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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네팔트레킹] 평생 걸어야 할 산길을 다 걷다
[네팔트레킹] 평생 걸어야 할 산길을 다 걷다
  • 이분란 객원기자
  • 승인 2004.10.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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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산, 산, 산, 히말라야.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산, 산, 산, 히말라야.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네팔] 네팔에서의 트레킹은 산으로 가고 싶다고 무작정 올라갈 수 없다. 미리 트레킹 신고를 하고 나서 해당 코스에 대한 입산 신고증을 받아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드디어 나는 이렇게 트레킹을 시작한다.

▶ 6박 7일 트레킹 일정
포카라 - ULLERI (2073M) - GOREPANI (2750M) - POON HILL (3210M) - TADAPANI (2680M) - GHURJUNG (2230M) - GHANDRUG (1950M) - 포카라

포카라를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이상을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계속 올라가는가 싶더니 그냥 산 중턱을 따라 나 있는 좁은 도로 갓길에 우리를 훌쩍 내려놓았다. 가이드가 나를 부르며 갓길 옆에 길 같지도 않은 좁은 길로 내려가자고 재촉한다. 길이라고 해봐야 소나 당나귀 한 마리 겨우 끌고 다닐 정도로 좁거니와 길바닥에 뿌려진 소똥인지 말똥인지 개똥인지를 밟지 않으려고 애쓰며 다니는 내 모습.

20여분을 산골마을 골목골목 지나다보니 제법 숙소와 식당들이 갖춰진 마을이 보이고, 희뿌연 물살을 튀기며 강하게 밀려 내려가는 강물 위에 다리 하나가 보인다. 저 다리를 건너 왼쪽에 있는 사무실에 입산증을 제시하면 드디어 트레킹이 시작되는 것이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산길의 모습. 큰바위돌이 군데군데 튀어나와 있고 저쪽 앞에는 잘 다듬어진 계단식 돌길이 보인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트레킹이 시작되는 산길의 모습. 큰바위돌이 군데군데 튀어나와 있고 저쪽 앞에는 잘 다듬어진 계단식 돌길이 보인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기록하라고 내민 신고 장부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여권번호, 나이 그리고 이름이 하루에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가깝게 빼곡히 적혀 있다. 과연 일주일 뒤에 무사히 이곳에서 제대로 하산 신고를 할 수 있을지 괜히 불안해진다. 그래도 설마 살아는 돌아오겠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오른쪽 길에서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가이드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시작치고는 경쾌하다.

편편한 길을 뛰어 가듯 성큼성큼 순조롭게 층계를 올라갔다. 가이드가 시작부터 그렇게 뛰어가면 나중에 힘들어진다고 주의를 준다. 드디어 6박 7일의 트레킹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길은 생각보다 험하거나 힘들지 않다. 산이 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길이 가파른 것도 아니다. 중간에 트레커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차나 음료, 식사를 파는 식당들도 있다.

또한 숙박시설까지 갖춘 게스트하우스들까지 산 중턱에 적당히 마련되어 있으니 쉬엄쉬엄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쉬어가며 몇 날 며칠을 천천히 또는 빠르게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네팔 트레킹에선 멋진 등산장비를 갖출 필요도 없다. 그저 편한 신발에 일교차를 조절할 수 있는 옷 몇 가지와 햇볕을 피하는 선크림이나 선글라스, 모자만 준비하면 된다.

트레커들이 힘들게 올라가는 그 산길을 따라 더 힘겹게 올라가는 소와 당나귀. 얹혀진 짐의 무게에 걸음은 뒤뚱뛰둥. 산에서 다들 고생이 많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트레커들이 힘들게 올라가는 그 산길을 따라 더 힘겹게 올라가는 소와 당나귀. 얹혀진 짐의 무게에 걸음은 뒤뚱뛰둥. 산에서 다들 고생이 많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트레커들의 하루는 아침 6시 전후에 시작된다. 7시 이후에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숙소를 떠나야 한다. 중간 중간 휴게소 겸 식당들이 있기 때문에 점심은 산길에서 해결하는데, 이동 중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비상간식으로 토스트나 빵을 준비해야 한다. 무작정 길을 걷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처음 알았다.

가벼운 운동이나 조깅으로 생각할 수 없는 2천 m 전후 높이에서의 산행을 매일 10시간 이상씩 한다는 건 말 그대로 트레킹이 아니라 훈련이다. 열심히 가이드를 따라 산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둠이 온다. 어둠이 오면 가까운 숙소를 찾아 하루를 머문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하루종일 걷다가 달이 뜨면 들어가자는….

제대로 씻을만한 온수 시설도 부족하거니와 씻을 기운조차 없을 때는 그냥 땀범벅 상태로 쓰러지듯 침대에서 잠이 들기가 일쑤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 ‘안나푸르나’ 봉우리도 한 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높이로 일곱 개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가 8천91m란다.

주로 유명한 트레킹 코스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ABC)까지 가는 코스인데 최소한 10일이 소요된다고 하니 나 같은 초보자가 도전해 볼 코스는 아니다. 평소에 한국에서도 등산가자고 하면 핑계대고 도망 다니던 내가 이렇게 산에서 숙박까지 하면서, 평생 걸을 길을 일주일에 다 걸어가고 있으니 힘이 안들 수 있겠는가!

구름에 가려진 설봉들을 뒤로 하고 기분 좋게 한 컷. 발에 땀은 나지만 아직은 바지만 걷어 올렸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구름에 가려진 설봉들을 뒤로 하고 기분 좋게 한 컷. 발에 땀은 나지만 아직은 바지만 걷어 올렸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시작한 날로 부터 3박 4일 동안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푼 힐까지 계속 올라만 가는 것이다. 처음엔 그 산이 그 산이고 그 길이 그 길인데 왜 자꾸 올라만 가는지 짜증이 났다. 평소에 산을 타보지 않았으니 중도에 포기하고 하산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아마 평생 봐야 할 산을 일주일에 다 보고 평생 걸어야 할 산길을 히말라야에서 다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네팔에서의 트레킹이었다. 동강 트레킹처럼 계곡의 물살을 가르며 야~호 함성을 외치며 보트 타는 즐거움은 없다. 그냥 무조건 산길을 따라 먼 산을 보며 걷는 것이다.

도저히 사람이라곤 살 것 같지 않은 높은 산골짜기에도 집이 있고, 산꼭대기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산맥을 따라 논밭이 있고, 소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으니,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네팔인들의 인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경외심마저 든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있는 그들의 일상은 한국에서의 환경이 어쩌고저쩌고 불평하던 내 사고에 일침을 놓는다.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푼힐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푼힐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마을이라곤 하지만 밤늦게까지 불빛이 새어나오질 않는 걸 보면 전기가 없는 것 같다. 그랬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발전기를 돌려 어느 시간까지는 전기를 쓸 수 있게 하였지만, 저녁 8시 이후엔 그 전기마저 주지 않았다. 전기가 없는데 산속에서의 따뜻한 난방은 더욱 바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잠을 잘 때는 갖고 있는 모든 옷을 입고 양말에 신발까지 신고 자야 한다. 그래도 방안에 새어 들어오는 싸늘한 찬바람에 잠을 자기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잠을 자고 사는가 싶어도 피곤은 또 다시 나그네를 단잠으로 곯아떨어지게 하니….

힘들어하는 필자를 위해 가이드가 선택한 지름길에서 발견한 표지판. 최근에 길이 열렸는지 나무들이 마구 잘려있었고 큰나무를 이렇게 파헤쳐 페인트로 길표시를 하였따.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힘들어 하는 필자를 위해 가이드가 선택한 지름길에서 발견한 표지판. 최근에 길이 열렸는지 나무들이 마구 잘려있었고 큰나무를 이렇게 파헤쳐 페인트로 길표시를 하였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강한 태양에 그을린 새까만 피부와 바싹 마른 몸에서 그들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이 살고 있는 가옥 구조로 보아 썩 만족스러워 보이지는 않은데 알 수는 없다. 추운 겨울에도 제대로 된 난방시설이 있을 것 같지 않고 먹는 음식들도 대부분 자급자족을 하는지 며칠째 산을 다녀도 시장이나 가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말 그대로 무공해 고랭지 농사를 지어 가족끼리 또는 마을 사람들끼리 적당히 나누어 자연과 더불어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히말라야가 주는 아름다움 속에 가려진 삶의 애환이 해맑은 웃음 속에 용해되어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가슴에 잔잔하게 스며든다. 그래도 가끔 산중턱에서 만나게 되는 한 무리의 소들과 무거운 볏단을 짊어지고 가는 나귀 떼는 나그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같은 일행인 독일인 트레커가 카메라를 든 채 감동의 설산을 바라보며 장관에 도취되어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같은 일행인 독일인 트레커가 카메라를 든 채 감동의 설산을 바라보며 장관에 도취되어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같은 농사꾼의 가축이긴 하지만 히말라야 산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로 그들의 일상은 더 고달프고 힘들겠다. 이런 춥고 높은 산에서 날씨도 날씨지만 울퉁불퉁한 산길을 짐까지 실고 오르내려야 하니 높은 곳에 산다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같이 고생이다. 평지에서도 농사일은 힘든데 이 높은 산에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그들은 얼마나 가파른 호흡을 내쉴까?

사람의 힘을 덜어주기 위해 농사꾼의 가축으로 살아가지만 새삼 이곳에서는 더 애처롭게 보인다. 학교라곤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과연 이런 산속에도 학교가 있기나 할까 했는데 책가방을 맨 아이들이 삼삼오오 맨발(?)로 산길을 오르내리는 걸 보니 어딘가에 학교가 있기는 있나 보다.

외모는 우리와 비슷한 아시아인인데도 그들 눈에는 우리가 외국인으로 보이는지 “헬로우” 인사말을 던지며 쑥스럽게 지나간다. 아이들의 걸음이 얼마나 씩씩하고 빠른지 평지를 걸어가듯 성큼성큼 이야기를 나누며 재빠르게 앞질러 간다. 나는 이렇게 가파른 호흡으로 겨우겨우 기어 올라가고 있는데…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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