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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점과 선으로 연결되는 백제의 이야기
점과 선으로 연결되는 백제의 이야기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01.02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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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에서 부소산성까지 - 사비길 트레킹
부여군청 앞의 계백장군 동상. 사비길은 백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걷기 코스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부여] 기원전 18년에 건국되어 660년에 멸망할 때까지 약 700년 간 존속했던 고대국가 백제는 그들이 이룩한 문화를 일본 및 동아시아에 전파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지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부여는 그 중 4개의 유적지구를 보유하고 있다. 사비길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구를 돌며 백제의 문화를 고루 느끼는 길이다.

부여읍에서 시작해 원점회귀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사비길은 읍내 구간과 외곽 구간이 적절히 섞여있어 가벼운 차림으로도 걷기 좋다. 금성산과 부소산성을 제외하고는 오르내림이 없어 평탄한 사비길에서 백제가 남긴 부여의 유적들을 순회하며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되새겨보자.

백제 무왕(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서린 궁남지를 지난다. 사진 노규엽 기자

부여읍에서 시작하니 접근성부터 탁월해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는 점이 사비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아도 무관하지만, 궁남지로 먼저 향해 마지막을 부소산성으로 삼는 것이 볼거리의 임팩트가 확실하다.

부여군청 앞 로터리에 우뚝 선 계백장군의 동상부터 사비길에서의 백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압박해오던 급박한 시기에 5천 병력만으로 신라군과 결사의 항전을 나서야 했던 계백장군. 살아 돌아올 수 없음이 명확한 전쟁을 나선 그의 마음가짐과 기상은 이미 많은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었다.

읍내를 벗어나면 궁남지에 이른다. 여름철 무수히 피어나는 연꽃으로 전국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곳.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서동)의 출생지라는 전설이 있는 곳이지만, 백제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을 테마로 꾸며져 있다. 코스 이정표와 상관없이 공원을 자유롭게 돌아봐도 무난하지만, 빠져나올 때는 동쪽의 화지산 방면을 택해야 사비길을 이을 수 있다. 

궁남지를 빠져나오면서 만나게 되는 '오천결사대충혼탑.' 사진 노규엽 기자

궁남지를 나오면 ‘백제오천결사대충혼탑’이 모습을 드러내며 다시 한 번 황산벌 전투의 역사를 더듬게 한다. 이후로는 왕포천을 따라 약 2.7km를 걷는 논두렁길. 앞으로 마주하게 될 백제 유적들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홀가분하게 걷기에 좋다.

왕포천을 따라 걷다가 굿뜨래웰빙마을 근처에서 길이 나뉜다. 능산리 고분군으로 가기 위함인데, 계속 왕포천을 따라 길을 이어도 되고 굿뜨래웰빙마을 방면의 도로 옆을 걸어도 된다. 단, 왕포천 길은 빠져나올 갈림길을 놓칠 우려가 있으므로 초행이라면 후자를 권한다.

세계유산 백제유적지구의 시작
가탑사를 지나 도착하게 되는 능산리 고분군에는 세계유산이 2개나 모여 있다. 발굴 당시에는 7기의 무덤 주인이 불명확해 능산리 고분군이라 불렸으나, 고분군 옆으로 왕실 기원 사찰이었던 능사의 형태가 발굴되며 백제왕릉원으로 고쳐 부르게 된 이 곳이 하나. 그리고 능사터 옆으로 읍 내외의 경계를 긋고 있는 나성이 두 번째다.

나성은 사비성의 성벽에서 연장되어 부여읍 동남쪽을 감싸고 있는 벽. 왕실 수비가 목적인 사비성 성벽과 달리 나성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성벽이라는 게 핵심으로, 7세기의 백제가 이미 왕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나성 밖으로 왕실의 무덤을 배치한 점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나눈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어, 나성과 백제왕릉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치에 더욱 힘을 싣는다.

다만, 나성은 현재 정비공사를 진행 중이라 가까이서 볼 수 없다. 공사가 마무리되어 나성의 구간구간을 감상하며 걷는 길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능산리고분군(백제왕릉원)에 있는 능사터. 뒷편으로 정비공사 중인 나성이 이어져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나성 구간을 걸을 수 없으므로 걸은 길을 되돌아가 금성산 방면으로 향해야 한다. 도로 왼편을 따라 걷다보면 산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금성산은 해발 약 124m의 낮은 산. 적막한 산길을 따라 약 1.5km를 오르면 통수대에 이른다. 통수대는 정상에 세운 정자이지만 쉼터 역할 외에 조망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금성산 조망을 즐기려면 통수대를 지나 성화대로 가자. 통수대에서 내려와 만나는 갈림길에서 조왕사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무로정을 지나 성화대에 도착한다.

성화대는 부여읍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멋진 조망처다. 오른편의 부소산은 물론 백마강과 강 너머 부산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다음으로 지나가게 될 정림사지의 석탑을 유심히 봐놓기를 권한다.

금성산 성화대에서 내려다보는 부여읍 전경과 정림사지. 사진 노규엽 기자

성화대를 내려서면 금성산을 빠져나온다. 왼쪽으로 무료 개방하고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선사시대부터의 부여와 백제 최고유물인 백제금동대향로 등을 보는 것도 좋다.

절제미와 구조미로 백제의 기술력을 뽐낸 정림사지오층석탑. 사진 노규엽 기자

역시 세계유산에 등재된 정림사지에는 국보 제9호인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박물관 등이 마련되어 있다. 금성산에서 석탑을 유심히 봤어야 하는 이유는 산에서 봤던 모습과 새삼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멀리서는 석탑이 조금 투박하게 보였다면 가까이서 본 오층석탑은 대부분 직선으로 조성되었음에도 살짝 들린 옥개석 기단부가 어우러져 뜻밖의 구조미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이해문 충청남도 백제역사문화관 학예연구팀장은 “30m가 넘는 목탑들이 즐비했을 사비도성의 가장 한가운데 있는 정림사에 이처럼 작지만 아름다운 5층 석탑을 세워놓은 것”이라고 말하며, “멀리서는 크고 웅장함으로 놀래키고, 성 안에서는 절제미와 구조미를 갖춘 오층석탑을 보여주어 백제의 기술력을 뽐낸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문화적으로 외부인들의 기를 죽였을 정도로 백제가 동아시아에서의 위상이 높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백제의 최후 보루였던 부소산
사비길에서의 마지막 세계유산인 부소산성은 사비도성의 후원이자 왕궁과 시가지를 방어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곳. 실제로 백제가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했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사비성의 최후 보루이자 후원 역할을 했던 부소산성은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사진 노규엽 기자

사비길 코스는 부소산문에 들어선 후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고 삼충사와 영일루, 태자골숲길을 차례로 지나도록 짜놓았다.

삼충사는 백제의 세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고, 영일루는 동쪽 산봉우리에 있는 누각이라 ‘해맞는 곳’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태자골숲길은 옛 백제 왕자들의 산책로라 알려진 곳. 푹신한 흙길 위를 맨발로 걸으며 힐링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사비길 코스에서는 벗어나지만 부소산에 와서 낙화암을 가보지 않을 수 없는 법. 태자골숲을 나와 사자루 방면으로 길을 잡고 10여 분 걸으면 낙화암에 이른다.

백마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백화정이란 정자가 세워져 있지만, 뭇사람들의 관심은 그보다 아래인 낙화암을 내려다보는 일에 쏠린다. 사비도성이 적군에 무너질 때 삼천 궁녀가 꽃잎처럼 몸을 던졌다는 곳. 삼천이라는 숫자에는 논란이 있지만, 전설로 인해 애절함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삼천궁녀의 전설이 서린 낙화암. 부소산성에서 들르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현장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사비길의 마지막 코스는 서문을 나가도록 되어 있지만, 현재 서문은 폐쇄되었으니 서복사터를 지나 구문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부소산성을 나온 자리는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이 있는 곳. 허허벌판에 주춧돌만이 몇 보이는 모습에 망국의 역사를 다시 한 번 가늠할 수 있다.

부여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성왕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백제 최후의 장군이었던 계백장군으로 시작해, 사비로 천도를 하며 백제의 미래를 그렸던 성왕으로 끝나는 사비길. 그 아이러니한 회한이 잘 남아있는 13.8km의 역사탐방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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