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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제, 어둠에서 빛으로③] 백제 사람은 성(城)을 어떻게 쌓았을까? 논산 백제 군사박물관
[백제, 어둠에서 빛으로③] 백제 사람은 성(城)을 어떻게 쌓았을까? 논산 백제 군사박물관
  • 구동관 객원기자
  • 승인 2005.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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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군사박물관 근처에 있는 탑정호의 물빛도 짙어져 간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군사박물관 근처에 있는 탑정호의 물빛도 짙어져 간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논산] 박물관으로 향하는 눈길을 봄빛 가득한 탑정호가 자꾸 빼앗아 간다. 주산지처럼 나무 몇 그루가 물속에 잠겨 있고, 햇빛이 반짝거렸다. 건물 속에서 과거의 유물을 보는 것은 부담스럽다. 자연의 푸른빛을 품는 게 내 적성에는 맞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군사박물관이 더 흥미있다. 어른보다 몇 걸음이나 앞서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황산벌과 천호산을 참 자주 지나갔었다. 대전에서 논산까지 4년쯤 출퇴근을 했으니, 2천 번 넘게 스쳐 지난 셈이다. 자주 지나는 곳에서는 감정이 무뎌 진다.

계백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에 임했던 곳이지만, 그곳을 지나며 계백을 떠올린 적이 많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줄지어 늘어선 천호산은 가끔씩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곤 했다. 특히 짙은 안개에 살짝살짝 산봉우리를 내어 보이는 모습을 보며 그 산에 전해오는 전설을 떠올리곤 했다.

왕건이 황산벌 지역에서 전투를 앞두고 꿈을 꾸었다. 서까래 셋을 힘들게 지고 가는 꿈이었다. 꿈 해몽을 잘한다는 천호산 자락의 암자를 찾았다. 그곳에서 왕이 될 것이라는 해몽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왕건은 정말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을 해몽해준 암자 주변에 고려의 나라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곳이 개태사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는 황산벌이 먼저 떠올랐다. 논산 부적면에 자리잡은 백제 군사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박물관 뒤쪽으로는 신라에 의연히 맞섰던 계백이 잠들어 있다. 계백은 5천 결사대로 신라의 5만 군사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처음엔 4차례나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투의 결과는 신라의 승리였고, 백제는 멸망하게 된다.

어쩌면 슬픈 역사의 땅으로, 그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도 아이들은 즐겁기만 하다. 사실 아이들은 박물관을 즐거워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 찾은 군사박물관에서는 계백이며 김유신, 그리고 화랑 관창까지 책에서 몇 번씩 보았던 이름들과 만날 수 있는 여행이라 그런지 이곳에 들를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부터 그리 싫은 내색이 아니었다.

백제인들이 성을 쌓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백제인들이 성을 쌓는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박물관은 백제를 비롯한 삼국시대의 전쟁을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그 중 성곽에 대한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돌로 쌓은 석성(石城)과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 등 다양한 성의 형태에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몇 곳의 성을 다녀왔던 아이들은 여행에서 만났던 성이 어떤 형태인지 떠올리고 성의 형태를 알아맞혀가며 즐거워했다. 성곽에 대한 자료 중 가장 멋진 것은 황산벌 싸움을 커다란 모형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모형 성곽에 서면 황산벌 싸움을 재현한 모형이 꾸며져 있다. 실감나는 재현이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모형 성곽에 서면 황산벌 싸움을 재현한 모형이 꾸며져 있다. 실감나는 재현이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성을 빼앗기 위해 신라군이 달려들고 있었고, 백제의 군사는 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성 위에서 그 전투를 지켜보도록 만든 모형은 워낙 생생해 마치 병사의 비명이 들리는 듯 했다.

활과 칼, 그리고 창 등 무기가 전시된 곳도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곳이다. 특히 다솜이는 다른 무기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처음 본 ‘마름쇠’만은 한참 동안 살펴보았다. 마름쇠는 현대의 지뢰와 비슷한 것이었다. 땅에 뿌려 적이 오는 것을 막는 쇠못인데, 다른 박물관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심하게 녹슬어 다 무디어진 마름쇠를 한참 동안 관찰하더니 마름쇠에 찔리면 너무 아플 것 같단다. 박물관 한쪽 영상물을 상영하는 곳에 아이들이 꽉 차 있었다. 재미있는 만화영화라도 상영하는 듯 했다. 현석이와 다솜이도 그곳으로 갔다.

삼국시대의 무기를 애니매이션으로 상영하는 영상관에는 아이들로 붐빈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삼국시대의 무기를 애니매이션으로 상영하는 영상관에는 아이들로 붐빈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전쟁 무기에 관한 설명이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많은 박물관을 다녀봤어도 아이들이 그렇게 집중해서 영상물을 보는 것은 처음 봤다. 얼마나 재미있는 화면이길래? 아이들이 쪼그려 앉은 틈에서 한참동안 그 영상물을 함께 보았다.

전쟁의 무기를 설명하는 것이니 잔인한 장면도 많다. 그런 장면을 아이들은 진지하고 재미있게 보고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어쩌면 호전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성악설이 맞는지도 모른다.

박물관 2층에는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창과 칼, 활 등이 실제 크기로 전시되어 있었다. 창끝과 칼끝이 날카로워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대비해 튼튼한 끈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창과 칼을 직접 휘둘러 볼 수는 없지만, 만져보며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성곽 전투에서 사용됐던 대형 무기들도 전시되어 있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성곽 전투에서 사용됐던 대형 무기들도 전시되어 있다. 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성을 쌓는 모형이며 성을 쌓기 위해 돌을 올리는 기중기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을 만드는 옛 건축 방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건축 모형을 짜 맞추는 체험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야외 전시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재미있는 체험거리가 많았다.

그 중 실제 크기의 모형 말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모형에 타서 사진을 한장 찍으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지만, 아이들은 커다란 말 위에서 백제의 장군이라도 된 듯 의젓한 모습으로 폼을 잡았다.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장기판과 장기알도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장기판.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장기판.2005년 6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워낙 큰 장기판과 장기알이어서 바퀴가 달려 있었다. 바퀴를 밀어 이동하며 장기를 두는 곳이었지만 아이들은 장기를 둘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대신 장기 알을 장난감 자동차처럼 타고 놀며 신이 나 있었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물빛이 고운 탑정호를 돌아보는 일은 고사하고, 군사박물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계백장군의 무덤도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다들 힘들다는데 혼자만 그곳을 고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길지 않았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혼자서 그곳에 다시 들를 일이 있었다. 더 푸르러진 탑정호도 한참동안 바라보았고, 계백 장군 무덤에서 백제 흥망성쇠의 역사도 찬찬히 되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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