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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소문난 먹거리촌⑤] 허한 몸 보신해 주는 민물의 용, 남원 추어탕 거리
[소문난 먹거리촌⑤] 허한 몸 보신해 주는 민물의 용, 남원 추어탕 거리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2.08.19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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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미꾸리로 맛을 낸 추어탕.
제철 미꾸리로 맛을 낸 추어탕.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남원] 추어는 양반가 안방마님이 만들던 서방님 야식으로, 고된 농사일로 지친 서민의 새참으로 사랑받아온 전통 보약이다. 미끄덩한 몸뚱이를 지녀 다루기 쉽지 않음에도 오랜 세월 먹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이 궁금하면 망설이지 말고 전북 남원으로 가자. 입에 달고 몸에도 이로운 보약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보신의 거리’가 남원에 있다. 

추어는 입가에 수염이 나고 몸이 길쭉한 생김새 덕분에 예로부터 용에 비유되었다. 구하기 쉬운 어종이면서 영양가도 높으니 칭찬을 위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통 갖은 양념과 채소를 넣고 푹 끓인 추어탕으로 즐기는데, 지역마다 요리법이 달라 여행지마다 다른 추어탕을 맛보는 재미도 있다. 그럼에도 전북 남원이 유독 추어탕으로 유명한 이유가 있다. 

몸보신도 되고 맛도 좋은 추어탕 한 상.
몸보신도 되고 맛도 좋은 추어탕 한 상. 사진/ 여행스케치

계절을 가리지 않고 원기를 보충시켜 주는 ‘약’ 

한여름의 절절 끓는 더위나 한겨울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겪고 나서 몸이 축나면 바글바글 끓는 추어탕 한 뚝배기가 생각 난다. 추어를 통째로 갈아 넣은 걸쭉한 국물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 후루룩 먹고 나면 얼굴이 발개지고 없던 기운도 퐁퐁 샘솟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기분 탓만은 아니다.

미꾸라지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비타민 AㆍBㆍD가 풍부한 고담백 저칼로리 자양강장제다. 일찍이 추어의 효능을 연구했던 조선 의학의 선구자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추어는 맛이 달고 독이 없어 비위를 보하고 설사를 그치게 하는 약재’라고 전하고 있다. 그 말처럼 추어는 설사, 이질, 열병에 효과적이며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낮추고 소화불량 해소를 돕는다. 이처럼 몸에 이롭고 입에도 단 ‘약’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고장으로 전북 남원을 첫손에 꼽는다. 

추어탕 거리의 식당들마다 조리법이 서로 다르다.
추어탕 거리의 식당들마다 조리법이 서로 다르다. 사진/ 여행스케치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전북 남원은 몸보신하러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특히 몰린다. 바로 가을 추어를 맛보기 위해서다. 추어는 가을이 되면 몸속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해 월동 준비에 들어가는데, 이때 영양은 물론 맛도 최고라고 한다. ‘鰌魚(추어)’라는 한자 표기가 있음에도 따로이 ‘가을 추(秋)’ 자를 넣어 ‘鰍魚(추어)’라고도 표기하는 까닭도 가을에 가장 맛이 들기 때문이라는 속설도 있다. 

남원의 추어탕은 미꾸리를 주로 사용한다.
남원의 추어탕은 미꾸리를 주로 사용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미꾸리와 미꾸라지의 차이가 중요 

추어탕, 추어숙회, 추어튀김 등 요리 명칭에는 한자식 표기인 추어를 붙이지만, 식재료 명칭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미꾸라지다. 미꾸라지는 늪이나 논 혹은 농수로 등 진흙이 깔린 곳에 주로 살며, 어느 정도 더러운 물이나 산소가 부족한 환경도 잘 견디는 어종. 그래서 1970년대 이전에는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논에서 소규모로 미꾸라지를 키워 먹거나 팔아 용돈벌이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흔한 어종임에도 남원에서 추어탕이 발달한 이유는 지리적 조건과 관련이 깊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지리산 능선 아래에 위치해 농사짓기 좋은 드넓은 평야가 있고 섬진강 지류인 요천과 축천이 흐르며 추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특히 남원의 추어탕에는 미꾸라지보다 맛이 좋다는 미꾸리를 주로 쓰기 때문에 비린내가 적고 담백하며 구수하다고 한다. 

취향에 따라 부추, 고추 등을 첨가해 먹기도 한다.
취향에 따라 부추, 고추 등을 첨가해 먹기도 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미꾸리는 미꾸라지와 같은 속에 속하면서 생김새도 매우 비슷한 어종이다. 우리말 명칭도 비슷한 탓에 미꾸리가 미꾸라지의 사투리인 줄 아는 경우도 있지만 엄연히 다른 종이다. 오히려 사투리로 부르자면 미꾸리는 동구리로, 미꾸라지는 납재기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앞에서 보면 미꾸리는 몸통이 둥글고 미꾸라지는 세로로 납작 하기 때문. 좀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수염이 길면 미꾸라지, 짧으면 미꾸리라고 한다. 요즘 시중에 판매되는 추어는 대부분 중국산 양식 미꾸라지가 많다고 하는데, 예전부터 한국 논에는 우리나라 토종인 미꾸리가 더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1980~90년대 산업화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거나 오염되어 미꾸리는 점점 사라지는 위기를 맞았고, 미꾸라지가 더 흔해지는 경향이 생겼다고 한다. 

추어튀김을 곁들이면 추어탕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추어튀김을 곁들이면 추어탕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사진/ 여행스케치

그러다 일부 농촌에서 미꾸리 복원사업을 추진하게 되었고, 그 중 한 곳이 남원이었다. 남원시농업기술센터가 토종 미꾸리 치어 생산에 성공해서 양식장에 공급을 했고, 남원 추어탕 거리의 식당들이 미꾸라지보다는 미꾸리를 주로 넣고 추어탕을 만들 수 있게 되며 옛 추어탕의 맛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인공 부화시킨 치어를 겨울철에 실내에서 양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이제는 사계절 언제든 제철 미꾸리로 맛을 낸 추어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탄생한 추어허브떡갈비.
시대의 흐름에 맞춰 탄생한 추어허브떡갈비. 사진/ 여행스케치

추어탕 거리의 맛은 어느 곳이나 일품 

남원 광한루 옆 천거동 일대에 50여 곳의 추어탕집이 올망졸망 모인 추어탕 거리가 있다. 토종 미꾸리 조형물이 서있는 추어탕 삼거 리 앞뒤로 반경 100m 거리에 줄지은 음식점에서 추어탕을 끓인다. 부산에서 시집을 와 식당을 열었다고 해서 ‘부산집’, 아들 삼형제와 같은 돌림자를 쓰는 ‘현식당’ 등 간판이 제각기 다르듯 추어탕을 끓이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삶은 미꾸리를 주걱으로 눌러가며 체에 걸러내는 집도 있고, 뼈와 내장을 일일이 발라내는 집이 있는가 하면 믹서에 통째로 갈아서 체에 거르는 집도 있다. 맛을 내는 비법은 식당마다 다르지만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내공을 내세운다. 그래서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가장 맛있는 추어탕집을 가리는 토론이 벌어지곤 하는데, 각자가 자신의 단골식당을 최고라고 하니 쉽사리 결판이 날 리 없다. 

아이들도 즐겨먹을 수 있는 추어돈까스.
아이들도 즐겨먹을 수 있는 추어돈까스. 사진/ 여행스케치

그러니 남원의 추어탕 거리에서 순위를 가르는 것이 부질 있는 일일까 싶다. 저마다 다른 풍미의 추어탕을 즐기며 상황에 따라 추어숙회나 추어튀김을 곁들이는 즐거움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추어떡갈비, 추어돈까스같은 신메뉴를 개발한 곳도 있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추어탕을 맛보러 온 여행객을 위해 귀띔을 하나 하자면, 미꾸리 조형물이 걸려 있는 식당은 남원추어요리협회에 가입된 식당들이라는 것. 이곳들은 남원시농업기술센터에서 부화한 미꾸리 치어를 받아 성어로 기르는 양식장의 미꾸리를 받아쓰는 곳들이다. 재료가 좋으면 맛도 좋은 것이 당연지사. 만약 이 계절 남원에 간다면 귀여운 미꾸리의 안내를 받아 내 입맛에 딱 맞는 맛집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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