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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오지마을을 찾아서] 전북 무주 방재ㆍ벌한마을
[오지마을을 찾아서] 전북 무주 방재ㆍ벌한마을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9.2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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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벌한마을 가는 길에 돌아본 방재마을.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벌한마을 가는 길에 돌아본 방재마을.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전북] 강원도에는 빈집이 한집 건너 한집, 띄엄띄엄 있어서 그리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들이 모여 있는 무주의 방재, 벌한 마을은 바로 옆집이 비어 있으니 허전하고 애잔합디다.

빈집에 홀로 핀 접시꽃이 붉디붉습니다. 꽃은 스스로 피고 지는 일에 게으르지 않습니다. 집 떠난 사람은 꽃이 눈부시군요. 무주는 덕유산, 무주구천동, 무주리조트 등 관광지로 유명하지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도 여전히 계곡은 맑고 숲은 매미 소리로 가득합니다.

무주 나제통문을 지나서 37번 국도 구천동 방향으로 10여분 정도 가다보면 ‘구산마을’이 나옵니다. 폐교된 두길초등학교를 지나서 구산마을 유래가 써있는 표석을 지나 다리를 건넙니다. 뒤돌아보면 알알이 매달린 포도송이 뒤로 구산마을이 살포시 지붕만 내보이고 있습니다.

소정이와 백구.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정이와 백구.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방재마을 세 살 소정이
비포장 길입니다. 차 없이 다니는 저 같은 사람에게 비포장 길은 사람의 길 같아 기분이 좋지요. 산이 높으니, 길도 깊습니다. 계곡 옆 버려진 밭들에 개망초가 가득 피었습니다. 곧 마을이겠군요.

일구지 않은 밭들이 늘어납니다. 30여분 걸었을까요? 전봇대 밑에 80년대쯤 유행했을 시계며 라디오가 버려져 있습니다. 이제 버려지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겠죠. 빈집, 풀만 무성한 밭, 낡은 물건들. 흙담에 접시꽃이 수줍어하는 구석도 없이 당당하게 피었네요.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 허물어지는 집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빈집의 구멍사이로 이웃집이 보인다는 것, 시원한 마루에서 앞집을 내다보는 것과 사뭇 다르죠.

마을 입구 정자나무에는 털이 빠져나온 낡은 소파가 놓여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가자 마을 분들이 다 나와 보네요. 그래봤자 전부 9명입니다. “꽃 피는 언덕이라 해서 방재마을이여. 5백여 년 전부터 우리 엄씨들이 살았지. 예전에는 70여명 정도 살았는데 지금은 여자 3명, 남자 6명이 전부지. 우리 딸 소정이가 이 마을 마지막 아이지. 쟤도 크면 학교는 도회로 가야지.” 양봉을 하는 엄제술 씨가 담담히 마을 이야기를 해 줍니다.  

아낙들은 봄철 내내 덕유산 자락에서 산나물, 더덕, 고사리를 뜯어서 팔고, 여름에는 땡볕 나무 그늘을 찾아듭니다. 아직도 멀쩡한 건조대 건물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큰 마을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마을의 귀염둥이 소정이를 만났습니다.

벌한마을 골목에는 접시꽃이 곱게 피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벌한마을 골목에는 접시꽃이 곱게 피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몇 살?” 물으니 손가락 세 개를 꼽고는 ‘바람돌이’처럼 쏜살같이 골목으로 숨어버립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접시꽃처럼 활짝 웃지요. 소정이 친구는 털 부숭이 백구가 다입니다. 백구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소정이가 털을 잡아당겨도 순하게 웃습니다. ‘바람돌이’ 소정이가 어디를 가든 지가 엄마인양 졸졸 따라다닙니다. 바람돌이는 제가 지어준 별명입니다. 저 어렸을 때 TV 만화프로에 나왔던 주인공이 생각나더군요.

소정이네 마당에는 벌통이 있습니다. 돌아보니 집 근처에 벌통이 많이 있더군요. 벌들이 꿀들을 열심히 나르고 있으니 가을 끝에 꿀을 맛볼 수 있겠지요. 소정이 아빠 엄제술 씨는 양봉 전문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국을 다니며 양봉 기술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무주 야생화 꿀맛을 못 봐 좀 섭섭했습니다.

그 사이 친해졌다고 일행과 떨어진 제 걱정을 합니다. “언제 쫓아가나? 한참은 갔을긴데!” 할머니 한 분은 사람들이 간 길을 내다보며 “벌한마을은 부자마을이야. 차가 많아!”합니다. 간혹 계곡물 소리가 들립니다. 예전에는 물고기가 참 많았는데 몇 년 전 장마가 심해서 고기들을 싹 쓸어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래 요즘은 고기가 없다고 합니다. 몇 년이 지나야 물고기가 바글바글 할까요! 다들 떠나네요.

벌한마을 할머니의 준태찜
길이 참 좋습니다. 언덕 길이 높지가 않아서 힘들지 않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40여분 숲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니, 구천동 지류 벌한천 끄트머리에 있는 벌한마을입니다. 거칠봉(천백78m)일곱 봉우리에 싸여있다고 하는 무주의 오지마을입니다. 봉우리가 여러 개 있는데 일곱 봉우리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네요. 그냥 일곱봉우리라고 하니 그렇구나 합니다.

벌한마을은 성산 배씨 집성촌입니다. 해발 5백50m, 방재마을 보다 5명 더 살고 있군요. 이 마을에도 집 근처에 벌통이 참 많습니다. 빈집 기둥마다 벌통이 놓여있습니다. 벌통 입구까지 가까이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도 공격하지 않네요. 여섯 살 무렵에 밤나무 산에서 벌에게 쏘인 기억이 있어 벌이랑 친하지 않아서 좀 긴장했습니다. 사람과 가까이 있으니, 녀석들도 순하군요.

계곡에서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힌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계곡에서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땀을 식힌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으름 넝쿨이 나무를 휘감고 올라갑니다. 따 먹어보니 맛이 들었네요. 마을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물 한 그릇 얻어먹자고 따라들어 갔는데 밥까지 얻어먹었습니다. 민물 생선 준태를 고추장 넣고 졸여 주셨는데 거참! 맛나데요. 할머니 텃밭에서 깻잎이며 상추를 뽑아다 쌈도 싸 먹었습니다. 마을은 텅텅 비어도 사람 마음은 따뜻한 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쓰지 않는 옛 물건들이 세월의 흔적처럼 놓여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쓰지 않는 옛 물건들이 세월의 흔적처럼 놓여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일곱 봉우리에 싸여있어도 겨울이 얼마나 추웠었는지 방 문 앞을 비닐로 다 막았네요. 무주 참 눈이 많이 오는 곳이지요. 돌담길, 흙담길, 그리고 농기구들, 버려진 집 찬장 안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릇들. 무주이며 무주가 아닌 곳, 그래 가장 무주다운 곳. 방재, 벌한마을입니다.

두 개의 마을을 지나는데 삶이 길 위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립스틱을 칠합니다. 접시꽃 보다 붉게…. 왜 떠나는 자는 늘 화장을 하는지, 두껍게 칠해도 서러움을 감추지 못 합니다.  

Tip.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 대전·전주간 고속도로 -> 무주 읍내 -> 30번 국도 나제통문 -> 나제통문 삼거리지나 37번 국도 구천동 방향 10여분 거리. ‘구산마을’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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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소정 2022-07-13 22:25:50
제 어렸을때 사진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