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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네팔트레킹] 하산, 일출의 실망을 온천욕으로 풀다
[네팔트레킹] 하산, 일출의 실망을 온천욕으로 풀다
  • 이분란 객원기자
  • 승인 2004.1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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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촘롱에서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 온천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 트레킹 포인트이기도 한 마을.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온천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 트레킹 포인트이기도 한 마을.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네팔] 진정한 트레커라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진정한 산악인은 아닌 모양이다.  여행사에서 추천하던 3박 4일 코스를 택할 걸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른 일행들이 안나푸르나의 솟아오른 만년설을 보며 흥분할 때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들의 자신감과 체력이 얼마나 부럽던지….

3천m 푼힐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
나에겐 이번 일주일 트레킹의 하일라이트인 3천m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의 일출이 기다리고 있다. 3천2백10m 푼힐 정상에서의 화려한 일출을 꿈꾸며 처음으로 새벽 4시에 기상을 하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6시에 기상한다.

워낙 속도가 늦다보니 가이드가 알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2시간 먼저 나를 깨웠다. 새벽 4시에 숙소를 나선 나보다 두 시간 늦게 출발한 다른 팀원들이 정상에 먼저 도착해 있다. 예상은 하였지만 오늘도 아침부터 비참하기만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뒷산 약수터라도 물통 들고 열심히 다닐 걸.

산길에서 잠깐 올려다 본 마차푸차레. 나무사이로 보이는 구름 없는 설봉이 환상적이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산길에서 잠깐 올려다 본 마차푸차레. 나무사이로 보이는 구름 없는 설봉이 환상적이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산 능선을 따라 한참 오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만난 히말라야 농가의 모습.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산 능선을 따라 한참 오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만난 히말라야 농가의 모습.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부지런한 현지인이 미리 새벽에 올라와 끓여 놓은 뜨거운 차 한 잔에 몸을 녹여 보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높이를 표시하는 팻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시달렸는지 싸늘한 작대기 하나에 온갖 상처를 보이며 대롱대롱 달려있다.

일출 시간은 다가오는데 멀리 구름상태가 심상치 않다. 태양이 떠오르는 주변에 조금씩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가끔씩 구름 사이로 비친 태양이 하얀 봉우리에 비쳐 황홀한 주홍빛을 발하며 설산을 붉게 물들였다. ‘아~’ 하는 감탄과 함께 나도 모르게 ‘제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히말라야 산신부터 찾았다.

아랑곳 하지 않고 이내 태양을 가려 버린 구름. 3박 4일을 오로지 일출 한번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며 올라왔는데 어쩜 이럴 수가! 이것을 보려고 2천 루피(1루피=43원)짜리 입산증을 끊었는데….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고생한 내 발바닥과 온몸의 근육을 어디에서 풀라고…. 아~~야속한 히말라야여~

히말라야 아이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히말라야 아이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히말라야의 온천
일찌감치 하늘의 상황을 보고 포기한 일행들은 벌써 하산하고 있다. 가이드는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이제 그만 내려가잔다. 어쩌면 처음부터 히말라야는 나를 반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포카라까지 다른 여행객들은 버스 7시간을 타고 가는데 나한테는 17시간을 타고 가게 하더니 이번 트레킹의 하일라이트인 일출마저 이렇게 나를! ‘아~’ 신들이 나를 거부하는 건지 내가 자연을 우습게 본 건지.  

푼힐의 일출에 크게 실망한 나를 달래주려고 함이었을까. 가이드가 온천이나 하러 가자고 한다. 뭐? 온천? 사전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정보다. 온천이 있다는 말에 나의 하산은 즐겁기만 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가이드가 오른쪽 계곡 쪽을 가리키며 보라고 한다. 그렇다. 무지개였다. 세상에나~ 히말라야 산에서 무지개를 다 보다니?

온천을 하며 하룻밤 쉬어갔던 숙소가 멀리 보인다. 뒤에 보이는 안나푸르나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져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온천을 하며 하룻밤 쉬어갔던 숙소가 멀리 보인다. 뒤에 보이는 안나푸르나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져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안나푸르나 설산이 있는 쪽에서 산 아래로 깊은 계곡이 형성되면서 빙하가 녹은 물이 강처럼 불어나 빗물과 함께 흐르고 있는데 그 깊은 계곡 위로 자연의 음영이 교차되면서 아름다운 무지개가 뜬 것이다. 온천물도 그 무지개가 떠 있는 계곡 아래쪽에서 쏟아나고 있었으니 얼마나 성스러운 히말라야의 물인가.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온천물은 마치 우유를 탄 듯 희뿌연 색깔을 띤다. 맑지 못한 파란색에 석회가루라도 탄 듯 탁하기는 하지만 우유빛 성수에 몸을 담그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동안 따뜻한 물에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데 이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시설이라고 해봐야 계곡 한 쪽 구석에 시멘트로 물만 가두어 놓은 어설픈 욕탕 두 개가 전부이다. 어차피 수영복이 없는 나로선 윗옷까지 입은 채 탕으로 들어갔다.

히말라야의 정기가 서린 물이니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지없이 행복하다. 물은 생각보다 따끈하였지만 비오는 산속 날씨여서인지 입에서는 김이 나오고 담그지 못한 얼굴은 춥기만 하다. 어둠이 내리는 바람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내 나와야 했지만 피로가 많이 풀어진 느낌이다.  

트레킹을 끝낸 마지막 날 아침에 옥상에서 올려다본 안나푸르나.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트레킹을 끝낸 마지막 날 아침에 옥상에서 올려다본 안나푸르나.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하산, 히말리아여! 잘 있어라
올라가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네팔 트레킹은 하산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등산로처럼 올라가는 건 등산이고 내려가는 건 하산이 아니라 산맥을 타고 좁은 능선을 따라 아슬아슬한 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저 멀리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숙박지 간드룩(ghandrug)이 보인다.  

마지막 동네를 코앞에 두고 지나온 산길을 되돌아보니 휴~우 아찔하다. 참으로 기나긴 여정의 고달픈 걸음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여기까지 걸어서 왔던 기어서 왔던 나는 해낸 것이다. 간드룩에서 만난 영국인 아이들과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처음으로 마음껏 웃었고 여유있는 밤을 보냈다.  

포카라에서 가까운 유명한 일출 포인트 사랑곳. 일출을 보러 온 승려들이 염불을 외며 경건하게 태양을 기다리고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포카라에서 가까운 유명한 일출 포인트 사랑곳. 일출을 보러 온 승려들이 염불을 외며 경건하게 태양을 기다리고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촘롱에서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 온천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 트레킹 포인트이기도 한 마을.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촘롱에서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 온천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 트레킹 포인트이기도 한 마을. 2004년 11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처음 트레킹을 할 때 유난히 크게 들리던 소들의 방울소리가 이제는 히말라야의 소리가 되어 자연의 소리처럼 들린다. 나도 자연에 동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처음엔 산자락에 한 두마리 매여진 소들이 처량해 보였는데 이제는 한 폭의 수채화로 보인다. 길에 밟히는 소똥, 나귀 똥 냄새도 구수하기만 하다. 해질 무렵 또는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산속 마을의 연기도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고 멀리 모디 계곡에 흐르는 우유빛 물소리는 에너지를 불어넣는 히말라야의 함성으로 들린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 산을 내려가고 있지만 마음은 설산을 잊지 못하고 계속 뒤를 보며 산을 찾아 떠돈다.

더 이상은 가지 않는다
하얗게 뿌린 뽀얀 얼굴에 눈부신 햇살 던지며 유혹해도 더 이상은 가지 않는다. 천둥번개에 우박같은 빗줄기 던지며 앞길 막아도 나는 이제 돌아가련다. 뿌연 안개와 짙은 구름에 가려진 그대 모습 더 이상 보지 못해도 나는 좋다. 초록의 깊은 계곡에 살포시 드리운 아름다운 쌍무지개는 평생 잊지 않으마. 설산의 안나푸르나여! 나는 돌아가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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