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제천] 덕동계곡에서 펜션 ‘아름다운 세상’을 만난 건 뜻밖이었다. 사람의 손때가 많이 타지 않은 계곡이 맘에 들어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고 들어간 길이었다. 포장이 잘된 2차선 도로라 끝에 가면 다른 길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덕동계곡을 따라난 도로를 10여분 달렸을까? 갑자기 계곡이 넓어지며 왼편에 나무로 된 하얀 집이 보였다. 차를 멈추고 보니 집 현관 위쪽에 ‘아름다운 세상’이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휴가철이 지났는데도 차가 몇 대 눈에 띄었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 233. 주인아저씨는 빗속에 불쑥 찾아온 길손을 반갑게 맞아 준다. 거실 한쪽 벽면은 홈바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장식이나 집기가 상당해 보였다. 불쑥 마티니 한 잔 생각이 스쳤는데 원두커피로 참았다.
다른 쪽 벽에는 피아노와 기타, 오디오와 대형 모니터 등이 놓여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 잠시 쉬러 간 듯한 느낌이 든다. 기타 줄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것만 같다. 바닥에는 물소가죽이 한 장 깔려있다. 통창 앞에 놓인 소파에 두 여자가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처음엔 주인인 줄 알았다. 가만 보니 손님인데 분위기에 취해 일어서기가 싫은 듯 했다.
전에도 잡지에 난 적이 있다며 보여주는데 뉴스위크지에 ‘유럽형 펜션’으로 소개 된 기사였다. 짓는데 5년이 걸렸다고 쓰여 있었는데 작년 판이니까 이제 6년이 된 셈이다. “올 3월에 대충 끝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할 게 많이 남아 있습니다.” 1천 평 규모의 땅에 이것저것 아기자기하게 꾸몄는데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독채로 내주는 뾰족집, 흙집들을 보면 재료도 모양도 제각각 다르다. 도로 건너편 별장과 어울려 언뜻보면 작은 마을 느낌도 든다.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2층에 있는 ‘물소리’로 이름 붙인 자그만 방으로 올라갔다. 동화 속에나 나올 듯 깜찍한 방이었다. 삼각형 통창으로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그 앞에 작은 식탁과 주방, 다른 편 쪽에 침대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계곡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깊은 잠에 빠질 것만 같았다. 침대 바로 옆 창문 역시 통창. 창밖 나무를 보니 가을이 깊으면 빨간 단풍을 덮고 자는 기분이 들 듯 했다. 이 곳은 설악산 보다 1~2주 늦게 단풍이 든다고 한다. 설악산 단풍 소식 들으면 예약 하고 하루 묵어가면 딱 좋다.
주인아저씨가 추천하는 진짜 풍광은 겨울이다. 계곡 가라 겨울이면 물안개가 서려 눈꽃이 피는데 그 광경이 그만이라고. 사실 그동안 “이 산골짜기에 와서 무슨 짓인가” 하고 떠날 생각도 여러 번 했는데 겨울 풍광이 잡고 놔주지를 않았다고 한다. 덕동계곡은 물이 맑아 그냥 떠 마셔도 된다고 한다.
뒤편 산은 아담해서 트래킹하기에 적당하다. 도로를 타고 계속 들어가면 마을이 나온다. 그 이후로는 비포장 임도인데 차량 통행을 막아 놓았으니 길이 끊긴 셈이다. 포장 잘 된 도로에 웬일로 이렇게 차가 없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