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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인도사막여행①] 인도에서는 사계절 옷을 입고 다닌다
[인도사막여행①] 인도에서는 사계절 옷을 입고 다닌다
  • 이분란 객원기자
  • 승인 2004.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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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던 인도사막여행.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던 인도사막여행.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인도] 인도로 다가가는 일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별이 뜬 새벽에 집을 나서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인천을 출발하였다.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홍콩에서 10여 시간을 대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디라 간디 델리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2시. 시내로 가기엔 너무 늦은 아니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인도에 도착한 첫 날부터 공항에서 밤을 새야만하다니.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다. 

1월의 인도는 그나마 여행 다니기 괜찮다. 때문에 인도 여행은 이때가 성수기다. 그러나 겨울은 겨울인지라 날씨만큼은 굉장히 춥다. 전반적으로 건조한 인도의 날씨는 일교차가 무척 심하다. 한낮의 태양은 강하고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다 못해 굉장히 춥다.

당연히 안에는 반팔, 겉에는 점퍼 또는 파카까지 입어야 한다. 그래도 그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막으려면 숄이라도 둘러야 하는데 이곳에서의 숄은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휴대용 담요다.

사막투어에 빼놓을 수 없는 낙타.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사막투어에 빼놓을 수 없는 낙타.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인도에서는 햇볕에 그을린 많은 여행자들의 복장과 외모에서 인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인도의 계절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여행객의 대부분은 한 몸에 사계절을 고스란히 입고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상관없이 태양을 그리워하는 서양 친구들은 자연스러운 선탠을 위해 이 쌀쌀한 날씨에도 가슴이 다 파인 나시를 입고 다니거나 최소한의 노출을 즐기며 인도의 겨울을 만끽한다.  

물론 두툼한 숄(거의 담요수준)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기 때문에 싸늘한 아침저녁에는 그들도 온몸을 감싸고 다니기는 마찬가지다. 반면에 사계절에 민감한 한국인들은 한국의 겨울 그대로 두툼한 스웨터에 파카를 입고 다닌다. 그리고 실제 인도 여행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인도풍에 자기만의 개성을 살려 독특한 집시형 스타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같은 동양인이라도 눈에 띄는 특이한 패션에 저절로 시선이 가게 된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빠하르간즈의 배낭촌에서도 이같은 스타일만으로도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을 구분할 수 있다.  

델리배낭촌에서 본 거리이발사. 우리 돈으로 1달러가 채 안된다.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델리배낭촌에서 본 거리이발사. 우리 돈으로 1달러가 채 안된다.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농가의 두형제가 호기심 있게 담너머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농가의 두형제가 호기심 있게 담너머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사막투어로 유명한 서쪽 사막의 마지막 도시 자이살메르로 가려면 델리의 사라이 로힐라역(SARAI ROHILLA)으로 가야한다. 대부분의 큰 도시로 가는 기차들이 뉴 델리 역이나 올드 델리 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 역은 그나마 한산한 편이다. 출발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아있다.

플랫폼 번호를 확인하고 여유 있게 책을 꺼내 읽는다. 인도의 열차가 아무리 시간을 안 지키기로 악명이 높다고 하지만 그래도 첫 출발점인데 설마 오늘부터 그런 일이 있을까하는 섣부른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설마 하는 마음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체념으로 바뀌었다.

기차가 출발 시간을 훨씬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배낭 여행객들은 벌써 눈치를 챈 듯 포기하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역시나 17시 50분에 출발예정이던 기차는 6시간을 지체하더니 결국 밤 12시를 넘기고 나서야 출발했다. 그동안 난 인도의 낮과 밤의 일교차를 제대로 경험하고 말았다.

사마투어에 동참한 한국인 배낭족. 너무 추워서 담요와 파카를 두르고 차를 한 잔.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사마투어에 동참한 한국인 배낭족. 너무 추워서 담요와 파카를 두르고 차를 한 잔.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자이살메르성.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자이살메르성.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워낙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지만 한국의 겨울파카에 목도리 그리고 메인 바자르에서 비상장비(?)로 구입한 담요 수준의 숄을 둘렀는데도 동태가 되고 말았다. 해가 있을 때는 약간 쌀쌀하다라고만 생각했는데 해가 떨어지고 나니 우리나라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이런 날씨에 저렴한 2등급 기차를 끊었으니 과연 자이살메르까지 19시간을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배낭거리에 있는 메인 바자르(PAHARGA NJ) 시장골목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흥정한 1백30루피 (1Rs=30원) 짜리 숄도 큰 도움이 안 되고 있다. 2등급 침대칸은 난방도 안 되는지 기차가 이동하면 할수록 더 추워진다. 두꺼운 롱코트에 스카프로 머리를 싸고 목도리까지 친친 감아 보았지만 체감온도에는 변화가 없다.

기차의 벌어진 문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발은 얼마나 시린지 양말을 더 꺼내어 신어도 소용이 없다. 결국은 벗어놓은 운동화까지 신고 잠을 청해 보지만 도저히 추워서 잘 수가 없다. 그저 내일 해가 떠오르기만을 고대한다. 태양이라도 떠오르면 그나마 바람은 덜 찰 테니까.

야채를 넣고 걸쭉하게 커리를 만들고 있다.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야채를 넣고 걸쭉하게 커리를 만들고 있다.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델리시내에 있는 대통령 궁.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델리시내에 있는 대통령 궁.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늦게 출발한 기차라서 아침 일찍 도착했다. 기차는 추운 우타르 프라데쉬 주를 빠져 나와 이미 사막의 땅 라자스탄 주에 들어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간 이상을 달려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창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따뜻해 졌다. 그때서야 밤새 언 몸을 녹이며 잠깐 잠을 청했다.

정오를 넘어서면서 실내 공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더워졌다. 밤새 무장했던 겨울 장비들이 갑자기 거추장스러워진다. 하루 동안에 겨울의 극한과 여름의 시작을 동시에 경험하고 보니 어제 밤까지 부족하기만 하던 겨울장비가 지금은 필요 없는 짐이 되고 말았다. 옷들을 벗어 대충 배낭 속에 집어넣고 침대칸을 접어 의자에 앉았다.

부스스한 얼굴을 비비니 밤새 쌓인 먼지로 얼굴이 까슬까슬하다. 이렇게도 아침을 맞이하는군.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도저히 씻을만한 여건이 안 되니 어찌할 것인가. 닫힌 창문을 올린다. 환하게 달라진 창밖의 풍경에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냈다. 흐드러지게 핀 노란색 유채꽃(mustard flower) 물결에 환호가 절로 나온다.

타르사막에서의 일몰.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타르사막에서의 일몰.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사막의 작열하는 붉은 태양 아래에선 아무것도 자라지 못할 것 같은데 이 메마른 땅에도 저렇게 아름다운 꽃과 싱그러운 푸르름이 가득할 수 있다니… 척박한 자연 조건을 극복하며 나름대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그들의 인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몇 개의 마을이 스쳐 지나간다. 간간히 하얀 무더기가 연속해서 지나가더니 커다란 작업장이 보인다. 얼핏 보아도 소금을 채취하는 공장 같다. 이 사막에서 소금이? 확인하고 싶었지만 내리지 못해 확인은 못했다.

어느새 기차는 조드푸르역에 도착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탔다. 적어도 서너 시간만 더 가면 자이살메르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여유가 생긴다.

아이들이 단체로 인력거를 타고 하교하는 중.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아이들이 단체로 인력거를 타고 하교하는 중. 2004년 6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그 순간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소란스러운 힌디어가 들리더니 같은 칸에 타고 있던 인디언들이 이 기차는 이곳에서 끝났고 종점인 자이살메르까지 못 가게 되었다며 짐을 챙겨 내리는 것이 아닌가. 뭐라구? 이렇게 황당할 수가! 놀란 내 반응에 무뚝뚝하게 한마디 던진다. 버스 타고 가던지 다음 기차 타고 가라고.

첫 출발부터 나의 시간관념을 모조리 무너뜨린 인도! 인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다음 기차가 5시간 뒤에 있다고 한다. 또 다시 5시간을 역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인도의 사막을 보기도 전에 내가 먼저 플랫폼에서 사막이 되어 버릴 것 같다. 고민할 여지도 없이 처참한 꼴이 되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인도에 도착하여 단 하루 만에 악명 높은 기차의 실체를 경험하고 말았으니. 과연 오늘밤 안으로 자이살메르에 도착은 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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