다란 암벽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은선폭포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맞은편이 쌀개봉에서 내려온 능선. 쌀개봉이란 지명이 재미있다. 옛날 쌀을 찧는 방아를 받히는 V자 홈을 쌀개라고 했다는데 능선이 내려오다 움푹 들어갔다 나온 모양이 그렇게 보여 붙인 이름이다.

세 부처님이 서있는 듯하다는 삼봉불.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세 부처님이 서있는 듯하다는 삼봉불.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은선폭포를 지나면 갈지자 경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바위나 돌들이 불안정하게 쌓여 있어 자칫하면 굴러 내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너덜바위지역’이라는 푯말이 있다. 눈에 덮여 길이 확실치 않은 겨울 산행에서 특히 주의해야할 코스이다.

관음봉에 오르면 팔각정이 있다. 팔각정을 중심으로 능선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쌀개봉을 거쳐 주봉으로 가는 능선, 연천봉으로 가는 능선, 그리고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릉이다. 정감록에 이곳이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해서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땅이라 했고 격암유록 등 옛 예언서에는 언젠가 새 세상을 여는 성인이 나타난다고 쓰여 있다고 한다.

관음봉. 계룡산 팔경 가운데 이 곳에 걸린 구름이 제 4경으로 꼽힌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관음봉. 계룡산 팔경 가운데 이 곳에 걸린 구름이 제 4경으로 꼽힌다.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 때문에 수많은 ‘계룡산 도사’들이 입산수도하는 통에 한때 무속신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는데 지난 80년대 중반에 나라에서 종교정화운동을 벌여 모두 정리가 됐다. 관음봉에서 뻗어 내려간 능선은 용의 등줄기처럼 꿈틀거리며 멀리 삼불봉까지 이어진다.

험한 바위 등반길은 대부분 철계단이 설치되어있고 군데군데 밧줄이 있긴 하지만 한겨울 눈이 쌓이면 긴장을 해야 할 길이다. 특히 눈이 얼어붙은 철계단은 정말 미끄러웠는데 자칫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눈쌓인 철계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눈쌓인 철계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 2004년 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겨울이면 119만 고생 혀.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이가 어디 한둘인감?” 계룡산 입구 식당 주인아저씨 말에 따르면 쉽게 생각하고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119에 업혀 내려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눈이 많이 쌓이면 입산통제를 하므로 등산 당일이나 하루 전에 계룡산국립공원으로 문의를 해야 헛걸음치지 않는다. 주의해서 별 탈 없이 가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열 걸음마다 한번씩 감탄이 나오는 능선이다.

산세가 닭 벼슬을 머리에 인 용과 같다는데 천황봉으로 오르는 기다란 능선과 그 능선에서 갈라져 내린 작은 능선들이 정말 용의 단단한 갈비뼈처럼 보인다. 가만 들여다보면 웅크린 용이 당장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은 기운이 뻗친다. 예전에 누군가 ‘계룡산 기운이 쇠했다’고 한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수천 년을 이어온 산천초목의 기운이 어디 가겠는가.

산을 이야기 할 때는 시절 따라 요동치는 인간의 마음으로 논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삼불봉에 이르니 계룡팔경 가운데 제 2경이라는 설화가 맞아준다. 눈을 이고서도 꿋꿋하게 서있는 푸른 솔들이 삼불봉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천황봉은 삼불봉에서 봐야 제 모습이 나온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싶다. 계룡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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