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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봄볕 같은 소소행복, 묵호 논골마을
봄볕 같은 소소행복, 묵호 논골마을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3.02.14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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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묵호항과 논골마을 전경. 사진/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동해] 살랑거리는 미풍 따라 떠난 조금 이른 봄맞이 여행. 유난히 따사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봄볕 같은 하루를 만끽하고 왔다.

묵호 논골마을엔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이 낡은 달동네를 처음 방문했던 건 약 10여 년 전쯤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우연히 저 멀리 하얀색 등대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 같다. 형형색색의 낮은 집들이 주욱 늘어진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참으로 생경한 풍경이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빛바랜 마을의 풍경. 얼핏 잿빛처럼 보이지만, 파스텔톤 부드러운 색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언덕 꼭대기에 오르니 예상치 못하게 마을이 하나 나타난다. 현대식 아파트와 크고 작은 빌라촌,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스러운 별장까지, 언덕 아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를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머무는 내내 영화의 분위기처럼 특유의 따사로운 느낌이 좋았던 장소.

논골마을의 나른한 오후. 사진/ 민다엽 기자
투박한 시멘트 계단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린다. 사진/ 민다엽 기자

산비탈 위에 아슬아슬 걸려있는 작은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단돈 4만 원에 이토록 만족스러운 숙소를 얻을 수 있다니…(물론, 사람에 따라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 있지만). 이른 아침, 마당에서 끓여 먹는 라면과 함께 마주했던 눈부신 일출은 어울리지 않게 사치스러웠고, 햇살을 머금은 코발트 빛 바다가 펼쳐지는 황홀한 오션뷰는 특급 호텔 부럽지 않았다.

때마침 김장했다며 김치와 수육을 잔뜩 내어주시던 민박집 할머니의 따뜻함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옛 모습을 간직한 빛바랜 등대 마을. 바닷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품은 동해 묵호동의 논골마을 이야기다.

묵호항 전경. 항구 여객터미널에서는 울릉도를 오가는 정기선이 운항되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개조차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묵호항은 꽤나 번성했던 곳이었다고. 사진/ 민다엽 기자
‘논골’이라는 마을 이름답게 장화 조형물이 유독 많이 보인다. 사진/ 민다엽 기자

문전성시를 이루던 묵호항
묵호항은 예부터 고기잡이가 잘되었다.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를 얻으려고 온갖 새들이 몰려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싸움을 잘했던 까마귀가 하늘을 뒤덮었다고 전한다. 물과 바다가 검고 까마귀도 많아 검을 묵(墨)자를 써서 묵호라 했다고 전해진다. 또 선비가 잘 난다 하여, 글과 묵을 뜻하는 한묵(翰墨)의 의미로 묵호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오늘날의 빛바랜 풍경과는 달리, 과거 묵호항 일대는 크게 번성했던 어촌 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개항한 이래, 묵호항은 태백·삼척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명태와 오징어 등이 많이 잡히면서 자연스레 전국에서 몰려든 선원과 장사꾼, 관광객,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 말 그대로 사람과 돈이 넘쳐나던 곳. 골목에그려진 지폐를 물고 있는 진돗개의 벽화를 보면, 전성기 당시 묵호항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 석탄과 시멘트의 물동량이 점점 줄어들고 명태와 오징어의 어획량마저 급감하면서 묵호항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마을 사람들이 주업으로 삼았던 명태 덕장이 문을 닫으면서, 자연스레 묵호항의 어부와 그의 가족의 터전이던 묵호동도 급속도로 낙후되어 갔다. 가파른 산 비탈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논골마을의 판잣집에는 점점 빈집이 늘어났고 형형색색 슬레이트 지붕도 빛이 바래져 갔다.

바닷바람에 생선이 바짝 말라간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여전히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도 꽤 많다. 사진/ 민다엽 기자
바람개비 덕분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진/ 민다엽 기자

바닷사람의 애환을 담은 논돌담길
묵호항의 전성기 당시, 아랫마을에는 뱃사람들이 주로 살았고 윗마을에는 명태를 말리는 덕장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항구에서부터 덕장이 있는 마을 꼭대기까지 명태를 옮기려면 구석구석 이어진 좁은 흙길을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 때문에 골목길은 늘 질퍽질퍽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논골’이라고 불리게 됐다. 마을 구석구석 장화 벽화나 소품이 유독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현재는 명태가 전혀 잡히지 않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을 꼭대기에는 명태를 주욱 널어 논 커다란 덕장을 볼 수 있다.

허름한 어촌 마을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에 들어서다. 낙후된 달동네에 도시 재생의 바람이 불면서 레트로한 분위기의 문화·예술 마을로 변모하게 된 것.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산비탈 골목길을 따라, 묵호만의 애환을 담은 ‘논골담길’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묵호항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람의 언덕. 사진/ 민다엽 기자
탁 트인 동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추억의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기자기한 옛집은 새롭게 단장했고 빛바랜 담장마다 정겨운 벽화가 그려졌다. 또 개성 넘치는 카페와 빈티지한 소품샵, 여행자를 위한 깔끔한 숙박시설도 여럿 들어섰다. 입소문을 타고 옛 향수를 느끼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010년부터 시작된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까지 총 4개의 코스(논골1·2·3길, 등대오름길)가 조성됐다. 푸른 동해의 풍경을 바라보며 투박한 시멘트 계단을 오르다 보면, 바닷가를 터전으로 삼은 뱃사람들의 이야기가 정겹게 다가온다.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소박한 행복에 미소가 절로 나는 추억의 길이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묵호등대는 1963년부터 묵호 앞바다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가파른 계단 밑으로 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사진/ 민다엽 기자
강아지들이 갑자기 우르르 뛰어나오더니 반갑게 꼬리를 친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여러 길이 미로처럼 얽혀있지만, 어디로 오르든 언덕 위로 우뚝 솟은 묵호등대로 이어지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쉽게도 지난해 초, 동해 지역을 덮친 대형 화재로 인해 마을 반대편 능선과 논골1코스 일부 구간이 살짝 소실됐으니, 다른 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해가 동쪽에 있는 오전 중에 바다 쪽 코스인 등대오름길로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정상부에 있는 묵호등대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바람의 언덕을 둘러본 뒤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된다. 언덕을 내려오면 묵호항 어시장 입구로 자연스레 이어지니,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해산물을 푸짐히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INFO 묵호등대(묵호등대해양문화공원)
주차장은 24시간 이용 가능. 등대 전망대를 비롯한 내부 시설은 운영시간을 참조하면 된다.
주소 강원 동해시 해맞이길 289 묵호항로표지관리소
운영시간 겨울철(11~3월) 07:00~18:00, 여름철(4~10월) 06:00~20:00

하늘에서 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사진/ 민다엽 기자
묵호등대에서 바라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스카이워크). 사진/ 민다엽 기자
‘도째비’는 도깨비를 뜻하는 사투리다. 사진/ 민다엽 기자

묵호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최근 논골마을에 새로운 테마공원이 생겨나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정식 개장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해랑 전망대가 그것이다. 스카이밸리에서는 탁 트인 동해를 감상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와 외줄에 의지해 공중에서 자전거를 타는 스카이사이클, 총길이 87m의 자이언트슬라이드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 삼아 짜릿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팁이라면 스카이밸리 입구를 통해 계단으로 오르는 것보다, 등대오름길을 통해 묵호등대 쪽에서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정상부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까지 차를 통해 이동할 수도 있지만, 주말에는 주차장이 협소한 편이라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도째비’는 도깨비를 뜻하는 사투리로 예부터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면 골짜기를 따라 푸른빛들이 아른거린다고 해서 도째비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밤이 되면 형형색색 조명이 들어와 한층 화려하게 변한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입구. 사진/ 민다엽 기자
바다 위를 걷는 해랑전망대. 사진/ 민다엽 기자

스카이밸리 앞에는 바다 위를 걷는 해랑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투명한 바닥을 따라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묘하다. 코스가 짧고 입장료도 없어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방파제를 따라 묵호항 수변공원까지 산책하기에 좋다.

INFO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주소 강원 동해시 묵호진동 2-109
운영시간 겨울철(11~3월) 10:00~17:00, 여름철(4~10월) 10:00~18:00, 월요일 휴무
이용요금 스카이워크 2,000원, 자이언트 슬라이드 3,000원, 스카이사이클 1만 5,000원
문의 070-8883-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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