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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산악회 따라가기] 중학교 동창생들이 똘똘 뭉친 서울 광희산악회
[산악회 따라가기] 중학교 동창생들이 똘똘 뭉친 서울 광희산악회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1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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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광희산악회 회원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광희산악회 회원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홍천] 중학교 동창생들로 구성된 산악회? 몇 명이나 오겠는가라고 미심쩍어 했는데 ‘뜨악-.’ 입이 절로 벌어졌다. 버스 4대를 꽉 채워 오더니 수도 없이 줄줄이 내린다. 아내와 꼬마들까지 모두 1백64명. 홍천 가리산자연휴양림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조심조심.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조심조심.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노라니 졸업생과 재학생이 울면서 부르던 졸업식 노래 3절이 절로 떠오른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배. 그래도 얼굴 표정만은 이십 년, 삼십 년 전 장난꾸러기로 돌아간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상 속에 무디어진 표정들이 금세 되살아난다.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더니 여기도 그런가보다. 처음 왔다는 동문도 목에 건 ‘12기’ ‘16기’ 하는 표찰들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선배님”, “아우님”하며 말문이 터진다. 위아래 기수를 살펴보니 차이가 무려 삼십년 가까이 난다.

1937년에 서울 응봉동에서 경성공업전수학교로 시작하였는데 51년 6.25전란의 와중에 광희중학교로 바뀌고 기수로 53회까지 배출되었단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졸업한 선배가 선생님이 되어 후배를 가르친 경우도 있어 선후배이자 사제지간이 된 복잡한(?) 인연도 상당수란다. 그 유명한 홍명보 선수도 이 학교 출신이다.

두개의 봉우리가 노적가리를 쌓은 듯 하다해서 가리산.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두개의 봉우리가 노적가리를 쌓은 듯 하다해서 가리산.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산은 그러나 나이도 선후배도 가리지 않는다. 평소 산을 많이 탄 예순 넘은 선배는 앞에서 펄펄 나는데 간밤에 늦게까지 술자리를 한 젊은(?) 후배는 헉헉거리며 뒤로 처진다. 선두는 잠깐 사이에 중턱까지 왔는데 멀리 뒤에서는 천천히 가라고 아우성이다.

“실은 오늘 특별히 많이 모였죠. 산악회 1주년 기념 등반이거든요. 인원이 많은데다 처음 나온 사람도 많으니 제대로 된 산행은 아무래도 힘들겠죠?” 아무래도 평소 보던 산악회 같지 않은 모습에 의아해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한마디 ‘이해를 돕기 위해’ 거든다. 확실히 그랬다.  

“그 친구 오늘 꼭 온다더니….” “선배님도 형수님도 정말 산을 잘 타시네.” “단풍 참 좋다!” 오랜만에 보는 선후배, 동기들과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 동무 걱정, 아들 딸 이야기를 나누며 말 그대로 산보하듯 산으로 오른다.

산행을 마치고 계곡에서 점심과 정담을 나누는 회원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산행을 마치고 계곡에서 점심과 정담을 나누는 회원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무르익어가는 가을, 맑은 햇볕과 적당한 그늘,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며 오랜 지기들과 부부동반으로, 또는 자녀의 손을 잡고 오르는 산. 이 이상 더 바랄게 있을까? 가리산 정상은 두개의 봉우리가 노적가리처럼 솟아 있다. 선두가 봉우리 밑에 당도했을 때 잠시 논란이 빚어졌다. ‘오늘은 산행도 산행이지만 오후에 있을 1주년 기념행사도 중요하니 그 자리에서 끊고 후미를 기다리라’는 무전이 날아왔다.

선두 그룹에서도 의견이 갈려 여기까지 왔으니 정상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의견과 그렇게 하면 다 따라가려 할 텐데 가파른 암벽 구간을 이 많은 인원이 올라갔다오면 다음 행사는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이 오갔다.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났는데 점심시간까지 산 아래 행사장소로 올 수 있는, 선두 그룹에서 자신 있는 이만 다녀오기로 했다.  

“아 참! 깃발, 깃발은 가야지!” 역시 산악회였다. ‘광희산악회’라 써진 큼직한 푸른 깃발은 대표로 정상까지 가야 한다는 소리다. 무거운 깃발을 들고 땀 뻘뻘 흘리며 올라온 기수는 선배들의 말에 군말 없이 정상으로 향했다. ‘깃발 꽂으면 끝난 이야기’란 농담이 생각나 혼자 웃으며 따라갔다.

14명의 정상원정대.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14명의 정상원정대.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렇게 해서 14명의 ‘정상원정대’는 군데군데 암벽을 타고 정상까지 올랐다. 가리산 정상 전망이 중부 내륙에서 제일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사방으로 산들이 겹겹이 둘렀는데 마치 커다란 연꽃 한가운데 서 있는 듯 했다.

멀리 설악산 대청봉이 보이고 그 밑으로 오대산 황병산이 보였다. 다른 한쪽은 멀리 소양댐과 경기 명산 명지산이 내다보인다. “아니 왜 여기를 못 올라오게 잡았지? 이거 못 봤으면 평생 후회할 뻔 했네” “그러게 말이야. 산은 정상을 밟아야 탔다고 하는 거 아냐?” 정상원정대는 ‘후회 없는 선택’에 대해 만족을 하며 정상과 제2봉인 북봉을 거쳐 돌아내려왔다.

가리산은 자연휴양림에서 오른편 주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4~5시간 걸리는 산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그 코스를 탄다. 광희산악회는 좌측으로 난 비교적 짧은 하산 코스를 택해 왕복산행을 했기에 10시 반이라는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늦은 점심에 맞춰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오후 시간은 한바탕 잔칫집 분위기였다.

중부 제일의 전망을 자랑하고 있는 가리산 정상에서.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중부 제일의 전망을 자랑하고 있는 가리산 정상에서.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동안 산행으로 친해진 부인들끼리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부인들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이제는 거의 반 동문이나 마찬가지인 분위기. 이날 음식 준비도 총무를 비롯한 임원진 부인들의 수고로 이뤄진 것이다. 남편이 하니까 단순히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닌 것이 이날 ‘광희산악 여성지회’까지 설립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중학교 동창들로 구성된 산악회는 처음 보셨을 거예요. 부부 동반으로 매월 첫째 주 일요일마다 산행을 하는데 6~70명에서 많게는 1백 명 정도 모입니다.” 총동창회홈페이지에 있는 산악회 게시판을 보면 이 산악회의 분위기가 어떤지 금방 알 수 있다. 산행을 다녀오면 곧바로 사진이 올라오고 누가 수고했느니, 그날 어떤 일들이 있었느니 하는 후기들이 오른다.

1주년 기념 산행이라 인원이 많았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1주년 기념 산행이라 인원이 많았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산악회장을 맡고 있는 10기 심재완 회장은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됐다”고 한다. 10기들의 모임인 ‘일공산악회’ 등으로 5기, 12기, 16기 등 동기들끼리 산행을 하다가 지난해 10월 모교의 이름을 딴 ‘광희산악회’라는 큰 틀 안으로,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합류하게 됐다는 것.

처음에는 모두 23명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이런 모임 있었으면 진작 좀 알려주지” 하면서 한 사람 두 사람씩 모여들어 이제는 버스 4대로도 부족하게 됐다. 졸업생이 3만 명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모른다. 혹 누가 아는가. 이 기사를 보고 또 찾아갈지. 광희중학교 졸업생 여러분! 동문들이 산에서 기다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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