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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1월호
[정읍 문화 답사기] 기다림이 쌓여 진혼곡으로 흐르는 곳, 정읍사 공원과 동학혁명 유적지
[정읍 문화 답사기] 기다림이 쌓여 진혼곡으로 흐르는 곳, 정읍사 공원과 동학혁명 유적지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4.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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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동학황토현전적지 전경.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황토현 전적지 전경.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정읍] 정읍엔 내장산 단풍만 붉게 지천인 줄 알았다. 단풍이 스러진 나머지 계절엔 뭐가 남아 있을까. 정읍의 야트막한 구릉에는 무덤이 참 많았다. 저 넋들이 내장산을 그리도 붉게 물들이나 보다.

정읍사 공원에서 핸드폰을 확인하다
노래 제목이 이름이 된 도시 정읍. 이른 아침 정읍사 공원을 찾았다. 입구에 따로 표지판이 없어 찾는 데 애를 좀 먹었다. 월드컵공원엔 월드컵경기장이 있고 일산 호수 공원엔 호수가 있다. 정읍사 공원엔 아무 것도 없다. 내장산 자락을 올라가면 정읍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망부석(望夫石) 하나와 정읍사 노래비가 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푸른 하늘 아래 망부석이 정읍 시내를 멀리 굽어보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푸른 하늘 아래 망부석이 정읍 시내를 멀리 굽어보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정읍사(井邑詞)는 백제 노래다.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백제가요다. 해석이야 다양하겠지만, 대략 풀자면 이렇다.

달님이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어긔야 멀리멀리 비춰주소서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저자거리에 가 계신가요
어긔야 진 데를 디디실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 곳에나 놓으십시오
어긔야 내 가는 데 저물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 노래비의 일부.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정읍사 노래비의 일부.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행상 나간 남편의 귀가길이 어두울까, 오다가 나쁜 곳으로 빠지지는 않을까, 짐이 무거우면 내려놓고 그냥 오시지….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됐다는 1천 3백년 전 백제여인의 순애보다. 기다림 때문에 죽어 돌이 되었다면 그 망부석은 사랑에 대한 한 원형(原型)이다.

그 원형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공원 높은 곳에 모시고 되새김질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읍 사람들이다. ‘죽도록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절망과 희망이라는 단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거기에 더해, 스쳐가는 너의 일상 역시 그렇게 사무치는 그리움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돼 버린 백제 여인을 제사지내는 망부사.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돼 버린 백제 여인을 제사지내는 망부사.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사는 이유가 돼야 할 그리움에 삶을 포기했다는 것은 또한 슬프다. 정읍 사람들이 망부석 옆에 정읍사 노래비를 세웠고 망부사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면, 그건 기리기 위해서라기보단 달래기 위해서이지 싶다. 망부석 옆으로 예술회관과 정읍사 국악원, 그리고 시립도서관과 전북과학대학이 있다.

정읍 문화의 중심이라 할 만한 시설이 정읍사 공원에 모인 것 같다. 정읍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으려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법도 하다. 공원 뒤쪽으로 산책로가 나 있어 시내를 조망하기에도 좋다. 정읍사 공원 입구에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린다. 또 다른 진혼의 향불이 오르는 동학혁명 전적지로 가기 위해서다. 혹시 가족이 건 전화를 못 받지는 않았나 내내 핸드폰을 확인하고 서있다.

황토현 전적지의 입구, 보국문.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황토현 전적지의 입구, 보국문.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학의 불길, 향불로 남다
동학혁명의 발상지답게 정읍엔 동학 유적지가 참 많다. 학정의 상징이었던 고부관아터와 만석보 유지비, 동학혁명 모의 장소, 농민봉기가 처음 시작된 말목장터, 관군과의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황토현 전적지,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 4장두의 생가와 터, 그 외 각종 기념탑 등.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도가 오면 행복해 하겠다.

새 세상을 기다리는 함성이 드높았을 황토현 전적지를 찾았다. 황토현 전적지는 곡창지대에 있다. 평탄지에 자리한 넓은 사당처럼 동학농민혁명 기념탑과 전봉준 동상, 그리고 기념관과 전시관, 교육관이 모여 있다. 동학혁명에 관련된 유물과 건립물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황토 고개는 갑오년(1894년) 5월 11일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치룬 첫 전투에서 대승해 농민군의 사기를 드높인 곳이다. 당시 신식무기를 갖춘 2천 3백여 명의 관군과 보부상 군이 고부마을로 몰려왔다. 이곳 지형에 익숙한 농민군은 이들을 황토현으로 유인했다.

전봉준 묘. 동학봉기의 발상지 배들평야를 바라보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전봉준 묘. 동학봉기의 발상지 배들평야를 바라보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 관군이 동학농민군의 진지를 급습한 순간 매복한 농민군이 일시에 공격했다. 안개가 걷히자 피냄새가 진동했다 한다. 고부에서 농민 봉기로 시작한 동학혁명은 황토현 전투의 승리로 고창, 함평, 영광을 점령하고 전주성까지 함락했다.

그 후 일본에 대항해 2차 봉기를 일으키지만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무참히 패하고 만다. 피아를 가늠하기 힘든 황토현의 안개 속에서 피묻은 낫과 괭이를 움켜쥐고 농민들은 어디로 가려 했을까. 우금치 전투에서 꽃잎처럼 진 목숨들은 또 무엇을 바랐을까.

농민군의 넋을 기리는 구민사에 향불이 오르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농민군의 넋을 기리는 구민사에 향불이 오르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황토현 마루의 기념탑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이라 적혀 있다. 폭정을 없애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도와 편안케 한다. 신분을 철폐하고 외세를 물리친다. 역사는 폭정에 시달린 농민의 승리와 죽음을 그렇게 편들었다. 구민사 사당에는 죽어간 넋을 위로하는 향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황토현 전적지 맞은편 동학농민혁명전시관. 지난해 5월 11일 개관했다. 농민 봉기 발발일도 아니고,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날도 아닌 황토현 전투 승전일에 개관한 것이다. 매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제도 이날 열린다. 정읍 사람들이 황토현 전투의 승리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읍 말목장터에서의 동학농민군 봉기 장면.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정읍 말목장터에서의 동학농민군 봉기 장면.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학눈의 봉기 결의를 담은 사발통문. '고부성 격파와 탐관오리 제거, 그리고 전주감영 함락과 서울 직항'이라고 적혀 있다.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게 전봉준과 동학 간부 20여 명이 사발모양으로 빙 둘러가며 서명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학눈의 봉기 결의를 담은 사발통문. '고부성 격파와 탐관오리 제거, 그리고 전주감영 함락과 서울 직항'이라고 적혀 있다.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게 전봉준과 동학 간부 20여 명이 사발모양으로 빙 둘러가며 서명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전통초가형으로 지어진 동학농민혁명 전시관. 알차게 꾸며져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전통초가형으로 지어진 동학농민혁명 전시관. 알차게 꾸며져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전시된 농민군 무기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태’다. 총알을 막기 위해 대나무를 원통 모양으로 엮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장태는 원래 닭장 울타리로 쓰인 것이라고 한다. 닭장 울타리를 뽑아 들고 전장에 나선 농민군. 그들의 원한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들이 기다린 세상은 얼마나 절실했는지.

최근에 지은 전시관답게 시설이 깔끔하고 풍부한 유물을 갖추고 있다. 유물과 역사를 보여 주는 방식 또한 이채롭고 재미있다. 역사 전시관이야 민숭민숭하겠거니 지레짐작으로 지나치지 않기를. 전시관도 꾸미면 이렇게 좋구나 싶다. 아이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읍사문화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제는 정읍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다. 정읍사 문화제는 10월 중순에, 동학농민혁명기념제는 5월 11일을 전후해 열린다.

Info 가는 길
ㆍ정읍사 공원
대중교통 : 강남터미널 혹은 동서울터미널 -> 정읍 공용버스터미널 -> 서당촌 행 시내버스 (10분 소요)
자가용 : 호남 고속도로 정읍 IC -> 정읍시내 -> 정인 대학 앞 -> 정읍사 공원
ㆍ황토현 전적지
대중교통 : 정읍 공용버스터미널 -> 황토현 전적지 행 버스(124, 125번)
자가용 : 호남 고속국도 정읍 IC -> 정읍시청 -> 동초교 -> 덕천사거리 -> 황토현

Tip. 맛있는 먹거리를 찾으려면 정읍사 공원에서 멀지 않은 내장산 쪽으로 나가 산채정식이나 비빔밥을 먹는 게 좋다. 또 섬진강 변 산내면 쪽으로 가면 민물매운탕을 잘 하는 집이 많다. 정읍사 공원이나 동학혁명 전적지 주변에는 적당한 숙박 시설이 없어, 시내로 들어오거나 내장산 숙박촌 쪽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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