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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어머니가 떠오르는 ‘국민 생선’ 고등어
어머니가 떠오르는 ‘국민 생선’ 고등어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10.13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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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공동어시장
부산공동어시장에서는 거의 매일 아침 엄청난 양의 고등어 경매가 이루어진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부산] 등 푸른 생선의 대표주자 고등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구이는 빛깔과 냄새만으로도 군침을 자극하는 대한민국 대표 ‘밥도둑’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최고의 조력자인만큼 생산량 안정화를 위해 TAC 어종으로 분류해 관리되고 있다.

고등어는 맛 좋고 값도 싸서 예로부터 ‘국민 생선’으로 불렸다. 전국 어디를 가도 고등어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그 물량의 80~90%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에서 나온다. 부산을 대표하는 시어(市魚)이자 부산 서구를 대표하는 구어(區魚)가 고등어일 정도. 그리고 부산 서구에는 거의 매일 엄청난 양의 고등어가 들어오는 부산공동어시장이 있다.

부산의 새벽을 여는 국내 최대 어시장
해가 채 뜨기도 전, 부산 앞바다의 먼발치부터 휘황찬란한 불빛이 보인다. 고등어를 가득 실은 배들이 부산공동어시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다. 배가 한 척, 두 척 도착하기 시작하면 이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몸놀림이 분주해지고, 어느새 들어온 배에 따라 또는 잡힌 시간에 따라 분류된 고등어들이 나무상자에 담긴 채 열을 지어 깔린다. 최윤희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수산자원조사원을 비롯한 5인의 조사원들도 축구장 몇 개를 붙여놓은 것만큼 넓은 위판장을 빠른 발걸음으로 돌아다닌다.

자갈치시장에서 바라본 부산공동어시장 전경. 파란 지붕이 위판장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오늘은 고등어가 조금 적게 들어온 날이네요. 많이 들어올 때는 위판장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찬답니다.”

고등어는 유자망, 정치망, 저인망, 소형선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어획하지만, 주로 대형선망으로 조업하기에 한 번에 잡히는 양이 워낙 많다. 대형선망이란 높이 200m, 길이 1km쯤 되는 큰 그물로 수산물을 어획하는 방식. 그물을 끄는 본선 1척과 불을 밝히는 등선 2척, 수산물을 항으로 나르는 운반선 3척이 선단을 이루어 조업한다. 본선이 고등어 떼를 찾으면 등선이 불을 밝혀 어군을 모으고, 본선이 그물을 쳐서 고등어들을 들어올려 운반선에 담는다. 한 번에 잡히는 양이 평균 10톤 정도라 하니, 밤사이 조업한 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부산공동어시장의 새벽이 고등어로 가득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부산 인근 바다와 동해, 남해, 그리고 제주도 연안에서 조업을 한 고등어 운반선들도 대부분 부산으로 오기 때문이다. 부산공동어시장이 엄청나게 많은 고등어 물량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넓기도 하고, 오래 전부터 고등어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도매인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고등어의 80~90%가 부산공동어시장으로 들어온다. 사진 노규엽 기자

Info TAC란?
총 허용 어획량(Total Allowable Catch)을 뜻하는 말로, 수산자원의 과도한 어획을 막기 위해 11개 어종을 정해 1년간 어획할 수 있는 총량을 정해놓은 것이다. 고등어도 TAC 어종 중 하나.

클수록 맛있고 가을에 더 맛있는 고등어
대략적인 고등어 어획량을 파악한 최윤희 조사원의 주도 아래 업무가 분담되고, 각 조사원들은 맡은 일을 수행한다. 고등어와 같은 TAC 어종들은 체장(몸길이) 조사와 어획량 체크가 필수. 아직 어린 고등어가 잡히지 않았는지와 어획량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고등어의 어획 금지 체장은 21cm예요. 크면 35~40cm, 때로는 50cm에 이르는 고등어가 있기도 하죠. 우리가 보통 먹는 크기는 30cm 전후로, 대(35cm 이상)ㆍ중(32~34cm)ㆍ소(30~31cm)ㆍ갈고(30cm 이하) 등 4체급으로 구분해요.”

가장 맛있다고 하는 고등어는 35~40cm 정도의 고등어. 당연히 크기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고. 특히, 가을 고등어를 최고로 치는데, 지방함유량이 20%가 넘고 감칠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고등어의 어획량을 체크하고 있는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들. 사진 노규엽 기자

수온에 민감한 고등어들은 바다온도와 먹이를 쫓아 북쪽으로 올라오는데, 봄ㆍ여름 동안 먼 거리를 헤엄치며 충분한 먹이를 섭취하고 우리나라 근해로 올라오는 가을 고등어가 살이 통통하고 맛있는 거죠.”

한편, 국내에 들어오는 고등어는 두 종류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고등어와 푸른 등과 하얀 뱃살의 경계선에 까만 점들이 선명한 망치 고등어다. 최윤희 조사원은 “망치 고등어가 더 기름지다는 차이는 있는데, 일반인들이 맛으로 구분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그래도 일반 고등어가 더 맛있어서 시장에서는 ‘참고등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설명해준다. 덧붙여, “고등어를 구매할 때는 살이 단단하고 눈이 선명한 고등어를 고르면 확실하다”고 고등어 구입법을 귀띔하기도 했다.

부산의 역사가 서린 음식, 고갈비
부산공동어시장으로 들어온 엄청난 물량의 고등어들은 불과 2~3시간 만에 인근 시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다. 부산공동어시장 옆으로 이어지는 충무시장과 자갈치시장에도 당연히 고등어가 깔린다. 국내산 수산물만 아니라 수입수산물까지 즐비한 시장 구경도 여행의 묘미. 시장의 식당들에서 당일 잡힌 신선한 고등어구이도 먹을 수 있다.

국내외 수산물이 모두 모여 사계절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자갈치시장 풍경. 사진 노규엽 기자

한편, 부산 고등어하면 고갈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산에서 생활한 사람이라면 고갈비 하나를 앞에 두고 술잔을 무수히 비운 추억이 서린 음식. 부산의 원도심 남포동에 고갈비를 파는 식당들이 모인 고갈비 골목이 있었다. 지금은 단 두 집만 남아있는데, 그 중 할매집은 <백종원의 3대 천왕>에도 소개된 바 있는 오래된 전통을 지닌 식당이다.

“(6.25)전쟁 났을 때 뭐 먹을 게 있었나? 부산에 고등어가 많으니 다들 고등어를 팔았던 게지. 돈 없어서 학생증 맡기고 외상 먹고, 전공책 맡기고 안 찾아간 사람들이 가끔 찾아온다.”

옛 미화당백화점 뒷골목에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며 고갈비를 팔아온 ‘왕할매’는 식당에 앉아 옛 기억을 이야기해준다.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가 2대째 가게를 이어가고 있지만, 메뉴는 수십 년 전과 똑같이 고갈비 뿐이다. 크기에 따라 가격도 다른데, 그날 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크기는 팔지 않으니 싱싱한 고등어만 취급한다는 믿음이 간다.

부산 남포동 고갈비 골목는 전통적인 고갈비 전문 식당이 두 집 남아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아래까지 바삭하게 구워져 잔뼈까지 씹어먹을 수 있는 부산 전통 고갈비. 사진 노규엽 기자

“아래까지 잘 구워졌죠? 잔뼈가 바삭해질 때까지 구워야 편하게 씹어 먹지. 뼈는 칼슘이잖아.”

이제는 실질적인 사장인 며느리 한영진 씨가 내어준 고갈비는 짜지 않다. 함께 내준 양념간장에 찍어 먹어야 할 정도. “요즘 사람들은 짠 거 안먹잖아”라며 “할매 때는 소금 간을 했지만 나는 간을 거의 안한다”고 말하는 한영진 사장의 고갈비가 할매집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간장이나 빨간 양념을 바른 고갈비를 팔기도 하지만, 원조 부산 고갈비는 바싹 구운 고등어구이가 맞다. “그럼 고등어구이와 무슨 차이냐”고 묻는 타지 사람도 있겠지만, 이름이 달라서 맛도 다르게 느껴지는 건 싱싱한 고등어만을 사용하는 부산 향토음식이라는 자부심과 추억이 함께 담긴 이유일 거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1월호 [위판장 따라가는 수산자원 사계절]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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