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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 종주기⑯] 소백산과 대덕산, 산행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다
[백두대간 종주기⑯] 소백산과 대덕산, 산행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다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5.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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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자연 속에 경계란 없다. 이쪽 저쪽, 내편 네편 가르는 우리네 모습과는 다른 자연의 모습이 아름답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자연 속에 경계란 없다. 이쪽 저쪽, 내편 네편 가르는 우리네 모습과는 다른 자연의 모습이 아름답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충북] 백두대간 소백산을 두 번에 나눠 올랐네요. 지난 겨울에 국망봉 위쪽을 다녀왔고 이번에 아래쪽을 다녀왔지요. 겨울산과 초가을산. 산은 그대로 거기 있는데 산객의 몸과 마음은 변해 있네요.

죽령 - 연화봉 - 비로봉 - 국망봉
소백산을 오르기 위해 죽령으로 달려갔습니다. 충북 단양에서 경북 영주 풍기를 이어주는 고개. 오르는데 30리 내려가는데 30리라는 고갯길. 신라때부터 사람들이 넘나들었다는 고개이며, 조선시대까지 나라의 제사를 올렸다는 고개지요.

지난 겨울 죽령에서 남쪽 도솔봉, 묘적령, 저수재로 내려가던 날 폭설을 만나던 고개랍니다. 폭설 속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고, 많은 눈꽃 사진을 촬영했지요. 악전고투했던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이 서린 죽령 고개. 다시 찾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소백산 천문대. 오수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천체관측은 불가.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소백산 천문대. 오수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천체관측은 불가.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죽령휴게소 앞마당에 차를 세우고 왼쪽 옆으로 돌아가니 천문대 올라가는 포장길이 놓여 있습니다. 포장길은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따가운데…. 한 시간을 오르자 KT송신소 중계탑이 보입니다.

“아, 힘들어.” 모처럼 산에 따라온 친구가 숨을 몰아쉽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자주 말합니다.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지난 1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있다고! 술을 많이 마시거나 과중한 업무에 치어 지냈는지, 체력을 다지며 절제된 생활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지요.

1시간여 오르자 마침내 콘크리트 포장길이 끝나고 흙길입니다. 이렇게 좋은 흙길을 포장해야만 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만 산객들은 포장길에 침을 갈기며 아쉬워한답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저 멀리 제1연화봉이 보이고 까마득히 비로봉이 보입니다. 길가에는 억새풀이 검붉은 꽃을 피우고, 마타하리, 쑥부쟁이, 구절초, 원추리들이 늦가을 따사로운 햇볕에 속살을 자랑하고 있네요.

“그런데 산은 어디가 앞이래요?” 같이 산길을 오르던 친구가 묻습니다. 앞이라? 그러면 얼굴? “사람들이 사는 쪽이 앞쪽 아닐까?” 대답하면서도 시원치가 않습니다.

산에 오를 때면 궁금한 것들이 많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지요. 길섶에 피어 있는 꽃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들의 이름이 궁금하고, 나무들의 이름이 궁금합니다.

앞산 뒷산 이름도 궁금하고, 왼쪽 멀리 있는 산이나 오른쪽 까마득히 보이는 마을도 궁금하지요. 천문대를 지나 제2연화봉에 올랐습니다. 저 멀리 비로봉이 보입니다.

어른들의 키보다 큰 잡목들이 우거진 산행길.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어른들의 키보다 큰 잡목들이 우거진 산행길.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동행한 사람들이 묻습니다.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산행거리 1시간 20분이라는 기록을 들고 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30분!” 게으른 눈은 저 먼 길을 걷고 싶지 않거든요.

아마도 산행을 시작하는 들머리에서 오르내려야 할 산들과 하산지점을 가리켜 주면 십중팔구 고개를 흔들 겁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희방사가 나옵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기권하고 탈출하세요. 인생은 어차피 포기의 연속이니까. 한순간의 쾌감은 포기가 최고지요.”

자존심을 건드려서 약을 올리면 사람들은 주저앉지 않습니다. “빙 돌지 않고 쉽게 가는 지름길은 없어요?” 산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간혹 있지만 이미 남들이 걸어간 길보다 훨씬 험하지요. 수풀을 헤치고 가야하거나 경사가 심한 길을 오르거나 내려가야 합니다.

미국 시인 R. 프러스트는 숲에서 ‘가지 않는 길’을 걸어보라고 했지만 실제 산행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비로봉 오르는 길에 수많은 나무계단이 놓여 있고, 길옆으로 수풀이 우거졌습니다.

연화봉에서 비로봉 가는 길목, 철쭉나무가 많은 능선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 겸 비상시 대피소. 겨울에는 난방시설이 안 되어 임시대피소 역할만 할 수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연화봉에서 비로봉 가는 길목, 철쭉나무가 많은 능선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 겸 비상시 대피소. 겨울에는 난방시설이 안 되어 임시대피소 역할만 할 수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힌 산등성이, 상처 난 등뼈를 치유하는 중이랍니다. 계단 옆으로 철쭉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네요. 내년 봄에 다시 걷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비로봉 위로 구름이 내려앉고, 산길에는 시원한 바람이 부네요.

산마루에서 이마를 적시고, 등허리로 흘러내린 땀을 식히는 바람만큼 고마운 것이 어디 있을까요? 비로봉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작정인가 봅니다. 산안개가 계속 밀려오네요. 그러나 계속 걷습니다.

안개 속을! 가슴이 터질 듯한 이 쾌감을 누가 알까요? “아, 정말 좋아요. 여기 안 왔으면 이 맛을 어떻게 알아?” 그토록 힘겨워하던 친구가, 몇 번이고 중간에서 포기하려던 친구가 만면에 웃음을 흘립니다.

산행을 대신해 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요? 고통이야 대신시킬 수 있겠지만 쾌감을 어찌 대신 전할 수 있을까요.

삼봉산 정상에서 진로를 찾고 있는 산객들. 멀리 보이는 삼도봉을 올랐다가 왼쪽으로 대덕산을 올라야 한다. 모두 1,000m가 넘는 산이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삼봉산 정상에서 진로를 찾고 있는 산객들. 멀리 보이는 삼도봉을 올랐다가 왼쪽으로 대덕산을 올라야 한다. 모두 1,000m가 넘는 산이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신풍령 - 삼봉산 - 소사고개 - 삼도봉 - 대덕산
신풍령을 수령(秀嶺:빼재)이라고도 하지요. 빼재에서 수정봉을 오르는 산길은 급경사네요. 사실은 산허리를 동강 잘라내서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산마루를 타지 못하고 절개지 옆 급경사길을 오르는 겁니다.

수정봉에서 삼봉산 가는 길은 잡목들이 어른들 키보다 커서 수많은 숲 터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은 길이 아니지요. 어느 산이나 태초에 길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산길을 걸으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정봉에서 삼봉산, 소사고개, 삼도봉, 대덕산, 덕산재에 이르기까지 산마루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랍니다. 정말이지 숲길을 걸으면서 생각하니 이건 경계가 아닙니다. 있지도 않은 경계선을 만들어서 전라도니 경상도니 으르렁거린 거지요.

몇몇 지각없는 정치인들과 그 추종자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경계선을 그은 겁니다. 전북과 경북과 경남이 만나는 초점산 삼도봉. “거기 전라도 양반 안녕하시오?” “그러고 보니 여기가 경상도고 거기가 전라도네. 선생도 안녕하시지요?”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대덕산 정상에 안개가 흩날리고 있다. 억새가 검붉은 꽃을 피우고,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대덕산 정상에 안개가 흩날리고 있다. 억새가 검붉은 꽃을 피우고, 야생화가 많이 피어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정상에는 작은 돌기둥이 서 있네요. 차라리 없애버리면 좋을 걸. 작고 초라해서가 아닙니다. 왜 없어도 되는 경계선을 만들어서 억지로 기념비를 세우고, 네편 내편 편가름을 하고, 갈등이니 통합이니 해서 시끄럽게 하는 것인지….

삼도봉을 거쳐 대덕산을 오릅니다. 정상에는 억새들이 소슬바람을 맞이하며 사각사각 서로 살을 비벼대고 있습니다. 참으로 정겨운 소리입니다. “한 잔 하세요.” 정상에 앉아 김천땅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바람처럼 다가와 술잔을 권합니다.

위스키 한 모금이 허기진 속을 시원스레 흘러내리는군요. 정상주를 한 잔 마시고 하산합니다. 산에 오를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정상은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내가 원한다고, 풍광에 취해서, 비켜달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마냥 내 자리인 양 눌러 앉아 있을 수 없는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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