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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야경 투어] 한국의 美를 밝히는 서울의 밤
[야경 투어] 한국의 美를 밝히는 서울의 밤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3.02.14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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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서울 야경 명소로 이름난 낙산공원.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서울] 해가 저물고 붉은 기운이 모두 사그라들자 금세 검은 장막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하늘 아래 펼쳐진 낮보다 환한 도시의 밤. 밤의 테라스에 서면 빛나는 야경과 함께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역사의 뒤안길에 쌓인 수많은 밤
어둠이 깔리면 분주했던 낮과는 다른 고요한 밤의 세계로 접어든다.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지만 다시 옷깃을 여미고 길을 나섰다. 휘황찬란한 밤거리를 지나 대학로 너머로 걸음을 옮기니 고즈넉한 정취가 주변을 감싼다. 늦은 밤까지 곁에 있고 싶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서울 야경 명소로 이름난 낙산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성곽에 기대어 서서 지난 시간을 반추해본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어두운 언덕길이 처음엔 까마득해 보였지만 가로등 불빛을 길잡이 삼아 천천히 오르니 정상부까지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성곽이 이어진 중앙 광장은 아담한 정자와 벤치, 작은 화단들이 조성되어 있어 쉬어가기 좋다. 공원 안에 전망 지점이 여러 곳 있는데 가장 높은 장소에 오르면 은은한 불빛이 감싸 안은 공원과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곽을 경계점으로 삼은 안팎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흔적만 남은 과거와 또렷한 현재의 시간이 겹쳐진 낙산공원의 밤. 견고하게 쌓인 성벽 아래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수많은 밤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찬란하게 빛나는 서울의 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그 밤들 중에는 남편과 생이별한 채 수십 년을 홀로 살았던 정순왕후의 한 많은 밤도 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면서 궁궐을 나와야 했던 정순왕후는 낙산 인근 마을에서 염색 일을 거들며 살았다고 한다. 얼마 안 되어 단종의 죽음이 전해지고 그녀는 영월이 바라보이는 봉우리에 올라 애끓는 마음을 삭히며 구슬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 그녀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밤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 애달픈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한없이 먹먹해져 온다.

옛 성곽을 거니는 운치 있는 산책
낙산은 남산과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한양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 가운데 하나로 풍수지리학적으로 좌청룡에 해당하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높이가 130m 남짓한 야트막한 산이지만 예로부터 중요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산이 낙타의 등처럼 보인다고 해 낙타산, 낙산이라 불렸는데 조선시대에 많은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았을 만큼 운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살았던 이화장도 인근에 보존되어 있다.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안타깝게도 1960년대 근대화가 진행되던 시기에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낙산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다행히 이후에 낙산 복원 계획이 진행되면서 건물을 허물고 일대에 공원을 조성해 말끔히 새단장했다. 숲이 우거진 산길 대신 산책로를 정비하고 야외무대를 갖춘 광장과 야생화 단지를 꾸며 낙산을 도심 속 쉼터로 바꾼 것이다. 원래 산세가 어떠했을지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지만 지금 모습에 익숙해진 탓인지 마땅한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성곽길 산책. 
야심한 밤에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많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훼손되었던 성곽을 복원해 남산과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옛 성곽을 따라 걷는 서울한양도성길도 조성했는데 이중 낙산은 2코스에 해당한다. 성곽 주변에 야간 조명을 설치해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운치 있는 밤 산책을 즐긴다. 산이 낮은 까닭에 가까운 남산 등과 비교하면 동네 언덕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더 쉽게 발걸음 할 수 있다. 

낙산공원에서는 성곽과 반듯하게 수평을 이룬 도시 전경이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인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남산 서울타워가 우주발사대처럼 우뚝 솟아 있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밤의 정취는 더욱 그윽해지고, 모든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잔잔한 감동으로 남는다.  

우주발사대처럼 보이는 남산 서울타워.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어둠 속에 드러난 덕수궁의 화려한 단청.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가장 한국적인 서울의 야경
낙산공원을 내려선 발걸음이 덕수궁으로 향했다. 서울의 중심인 시청 앞은 밤에도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과 불빛들로 대낮만큼 바쁘고 분주해 보인다. 그에 비하면 인적이 드문 궁궐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돈다. 밤의 기운 탓인지 높은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는 옛 궁궐이 과거로 회귀하는 시간의 통로처럼 여겨진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왕족과 고관들의 저택을 빌려 임시로 사용했던 행궁이었다. 이후 별궁인 경운궁이 되었다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전통적인 궁궐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 석조전 같은 서양식 건물도 세워졌다. 덕수궁이란 이름은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바뀐 것인데 전통의 토대 위에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인 진취적인 공간으로 어떤 의미에선 가장 한국적인 야경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유럽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전.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밤에 찾은 궁궐은 낮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이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 과거의 시간에 멈춘 정지화면 같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 무언가 묵직한 울림이 전해지는 깊은 감흥이 있다. 지금은 전기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지만 옛적에는 많은 등불을 가지고 다녀도 어두컴컴했을 터이다. 야심한 시각에 궁궐을 찾은 낯선 이방인이 되어 이곳저곳을 거닐다 고종이 거처했던 함녕전에 닿았다. 

고종이 승하한 곳도 이 건물이다. 주인 없이 건물만 남은 모습이 처연하게 느껴진다. 그 옆에는 전통 양식으로 지은 건물에 천정에 샹들리에를 단 덕홍전이 세워져 있다. 외교 사절들을 접견하던 장소로 과감한 인테리어를 도입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문턱을 넘어 밤의 궁궐로 가는 길.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서양식 난간을 갖춘 정관헌. 임금의 어진을 봉안했던 곳이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밤이라고 임금의 위용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국가 행사를 치르던 중화전과 앞마당은 공간이 품고 있는 웅장함에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눈부신 조명 빛에 오히려 활활 불타오르는 횃불이 연상되었다. 덕수궁은 규모는 작지만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매혹적인 장면들이 펼쳐지는 밤의 명소다. 여기에 격변의 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까지 덤으로 얹어진다. 

도시를 밝히는 찬란한 불빛
서울의 밤에 한강 야경이 빠질 수 없다. 성동구에 있는 응봉산은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탁 트인 한강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야경 명소이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류부에 위치해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강남파이낸스센터와 롯데월드타워, 남산서울타워까지 두루 보이는 최고의 장소이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길목에 불빛들이 찬란하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응봉산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정상까지는 약 5~1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탐방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출발점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경사진 계단길이 단축 코스이긴 하지만 한강변으로 에둘러 가는 오솔길이 걷는 재미도 있고 훨씬 편하다. 중앙에 팔각정이 서 있으며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과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한강을 가로지른 다리와 도로 위에는 차들이 그려낸 붉은 궤적이 끊이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눈부시게 발전한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퍼포먼스 같다. 긴 강을 사이에 두고 우후죽순 솟은 빌딩숲은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빌딩마다 오색찬란한 불빛을 뿜어내며 누가 더 화려한지 경쟁한다.

효사정에서 바라본 한강 야경. 강 건너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조선시대 태조가 이곳에서 매사냥을 했다고 해 매봉 또는 응봉이라 불렸다는데, 그는 과연 이러한 미래를 상상이나 했을까. 흑석동에 자리한 효사정도 손꼽히는 야경 명소이다. 한강과 바로 마주해 있어 건너편 건물들이 훨씬 크고 가깝게 보인다. 효사정은 조선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한이 모친을 그리워해 지은 정자로 깊은 효심이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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