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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1] '눈꽃 봄꽃 사람꽃' 초봄 산행길, 전남 광양 백운산
[특집1] '눈꽃 봄꽃 사람꽃' 초봄 산행길, 전남 광양 백운산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3.02.13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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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에서는 조금 이른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광양] 봄은 남에서 시작해 북으로 올라선다. 계절이 멈춘 듯한 북극한파 속에서도 남녘 땅 곳곳의 나무들은 어김없이 꽃잎을 열어 봄을 알린다. 겨울도 호락호락하진 않아서 완연한 봄기운을 시샘하기 일쑤인데, 봄은 한 번도, 설령 다소 늦더라도 그 기세에 눌려 물러선 적이 없다. 온기는 찬바람을 뚫고, 그렇게 서서히 북상 중이다.

광양(光陽)은 그 이름에서부터 봄 냄새가 난다. 백제시대엔 ‘마’로 통일신라 땐 ‘희양’으로 불리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는데, 고로쇠 수액과 청매실농원의 매화, 옥룡사지 동백숲, 섬진강 하구의 벚굴까지 여느 곳보다 봄을 먼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매화축제(3.10~19)도 4년만에 개최된다니 광양의 봄은 꽃향기 속에 빛날 일만 남았다.

신선대를 오르내리는 등산객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백운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으로 3월에도 종종 겨울 같은 설경을 펼쳐놓는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백운산, 다양한 등산로와 둘레길
광양과 순천 일대에 폭설이 쏟아졌던 지난 겨울, 섬진강 너머 하동(오히려 더 북쪽인데도)엔 눈이 오지 않았다. 하동 사람들은 그 이유를 거대한 산에 두고 있었다. 위로는 지리산, 남으론 백운산(1,222m)이 막고 있기 때문이란 것. 호남정맥의 정점 백운산은 지리산 노고단(1,507m)에 이어 전남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광양에 이렇게 높은 산이 있단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심지어 꽃이 피는 3월에도 해발 1,000m가 넘는 남쪽 산은 새하얀 눈꽃을 틔우며 마지막 겨울 풍경을 펼쳐놓곤 한다.

광양시 봉강면, 옥룡면, 옥곡면, 진상면, 다압면에 구례군 간전면까지 두루두루 넓게 위치한 만큼 등산로도 많은데 아무래도 최단 코스인 옥룡 진틀마을이 가장 붐빈다. ‘숯가마터’를 기점으로 신선대(1,198m)와 연계한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상봉(정상) 외에도 형제봉, 도솔봉, 따리봉, 억불봉, 매봉, 국사봉, 노랭이봉 등이 더 있다.

광양 청매실농원의 3월 풍경.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광양을 넘어 전국의 봄을 대표하는 청매실농원.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청매실농원에서 오르는 쫓비산(537m)도 백운산 줄기다. 품이 깊은 백운산엔 아홉 개 코스, 총 거리 125.9km의 둘레길도 있다. 원점에서 출발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보통의 환형 둘레길과는 달리 꼭 커피 원두처럼 동그라미 중심에 줄이 하나 그어져 있다.

옥룡사지에서 논실마을과 한재를 거쳐 하천마을로 가는 1코스와 2코스가 그것. 이후 하천마을에서 우측으로 3~6코스가 이어지는데, 1코스 출발지인 옥룡사지가 이번엔 6코스 종점이자 7코스 출발지가 된다. 시계방향으로 돈 둘레길은 2코스 종착점인 하천마을에서 9코스의 끝을 맺는다. 봄에 걷는다면 청매실농원을 지나는 3코스와 4코스가 제일 낫다.

산행 중엔 가벼운 옷차림이 좋지만 기온 변화에 대비한 보온성 의류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한재는 백운산둘레길이자 정상과 따리봉을 잇는 등산로이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진틀마을, 정상 최단 코스
도로 끝인 진틀마을, 정확히는 음식점인 병암산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 데다 오가는 이가 많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꽃도 없고 신록도 없고 단풍도 없고 눈도 없는 이맘때의 산은 갈색뿐이어서, 고도가 낮은 마을과는 달리 높고 좁은 초봄의 산은 겨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앙상한 가지는 바늘처럼 뾰족해 발에 밟히거나 배낭에 걸리면 아사삭, 막대 과자처럼 쉽게 부러진다.

가끔은 눈이 아니라 젖은 낙엽을 밟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해빙기의 산에선 낙석 사고의 위험도 있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 바위가 팽창한 까닭인데 등산로만 따라가면 적어도 백운산에선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진틀삼거리’는 신선대(1.2km)와 정상(1.4km)을 나누는 갈림길이다. 정상만 오르내리는 게 단조롭다면 신선대에 먼저 갔다 정상엘 가거나 그 반대로 진행해 이쪽으로 하산해도 된다.

대체로 백매보다 홍매가 먼저 개화한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여기에 ‘숯가마터’가 있다. 이름 그대로 석축을 쌓고 참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던 곳인데, 1920~70년대까지 무려 50년간이나 명맥을 유지한 곳이다. 보통 일주일 이상 불을 지펴야 숯이 되었다고 한다. 백운산자연휴양림 위쪽에는 ‘금목재’라는 고갯마루가 있는데, 당시 참나무의 무단 반출을 막기 위해 통제소가 설치됐던 곳이다.

계곡을 건너 비탈로 올라서자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색이 보인다. 산 아래에선 산 위의 일을 알지 못한다. 간밤에 내린 비는 산중에서 눈이 되었다. 적어도 3월 말까지 배낭 속에 아이젠을 넣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두어 시간 전만 해도 열어둔 차창 안으로 향긋한 매화향이 쏟아졌는데 산은 외따로이 하얀 풍경을 펼쳐 내놓았다. 이때쯤 이면 산행객들의 마음은 간사해진다. 봄꽃 보러 왔다가 눈꽃에 두근 두근, 해가 더 높아지기 전에 얼른 정상으로, 더 추운 곳으로 빨리!

INFO 백운산
옥룡면 진틀마을에서 출발해야 가장 빠르게 올라설 수 있다. 주차장에서 정상(1,222m)까진 약 3km이고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휴식 포함 4시간 남짓. 신선대를 코스에 넣을 경우엔 약 5시간. 눈꽃산행이 목적이라면 논실마을~따리봉~한재 코스가 괜찮다. 역시 원점회귀가 가능하며 4시간쯤 걸린다. 여름에는 백운산 4대 계곡으로 꼽히는 성불, 동곡, 어치, 금천계곡을 코스에 넣는 게 좋다.
주소 전남 광양시 옥룡면 신재로 1678-67

억불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산행객.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진틀삼거리에서 신선대와 정상으로 길이 나뉜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전남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백운산.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전남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백운산에는 봉황, 여우, 돼지의 영험한 기운이 흐른다는 전설이 있다. 봉황의 정기는 조선시대 문신 최산두(1483~1536), 여우는 몽골의 왕비가 되었다는 월애부인, 돼지는 ‘큰 부자의 땅’인데 광양시는 이를 포스코, 컨테이너 부두 등과 연관 짓는다. 신성한 기운 덕분에 타지로 시집간 광양 새댁들은 부러 친정까지 와 출산한다는 말이 있다. ‘광양의 죽은 송장 하나가 순천의 산 사람 셋과 맞먹는다.’, ‘광양 큰 애기한테는 두말도 않고 장가든다.’ 등의 말도 있다.

백운산에 서면 산의 품새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 앞에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이 가지런히 보인다. 섬진강을 가운데 두고 남과 북으로 나뉘었지만 이 산에선 저 산이, 저 산에선 이 산이 부쩍 잘 보인다. 비나 눈이 온 직후나 아침 일찍, 골골이 파인 계곡과 능선 속살 사이사이 솟는 운해는 백운산의 또 다른 선물이다. 밤이면 산업현장의 불꽃이 별빛만큼 화려해 자연이 주는 정서적 감동과는 다른 울림을 준다.

따리봉 가는 길에 돌아본 도솔봉.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데크와 평지가 많아 백패커들이 즐겨찾는 백운산.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비좁은 정상을 다른 이에게 내어주고 너른 데크로 내려선다. 간밤 하룻밤 묵었는지 빨간 텐트 한 동이 아직 그대로 남았다. 시(군)립이나 도립 또 국립공원이 아닌데다 곳곳에 데크와 평지가 많아 백패커들이 즐겨 찾는 산이기도 한데, 가능한 늦은 오후에 텐트를 치고, 산행객들이 올라오기 전인 이른 아침에 철수하는 게 좋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커다란 바위 아래서 신선대로 올라온 이들과 마주친다. 길 하나에 산뜻한 등산복 차림의 인파가 엉겨 붙는다. 초봄 주말의 백운산은 봄꽃과 눈꽃을 보려는 사람꽃으로 분주하다. 그 번잡함과는 상관없다는 듯 신선대는 견고하고, 그 위의 하늘은 유독 파랗다. 산에 와서 우울한 사람은 별로 없다. 높은 곳에 올라선 이들은 새처럼 활기차다. 그게 하산길이라면 걸음은 더 가볍다.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만날 수 없을 풍경을 뒤로 하고 진틀마을로 내려선다.

산행을 좋아한다면 청매실농원에서 쫓비산까지 다녀와도 좋다.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참숯을 피우고 구리 석쇠에 얇게 저며 양념한 소고기를 굽는 광양불고기. 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봄은 언 땅의 생명들을 움트게 하고 꽃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한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면 세상은 찬바람 속에 잠이 든다. 지금은 겨울을 보내고 봄맞이할 시간, 무거운 몸을 탈탈 털고 산에 오르는 건 어떨까. 산이 곧 봄이고 활력이다.

INFO 백운산자연휴양림
산막1지구와 2지구, 제1야영장과 2야영장, 산림문화휴양관, 카라반 등의 숙박동이 있다. 산막은 4인실 주말 기준 5만 원, 캐빈하우스 5인실 6만 원, 카라반 14만 원, 야영장은 7,000원이다. 성수기는 7월 15일부터 8월 24일까지로 평일에도 주말 요금이 적용된다.
주소 전남 광양시 옥룡면 백계로 337
문의 061-797-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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