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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소문난 먹거리촌 ⑨] 놓칠 수 없는 부산음식 3대 장 중 하나, 부산 자갈치시장 곰장어거리
[소문난 먹거리촌 ⑨] 놓칠 수 없는 부산음식 3대 장 중 하나, 부산 자갈치시장 곰장어거리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3.01.20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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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부산> 주문을 받자마자 살아있는 곰장어를 덥석 잡고 손질에 들어간다. 머리를 단번에 내려치고 순식간에 껍질을 쫙 벗겨낸다. 선홍빛 살을 드러낸 곰장어는 여전히 팔딱거리지만, 이내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로 잘리고 빨간 양념으로 옷을 입으면서 점점 몸짓이 잦아든다. 이처럼 싱싱한 곰장어를 맛볼 수 있는 곳, 부산 자갈치시장이다.

사짅/ 여행스케치
맛잇게 익어가는 곰장어구이. 사진/ 여행스케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어시장인 자갈치시장. 부산 중구 남포동과 서구 충무동에 걸쳐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자갈치란 이름은 지금의 충무동 로터리까지 뻗어있던 자갈밭을 자갈처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바다를 끼고 싱싱한 횟감을 파는 도매상만 수십 곳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에 다양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장을 눈요기를 목적으로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 그리고 자갈치시장의 명물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곰장어 거리다.

사진/ 여행스케치
자갈치시장은 외국인도 찾아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사진/ 여행스케치

자갈치시장의 명물, 곰장어구이
부산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 10번 출구에서 직진해 처음 나오는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쭉 들어가면 왼편에 회센터와 건어물 가게들이 들어선 자갈치신동아시장 건물이 보인다. 신동아시장 건물을 오른쪽에 끼고 수산물종합시장이 있는 자갈치시장 건물 방향으로 가다보면 곰장어 전문점들이 형형색색의 간판을 내걸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간판마다 적혀있는 이름이 우리들에게 익숙한 ‘꼼장어’인 걸 보니 유서 깊은 전통의 맛을 유지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진하게 풍긴다.

사진/ 여행스케치
자갈치시장 건물 내에 수산물시장이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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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시장 건물 앞쪽으로 곰장어 전문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곰장어는 부산 자갈치에서의 유명세로 널리 알려지다 보니 경상도 사람들의 센 억양 그대로 발음한 ‘꼼장어’가 더 익숙하게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꼼장어도 곰장어도 표준말이 아니고, ‘먹장어’라는 낯선 이름이 실명이다. 꼼장어란 이름은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에서 붙여진 말이라고도 하고, 꼼장어라고 부르는 편이 더 고소해 보여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다.

자갈치시장에서 다양한 수산물을 만나는 것도 재미다. 사진/ 여행스케치
토막낸 곰장어는 죽었지만 신경이 살아있어 꿈틀거린다. 사진/ 여행스케치

또 하나 몰라도 그만인 상식이 있다. 곰장어도 장어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장어류가 아닌 원구류라는 사실이다. 원구류란 생물의 입 구조가 동그랗다는 얘기로, 여기에 머리뼈를 비롯한 턱뼈와 척추도 없다. 대신 ‘척삭’이라는 연골조직과 비슷한 물질을 몸에 넣고 이동하는데, 이로 인해 사전에는 원구류가 척추동물 중 가장 하등한 무리라는 불명예스러운 문구가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또 맛은 좋아서 오래 전부터 국내에서는 즐겨먹었던 생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름으로 인해 장어 취급을 받기도 해서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꼬리 부분은 장어 꼬리와 마찬가지로 정력에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물론 꼬리 얘기는 장어와 마찬가지로 신빙성이 없는 입소문에 불과하지만, 곰장어 살점이 단백질 덩어리이고 지방과 비타민A가 풍부해 영양가가 높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사진/ 여행스케치
부산 음식 3대장 중 하나로 꼽이는 곰장어구이. 사진/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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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장어는 장어로 불리고는 있지만 분류상으로는 원구류에 속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지글지글, 맛있는 곰장어구이가 만들어지는 시간
“곰장어구이 주이소~.”
자갈치시장의 캐치프레이즈인 ‘오이소, 보이소, 드시소!’를 차용해 곰장어를 주문해본다. 즉각 ‘아지매’가 수족관에서 곰장어를 꺼내 목판 옆에 탁 쏟는다. 곰장어의 몸통에서 점액질의 자기 방어 보호막이 뿜어져 나오는데, 이 점액질은 워낙 질겨서 떼어내기 힘든 탓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 먹기에도 불편할 점액질을 분비하는 기관이 껍질에 있으므로 껍질을 싹 벗겨내고 나면 이제 식재료로 쓰일 곰장어의 선홍빛 살점만 남는다.

이것을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로 탁탁 자르고 연탄에 초벌구이를 한다. 굽는 시간이 지체되면 육질이 과자처럼 딱딱해져 맛이 없고, 반대로 덜 익히면 비린내가 남으므로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선홍빛 살이 뽀얗게 익기까지 약 1~2분. 그대로 소금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비린내를 싹 잡아줄 빨간 양념으로 옷을 입혀도 좋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육질에 매콤한 맛으로 즐거움이 두 배다.

곰장어구이는 초벌구이가 아주 중요하다. 사진/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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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념으로 옷을 입으면서 곰장어의 움직임도 사라진다. 사진/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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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장어 전문점마다 조금씩 조리 스타일이 다르다. 사진/ 여행스케치

한편, 곰장어가 유명한 또 다른 곳인 부산 기장군에서는 짚불구이 방식으로 먹는다. 불을 붙인 짚에 곰장어를 산 채로 구워내는데, 순간적으로 크게 불길이 일고 금방 사그라지는 짚불의 특성을 이용해 먹을 수 없는 껍질은 태우면서 살코기들은 순간적으로 익혀 육즙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탄 껍질을 벗기는 일 외엔 별도로 손질이 필요 없고 내장까지 같이 먹는다. 죽은 곰장어를 짚불에 구우면 냄새가 너무 심해서 산 채로 굽는 것인데, 보다 직설적인 조리방식으로 인해 기장군의 짚불곰장어를 곰장어구이의 기원으로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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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이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자갈치시장. 사진/ 여행스케치
바다를 낀 자갈치시장은 풍경을 즐기기도 좋다. 사진/ 여행스케치


자갈치시장이 곰장어구이의 메카가 된 이유
곰장어거리의 시작은 6.25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둣가에 드나들던 외지객들을 상대로 생선 행상을 하던 아지매들이 한쪽에 평상을 마련해놓고 곰장어구이를 판 것이 시작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으로 피란 왔던 사람들도 맛을 보게 됐고, 이 사람들이 휴전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곰장어 맛을 잊지 못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실 그 시절 곰장어는 살점보다 껍질이 더 귀했다. 처리가 어려울 정도로 끈적한 점액을 내뿜는 껍질이지만, 의외로 무두질을 하면 꽤 괜찮은 가죽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곰장어 껍질만 모아 가방, 구두, 지갑, 모자챙 등을 제조하는 피혁 공장이 있었는데 가공기술이 좋아 수출도 했다. 그렇다보니 그 시절의 곰장어는 비교적 저렴해, 곰장어거리에도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모여드는 소박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포장마차 형식의 좌판들이 철거되면서 가게가 모두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곰장어거리라 부를 만한 가게 행렬도 약 서른 집 정도. 거리의 외관이 바뀐 것처럼 크게 달라진 점은 이제 곰장어구이를 더 이상 서민 음식이라 부르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곰장어의 개체수가 확연히 줄어들어 어획량이 날이 갈수록 감소하는데 양식 방법도 없어 가격이 몇 배나 올라버렸다.

옛날에는 서민음식이었지만 이제는 비싼 돈 주고 먹는 음식이 되었다. 사진/ 여행스케치

어른들의 가벼운 술안주, 학생들의 간단한 간식거리로 이용됐던 곰장어구이는 이제 추억 속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오랜만에 관광 와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주문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 가운데 또 하나의 놀라운 변화는 곰장어거리를 찾는 손님들의 나이대가 다양해 진 것이다. 추억을 더듬어 찾아오는 어르신들보다 젊은 친구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인터넷을 보고 찾아와 SNS에 곰장어구이를 자랑하고 부산 여행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단다. 부산 대표 음식으로서의 곰장어구이는 여전히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산 곰장어를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곰장어 거리다. 사진/ 여행스케치
사진/ 여행스케치
취향대로 먹는 곰장어구이는 고소하고 쫄깃하다. 사진/ 여행스케치

그럼에도 자갈치시장을 찾을 이유가 곰장어구이의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곰장어를 음식으로 즐기는 국가가 거의 없어 전 세계의 곰장어가 우리나라로 수입되다보니, 부산 같은 해안도시에서만 국내산 곰장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지척이라 수족관 물이 바로바로 공급되니 고기가 항상 신선하고, 회전이 잦은 만큼 곰장어 육질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전통 방식 그대로 연탄불에 초벌구이를 하는 것과 가게마다 개성이 다른 양념으로 감칠맛을 내는 곰장어구이는 자갈치시장이기에 즐길 수 있는 식도락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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