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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오지마을체험] 산골 큰터집 날아온 제비, 족두리꽃 입에 물고 아가씨 찾았네 '봉화 승부마을'
[오지마을체험] 산골 큰터집 날아온 제비, 족두리꽃 입에 물고 아가씨 찾았네 '봉화 승부마을'
  • 노서영 기자
  • 승인 2005.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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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봉화 승부마을 풍경.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봉화 승부마을 풍경.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여행스케치=봉화] 창문으로 스며든 따가운 햇살이 몸을 간지럽힌다. 자명종도 없고, 달그락달그락 조반을 짓는 엄마의 손놀림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눈이 떠진다. 촉촉하게 젖은 밭 이랑 사이로 들국화가 피었고 흰 나비 두 마리가 부드러운 날갯짓을 한다. 산 어딘가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메아리쳐 귓가에 스친다. 승부(承富)마을의 아침은 이렇게 찾아온다.

승부마을은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있는 마을이다. 하루에 여섯 번 기차가 정차하는, 승부역에서도 20분 남짓 올라야 나오는 오지다.

겨우 12가구뿐인 마을에 8남매를 시집장가 보낸 큰터댁(마을에서 큰터집이라 하면 다 안다. 큰 터에 자리한 집의 안주인을 일컫는다)에게 영주에 사는 막내딸이 찾아왔다. 벌써 5살, 4살 난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둔 엄마가 된 막내딸. 그녀가 시집간 사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 12가구인 마을이니 '큰터댁'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모두 12가구인 마을이니 '큰터댁'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고 아래 역 있제. 거기 그래, 서른 되는 총각 하나 있다카이. 고 총각 땅딸해도 야무진 게 탐나드라. 함 볼겨?”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어디서 소문 듣고 큰터댁을 넌지시 떠본다.

큰터댁 하는 말이, “무시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막내딸은 변호사 사우 만나야재. 아서라, 혼사 망칠란께 말도 꺼내지 마소.” “사람, 참 욕심도 많테이. 성실하고 투박한 놈이 끝까지 사랑하는 거 몰러? 그 놈 남주기 아까바서 귀뜸하는 거구만.”

승부역에서 근무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달식이는 태백 출신이다. 어느 주말, 자기 키 마냥 쪼깨만한 자가용을 몰고 덜덜거리면서 승부리를 찾았다. 마지못해 한번 찾아오라는 큰터댁 안주인 말에 한걸음 내달렸는데, 끝이 없는 길이다.

밭일하면서 땀에 절은 옷을 걸어놓은 전형적인 마을 문칸.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밭일하면서 땀에 절은 옷을 걸어놓은 전형적인 마을 문칸.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승부리로 가는 길을 잘못 든 것일까, 사랑을 찾는 길은 한 치 앞길 모르는 돌밭을 운전하는 거야. 달식이도 남들 다하는 결혼을 하고 싶은 거라. 달식이 애간장을 태우는 장본인은 스물다섯 살 난 앳되고 참한 큰터집 막내딸이다.

옥수수, 고추, 고사리, 배추, 밭 사이로 띄엄띄엄 대추나무를 키우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에 보기 드문 꽃처녀 하나 있었으니, 그 이름 혜숙이라.  

혜숙이 초중등학교 시절, 마을에 또래란 딸랑 저까지 포함해 다섯인데 학교 한번 가려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종종걸음으로 삼십 분 걷다가 기차를 타고 석포면에 갔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미끄러지기 일쑤라, 감안해서 일찌감치 집을 나서야 했다.

승부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학교마을'. 봉화군에 속해 있지만 마을 사람은 승부마을과 구분해 울진 승부라고도 부른다.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승부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학교마을'. 봉화군에 속해 있지만 마을 사람은 승부마을과 구분해 울진 승부라고도 부른다.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풀풀 흙먼지를 날리고 마을에 들이닥친 달식이를 먼저 본 건 혜숙이. 시큰둥했을까. 손으로 집 쪽을 가리키고는 건너 마을 학교마을에 가는 중이라면서 슬쩍 피해버렸다.

“멀리오느라 고생했수, 시원한 냉수 한잔 마시구려. 우리 딸 봤나?” 고이고이 키운 딸내미 데려가려는 총각이 예뻐보인다믄 친엄니 아니련만, 첫 인상이 험치는 않은 데로, 웃는 게 순박해 뵈긴 하다.

얼른 나가보라고 눈치주길래 달식이는 냉큼 나와 학교마을에 갔다. “저게 뽕나무데요?” 힘겹게 혜숙이 뒤꽁무니를 쫓아온 달식이가 헐떡거리면서 묻는다.

“오디 몰라요? 뽕나무 열맨데, 굉장히 달구마. 근데 역무원이라면서요? 승부가 얼마나 오지인디, 심심하겄소.” “나름대로 좋습니다. 오디 맛이 죽이네요. 혜숙씨가 따준께로 맛있는 기가.” “내 시골박이 싫은 이유 딱 그거라카이. 언제 봤다고 능청스레 혜숙씨가 뭔교. 촌시려.”

족두리꽃이 집 앞뜰에 아름답게 피었다.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족두리꽃이 집 앞뜰에 아름답게 피었다.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투박한 달식이 손이 혜숙이 입을 탁 막더니 이내 산딸기를 떨어뜨린다. 알갱이 톡톡 튀기는 재미에 씁쓸해도 맛있다. 혜숙이도 비시시 미소를 짓는다.

“혜숙씨, 저기 살구나무 있네. 누렇게 익은 거 하나 먹을테요?” 서른 총각 달식이는 첫눈에 혜숙이가 맘에 들었는지 살구를 쓱쓱 바지에 문질더니 손을 내민다.

구멍가게 하나, 작은 비디오가게 하나 없는 곳이지만, 젊은이들의 입을 달랠 수 있는 간식거리가 풍부하다. 앵두, 산딸기, 오디, 살구에다, 머지않아 머루, 대추, 호두까지. 산의 진미인 두릅나무 잎사귀 따다 질겅질겅 씹으면 입맛 돋우는 데 그만이다.

승부마을에 펼쳐진 배추밭.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승부마을에 펼쳐진 배추밭.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본의 아닌 데이트를 반나절이나 한 혜숙이와 달식이는 큰터집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바라본다. “울 엄마가 부침개 하는 거. 울 엄마 음식 솜씨가 승부마을에서 이거라 안카나.” “그라요? 내는 담에 혜숙씨 부침개 맛보구 싶구만요. 혜숙씨도 엄마 닮았을랑가?”  

달식이가 마루에 걸터앉아 감자 부침개 한 점 먹더니, 집 뜰에 있는 족두리꽃에 눈을 떼지 못한다. 넌지시 혜숙이에게 말문을 던진다. “혜숙씨, 족두리꽃이 참 이쁘네요. 혜숙씨 머리 위에 내가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이 사람아, 부침개나 먹게. 성질이 왜그리 급하나?” 벌겋게 달아오른 혜숙이 얼굴이 신경 쓰였는지 어머니가 말을 낚아챘다. 1년을 그렇게 밀고 당기던 승부마을 아가씨는 이듬해 족두리꽃 머리에 올리고 맘씨 넉넉한 승부역 역무원과 웨딩마치를 올렸다.

달식과 혜숙의 '산골 사랑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승부역 역무원 정 회씨와 홍정숙씨 가족.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달식과 혜숙의 '산골 사랑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승부역 역무원 정 회씨와 홍정숙씨 가족.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연인들의 특별한 오지 여행
기차를 타지 않고서는 찾기가 힘든 오지. 승부마을 기차역은 겨울이면 눈꽃열차가 지나는 곳이다. 눈꽃도 아름답지만, 장맛비가 우두둑 떨어지는 한여름에 가는 것이 더욱 맛깔스럽다. 질퍽이는 흙길 속에 빠져도 보고, 빗물이 넘쳐흐르는 고랑에 헹구어도 본다.

빛깔 좋은 개구리 잡아다가 애인 등짝에 놓아 깜짝 놀라게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이슬먹은 산딸기 종이컵 가득 담아 머리맡에 놓아두기도 한다. 마을 곳곳에 우뚝 솟은 오동나무 잎사귀 한 잎따다 부채로 부쳐보고, 날씨가 흐려오면 살포시 머리위에 얹어 소낙비를 피한다.

밤이면 모닥불 피워놓고, 첩첩산중에 파묻힌 승부마을과 승부역 역무원과 함께 철로 따라 승부역 사랑 얘기 훔쳐듣는 것, 저녁이 되면 밑이 뻥 뚫린 변소를 한 명이 망봐주며 ‘빠졌니, 살았니’ 하며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승부마을에서 그때 그 시절의 철수와 순이가 될 수 있다면, 올 여름 기필코 놓치지 않으련다.

기자와 함께 승부역을 찾아간 철길 따라 잔잔한 추억을 만드는 대학생 최근영, 고은정씨.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기자와 함께 승부역을 찾아간 철길 따라 잔잔한 추억을 만드는 대학생 최근영, 고은정씨.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Tip. 전쟁시 투구와 갑옷을 항시 갖추어야 하는 승부마을 이야기
승부마을은 부가 이어 내려오는 곳이라 하여 승부(承富)라 불린다. 하지만 어떤 이는 옛날 전쟁시마다 이곳 마을에서 승부(勝負)가 갈렸다 하여 승부마을이라 했다 한다.

승부마을 북쪽으로 학교마을이 있는데, 지금은 폐교된 승부분교가 그 마을에 있었다. 원래 울진군 서면에 속하던 학교마을이 봉화군 석포면에 편입된 해는 1983년이다. 남편, 아내를 여의고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은 승부마을과 학교마을 사람들은 품앗이로 이웃간에 정을 나눠간다.

승부마을 어귀에서 정면으로 투구봉과 갑재가 보인다. 한 장수가 투구봉에 투구를 놓고, 갑재에서 갑옷을 벗고 쉬다가 갑작스런 적군의 습격을 받았다. 울진 전곡리 전내(7가구 정도 산다는 자연부락)까지 후퇴하다가 결국 ‘전내(졌네)’라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지명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온다.

승부역 모습.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승부역 모습. 2005년 8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마을을 연결해 주는 승부역
승부역은 오지 중의 오지라, 일부러 찾아오는 손이 드물다. 차로 오려면 석포면을 거쳐 20~30분을 더 가야한다. 따라서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역장 남진동씨와 부역장 장성남씨, 그리고 승부마을의 꽃처녀와 결혼한 정 회씨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 교대 근무한다.

Info 가는 길
대중교통 _ 서울(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배차간격 30분) 태백(통리)이나 영주에서 내린다.
태백역(09:10)출발 -> 승부역(10:01)도착
통리역(17:35, 19:50)출발 -> 승부역(18:12, 20:40)도착
영주역(06:10, 08:16, 17:40)출발 -> 승부역(07:44, 09:41, 19:16)도착

도와준 분들
ㆍ이 글은 승부역 역무원 정 회씨와 승부마을에서 나고 자란 홍정숙씨(부부)의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기자가 재구성하였습니다.
ㆍ좋은 사진을 찍게 도와준 중앙대학교 문학동인방 최근영(男)·고은정(女)씨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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