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단양] “몸조리 한다고 누워 지냈으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줄기차게 찾아온 그에게 산은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암 수술 후, 5년간 2백30여 차례. 주말마다 산을 오르는 동안 그 무서운 암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백두대간을 타고 있는 그를 좇아 소백산으로 갔다.
환자를 찾아가는 길은 늘 부담스럽다. 암과 같이 큰 병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마음을 담아 위안과 격려를 한다고 해도 그 뜻이 얼마나 전해질 것인가. 상대는 환자이고 나는 아니다라는 사실관계에서 오는 왠지 모를 부담스러움.
제천 용두산으로 가는 길도 그랬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막막한 마음에 ‘암극복 200개 산등정·백두대간 기념’이라 쓰인 노란 산행리본만 만지작거렸다. 3월초 시산재가 있는 날이라 버스 10대, 4백 명이 넘는 산행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서로를 찾느라 우왕좌왕하다 경황없이 만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정작 만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눈앞에 우뚝 선 고동환씨는 암환자였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할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걱정도 팔자라더니…. 소심한 내 마음이 멋쩍어지는 순간, 눈 덮인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오고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봄이 오긴 온 거야?’
“오늘이 2백하고도 23번째 산이네요. 처음 가는 산만 세거든요….” 무슨 소린가 어리둥절했다가 잠시 후에 그 의미를 깨달았다. 한번 간 산을 두번 세번 가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한번으로 친다. 산으로만 2백23번째. 지리산 천왕봉을 다섯 번 올랐건만 한번으로 계산했다.
‘우리나라 산 많다더니 정말 많네, 주말마다 간다니 몇 년을 다닌 걸까.’ 가파른 눈길을 오르다보니 숨이 턱까지 차서 어림짐작 계산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암 수술하고 1년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고통과 좌절, 무력감에 삶을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들었지요. 그런데 평소 잘 알고 지냈던 산악연맹 신원화 고문님이 찾아오셔서는 ‘이렇게 누워 있으면 진짜 죽어, 산에도 좀 다니고 그래’하며 강권해서 근처 산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집 근처 산을 올랐는데 그마저 쉽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힘이 달려 쉬기 일쑤였다. 그래도 꾸준히 올랐다. 항상 동행을 하는 아내는 큰 힘이었다. 1년쯤 되던 99년 10월 24일. 천태산 정상에서 아내가 제의한다. ‘1백 산을 목표로 하자.’
처음엔 그렇게 어렵던 산도 갈수록 마음을 열어주었다. 서른 번째 산으로 오른 지리산 천왕봉부터 자신감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붙고 몸에 기운이 돌았다. ‘그래, 할 수 있다!’ 3년만인 2002년 10월 20일 봉화 청량산을 1백 번째로 오르고 목표는 2백, 3백으로 늘었다.
백두대간코스에도 도전하고 있다. 산행 2백 번째 산도 버리미기재에서 장성봉, 악휘봉, 주치봉, 구왕봉을 거쳐 은치재로 내려오는 백두대간 코스에서 맞았다. 차분차분 쉼 없이 오르며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놓칠세라 허겁지겁 따라가야만 했다.
‘정말 암수술 환자였을까?’ 의문까지 들 정도로 걸음이 빨랐다. 위를 온통 들어냈기에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쉽게 체력이 떨어진다는데 모든 건 단련하기 나름인 듯하다.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앞서서 기다리곤 했는데 지금은 따라가기 바빠요.” 아내 김선숙씨는 너무 빨리 다닌다고 걱정한다. 누군가 “고선생님이 몸이 가벼워서 빨리 다니시는데, 무리할까봐 부인이 천천히 따라가며 완급을 조절한다”고 귀띔을 한다.
동반자. 산행의 동반자이자 인생의 동반자. 부러울 게 없겠다. 3주 뒤 소백산 벌재에서 비로봉을 오르는 백두대간코스에서 부부를 다시 만났다. 봄내음이 한창인 책에 눈 덮인 용두산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내보내기가 마음에 걸려 한 번 더 산행을 같이하기로 했다.
햇볕 따뜻하고 바람 잔잔한, 날은 봄날인데 봉우리 북쪽 사면마다 눈이 보인다. 봄이 반쯤 왔나보다. “가끔 전화가 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리본을 보고 길을 찾았다’는 감사전화부터 ‘나도 암환자인데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등 여러 가지 내용이지요.” 사람 사는 맛이 이런 건가보다.
2백번째 산행을 기념하여 만든 노란 리본. 백두대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구간 구간마다 수를 놓듯 달아가고 있는데 가끔씩 기쁨을 더해주는 일도 생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산은 확실히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맑아진다.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는 동안 폐 가득히 밀려든 맑은 공기는 동맥을 타고 온몸 세포로 전해지고, 몸의 탁한 것들은 폐를 통해, 땀을 통해 빠져나간다. 막힐 것 없는 자연이 몸속을 들락날락하면 마음도 이에 감응하여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왜곡되고 닫혔던 마음도 열린다.
그리고보니 산에서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산이 어진 이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좀 더 젊었을 때부터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나라 산을 다 가보았을 텐데…. 산에 오르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죠.”
산은 다니면 다닐수록 얼굴이 맑아진다. 아닌 게 아니라 내년에 환갑이라고 하면 듣는 이들이 놀란단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40대가 부럽단다. 대개의 산악회에서 40세면 ‘젊디젊은 청춘’이다. 그가 속한 인천삼화산악회도 그렇다. 한 가지 특색이 더 있다면 운영자부터 부부라 그런지 남편과 아내가 손잡고 오는 쌍이 많다는 것. 혼자 왔다가도 몇 번 참가하다보면 곧 분위기를 알아채고 남편, 아내를 끌고 온다.
숫자를 맞추는 세무회계라는 직업이 병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일에서 얻은 스트레스는 술로 풀어버린다지만 그 때문에 몸은 이중 삼중으로 고생을 했다. 지금은 같은 일을 해도 오히려 병을 얻기 전보다 거뜬하다. 한달에 한번씩 받던 검사도 이제는 1년에 한번 받는다. 최근 받은 검사에서 완치되었다는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사실 오랜 산행 동료조차도 그가 암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들으면 깜짝 놀란다. “누가 그러더군요. 덤으로 산다고. 그렇죠. 그래서 더욱 귀중합니다. 목표도 생겼지요. 힘이 닿는 한 산을 오를 겁니다. 그리고 산행기를 모아 책으로 낼 생각입니다.” 몸뿐만 아니라 절망과 우울한 마음까지 씻어준, 치유의 산. 그에겐 산이 곧 의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